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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도서] 퀴어는 당신 옆에서 일하고 있다

희정 저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비가시화 되는 존재 혹은 노동에 대한 에세이

 

이상한 꿈을 꿨다. 나는 패션을 주제로 한 서바이벌 프로그램의 스탭이었는데 몸매와 이력이 화려한 모델들과 디자이너 틈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어떤 디자이너가 나를 붙잡고 자기 옷을 입고 프로그램에 나가줄 수 있는지를 물어봤다. 모델들이 자기가 만든 옷을 입지 않으려고 한다며 내게 그 옷을 보여줬는데 아랫도리가 투명한 옷이었다. 문제는 속옷을 입지 않는다는 조건이었다. 나는 방송에 모자이크로 나간다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이토록 수용적인 인간이다. 직장에서 그 어떤 것을 요구하더라도 ‘괜찮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우선 든다. 왜 이런 꿈을 꾼 걸까. 나는 성적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인가. 아니면 나보다 권력이 높은 사람의 말은 무조건 수용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나?

나는 지정성별 여성, 30대, 비수도권 거주, 20대 후반 아이를 출산하고 8년 동안 돌봄노동을 수행했다. 그전에는 수도권에서 사무직에 종사했으며 공무원 시험을 보라는 부모의 잔소리를 피해 비수도권으로 이사했다. 지난해부터 내가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선언하고 프리랜서 강의노동자로 살고 있지만 코로나 때문에 강의 수입으로 생계를 유지하기는 힘들다. 같이 사는 30대 후반 남성은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내가 다 벌지 못하는 생활비를 메꾼다. 사람들은 내가 밖에서 일을 하고 있으면 “아이는 누가 보냐?”는 질문을 한다. 아이는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했고 돌봄교실에서는 떨어졌다. 서류상 우리 가정은 맞벌이가 아니고 외동이기 때문이다. 4시까지 봐주던 어린이집과 달리 오후 1~2시에 끝나는 학교는 더더욱 일상을 바쁘게 만들었다. 두 사람 모두 아이 하교 시간에 일이 있으면 한 사람은 일을 포기해야 한다. 하지만 더 포기가 쉬운 쪽은 남성보다는 여성이다. 나는 그게 싫어서 아이에게 핸드폰을 쥐어 주며 혼자 하교를 하고 집에 와서 어른이 귀가하는 시간까지 유튜브를 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요즘 부쩍 유튜브에서 배운 욕설을 내뱉는데, 그게 자꾸 내 잘못인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비가시화 되는 노동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돌봄이다. 돌봄노동은 결국 관계를 잘 유지하는 것을 말한다. 같이 사는 세 사람의 관계, 같이 살고 있지는 않지만 혈연관계로 묶인 관계, 일적으로 묶이는 관계들이다. 나는 이 중 같이 살고 있지 않지만 혈연관계로 묶인 관계를 좋게 유지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명절에 만나지 않고, 안부 전화를 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편하겠다는 소리를 하지만, 안 하는 대로 또 부담이 있다.

20대에 수행했던 사무직 노동은 눈에 보였고 급여도 꼬박꼬박 들어왔다. 30대에 수행하는 돌봄노동과 프리랜서 노동은 사람들 눈에 잘 안 보이는 것 같다. 무엇을 해도 나는 제대로 된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고 급여도 들쭉날쭉 들어온다. 30대의 가운데를 보내고 있는 지금, 나는 무척 불안하다. 40대는 더더욱 지워진 노동을 하지 않을까, 내 존재 자체가 지워져버리지 않을까.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 같다. 내가 노력을 하지 않아서, 내가 부족해서, 내 몸이 이 모양 이 꼴이라서 등의 핑계를 대며 불안해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왜 이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내용의 책도 읽고, 사람들에게 이야기도 하고, 심지어 강의도 한다. 그러면 불안감이 덜하다. ‘제대로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예전의 나라면, 20대에 눈에 잘 보이는 노동을 했던 나라면 이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전에는 몸을 바쳐서 일을 했다. 고3 때는 화장실을 한 번만 갔다. 10분밖에 안 되는 쉬는 시간을 친구들과 잡담으로 흘려보내기 싫었다. 그 때부터 몸이 붓기 시작한 것 같다. 20대 때 회사에서도 돈을 쓸 시간이 없을 정도로 일을 했다. 한 달에 일주일 정도는 밤을 꼬박 새는 마감을 했고 그래서 그런지 아이를 낳고도 밤에 깨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30대에 들어서자 밤을 새는 게 힘들어졌다. 몸도 점점 무거워지고 천식이란 지병도 생겼다. 급성 천식으로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해 응급실에 실려가던 순간 너무 허무해졌다. 무엇을 위해 사는 걸까? 나는 그 이후로 내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를 위해 1년에 한 번씩 혼자 여행을 가고, 올해에는 그룹PT도 등록했다. 그런데 요즘 직장에 다니는 친구의 연락이 부쩍 잦다.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반복적인 업무와 동료들과의 잦은 마찰로 회사를 관두고 싶지만 앞으로의 삶이 불안해 관둘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친구의 건강 상태는 점점 악화되고 있고, 나는 건강이 최우선이라며 무급휴직이나 아예 퇴사를 하는 건 어떤지 권했다. 하지만 친구의 불안함은 어쩔 수가 없다. 스스로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는 일은 너무나 힘든 일이다.

그렇다고 그 친구에게 나와 같은 삶의 형태를 권할 수도 없다. 각자의 삶은 너무나 힘들다. 하지만 그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여전히 시스템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잘 보이게 하는 것은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힘들다. 자꾸 이런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이런 책이 많이 팔리게 하고 저자 강연이나 인터뷰를 많이 하는 것도 모자라다. 당장 정치인들은 눈에 잘 보이는 ‘정상’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려고 하겠지만 잘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는 ‘비정상’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들을 놓치면 이 사회 전체를 놓치게 될 수도 있다. 책의 마지막 문장인 ‘누구도 만날 필요가 없기를 바란다’는 문장은 그런 의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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