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의 박해로 식 해석과 변주로 가득한 단편집이다. 기존의 상식을 가지고 이야기에 접근하면 낯익은 이야기의 낯선 변주를 마주하면서 어리둥절해진다. 한 편의 이야기 속에 원래 인물들 외에 다른 전래동화 속 인물이 같이 등장해 예상하지 못한 상황과 장면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다시 낯익은 이름 섭주를 만났다. 사실 이 책을 선택할 때만 해도 섭주가 등장할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이제부터는 박해로 소설을 읽게 되면 섭주는 무조건 나온다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전래동화에 호러, 판타지, SF 등을 섞고 패러디를 가미해 아주 능청스럽게 풀어낸다.
<이몽룡과 겟 아웃>이란 제목을 보고 주인공을 이몽룡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작가는 놀랍게도 변학도를 주연으로 내세우고, <허생전>의 허생을 조연으로 등장시켜 이야기를 뒤섞고 비튼다. 변학도가 스스로 숫총각이라고 말하는 대목도 우습지만 이 뒤틀린 이야기에서 숫총각은 숫처녀처럼 제물이 될 뿐이다. 가짜 암행어사와 진짜 암행어사가 등장하지만 기존과 다르게 흘러간다. 남원의 사또를 섭주 근처 초진포로 보내면서 생기는 기묘한 이야기는 괴이하고 서늘하지만 낯선 이름 때문에 익숙한 이야기처럼 다가온다. 우리가 알던 성춘향과 이몽룡을 생각하면 안 된다. 읽으면서 소소한 웃음을 짓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우주의 침입자>는 SF 판타지를 전래동화 속에 녹여내었다. 이 이야기 속 조연은 장화 홍련 자매다. 햇님과 월녀의 부모는 천주교도였고, 장화 홍련의 아버지는 <귀경잡록>을 신봉하는 학자다. 둘은 모두 나라에서 금지하는 종교와 학문이다. 하늘에서 커다란 별똥별이 근처에서 떨어지는데 그 우주선에서 나온 외계인은 동물 등을 삼켜버린다. 처음에는 사슴이었고, 나중에는 호랑이까지. 그리고 오누이의 엄마까지 삼킨다. 재밌는 점은 삼킨 존재들의 이성이 아직 남아 있고, 그 모습이 삼킨 동물들의 외형을 조금씩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귀경잡록> 이야기를 살짝 넣어 작가의 다른 소설에 관심을 가지게 한다. 마지막 장면은 우주인 음모론과 닮았고, 우리가 아는 전래동화가 어떻게 순화되었는지 살짝 알려준다.
<심 봉사와 이창>은 <심청전>과 영화 <이창>을 엮었다. 주연으로 심 봉사를 내세워 영화 <이창> 속 주인공 역할을 맡겼다. 대신 눈이 아닌 봉사의 예민한 눈을 내세웠다. 여기에 또 끼어든 전래동화는 <흥부전>과 <혹부리 영감>이다. 조선 말기 이양선이 나타나고, 이 배를 탄 인물들이 사라진다. 검은 배와 하얀 배로 나누어지는데 이 정체가 나중에 밝혀진다. 심청이 사라진 후 한강변에 기이하게 죽은 여자 시체가 나타난다. 피가 빨리고 내장이 사라진 채로 발견된다. 피만 생각하면 흡혈귀인데 내장까지 사라져 누군지 궁금하다. 이 사건의 단서를 발견하는 인물이 귀 밝은 심 봉사다. 옆집에 사는 흥부와 혹부리 영감의 소근거리는 이야기를 듣고 청이와 친한 다모에게 말한다. 실제 해결은 심 봉사가 그 존재와 마주한 후다. 낯익은 호러의 해결방식이다.
<도깨비 감투와 X레이 눈의 사나이>는 도깨비 감투의 기능을 다른 방식으로 풀어내었다. 몸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X레이처럼 사물의 속을 보는 것이다. 이런 기능이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데 작가는 땅속에 있는 물건들을 도굴하는 것으로 바꿨다. 그리고 여기에 오래 전 이 마을에서 벌어진 민란을 엮고, 이 감투의 숨겨진 기능을 하나 더 묶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이야기를 이끈다. 감투를 쓴 채 사람들을 보면서 해골만 보는 장면을 연출하는데 섬뜩하면서도 재밌는 장면이다. “내 다리 내놔!”와 “금 도끼가 니 도끼냐?” 같은 낯익은 대사를 넣어 재미난 패러디를 보여준다. 최근 고전을 새롭게 해석하고 비튼 소설들이 많이 나오는데 이 작품도 그런 종류 중 하나다. 전래동화의 새로운 변주 가능성을 재밌게 잘 보여준 단편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