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라의 소설은 처음 읽는다.
정보라와 정도경이 같은 작가란 사실을 알게 된 것도 최근이다.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고, 이 때문에 인지도가 올라가면서 알려진 사실이다.
집에 이전에 사 놓은 정보라와 정도경의 소설들이 있기에 괜히 반가웠던 것이 생각난다.
읽으려고 사 놓고 묵혀 둔 책들 중 하나란 사실은 이제 비밀도 아니다.
아마 부커상 후보가 되지 못했다면 이 작가의 소설은 점점 더 뒤로 밀렸을 가능성이 더 높다.
개인적으로 놀라운 것은 작가가 참여한 적지 않은 단편집조차 읽지 않았다는 것이다.
좋아하는 장르의 단편집인데도 말이다. 물론 많은 단편을 낸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정보라 이름으로 번역된 수많은 소설들이 눈에 들어왔다.
제목대로 고통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한 아이디어를 미국의 마약성 진통제 문제에서 얻었다.
남발된 마약성 진통제 문제가 미국의 아주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전쟁 후유증을 겪고 있는 많은 퇴직 군인들에게 이 약들이 처방되다 문제가 되자 중단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중단된 진통제 대체제로 마약을 사용하는 문제가 생긴다.
작가는 병원에서 이 약들을 잘 관리하면서 마약성 진통제 남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과연 이 관리가 가능할까? 처방전을 남발하는 의사가 없을까?
이미 풀린 수많은 마약성 진통제 문제는 어떻게 할 것인가?
솔직히 의문이 들지만 통제의 주체를 병원으로 하고, 병원을 관리하는 정부 조직이 있다면 가능할 것 같다.
물론 단순하게 풀릴 수 있는 문제는 아닐 것이다.
이런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수 있는 진통제가 있다면 어떨까? 부작용도 없다.
NSTRA-14의 등장은 고통의 개념을 바꾼다.
이 한 알의 약이 고통을 견딜 필요 없는 상황으로 만들어버린다.
고통을 견딘다는 것이 그 자체로 정신병의 징후로 의심되는 사회가 되었다.
이런 약을 만든 회사는 나중에 한 종교 단체의 테러 대상이 된다.
재밌는 점은 이 회사가 고통을 느끼게 하는 약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시제품이 고통을 자신들의 핵심 교리로 삼는 종교 단체로 흘러간다.
이 종교 단체는 고통을 견디는 것을 자신들만의 단계로 나눈다.
회사에 테러를 한 태는 바로 이 종교 단체의 신도였고, 어렸다.
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한 글자의 한자 이름을 사용한다.
12년 전 테러를 수사했던 형사의 이름은 륜, 이 테러로 회사를 물려받은 여자는 경.
태러범의 이름은 태, 그의 형은 한, 륜의 파트너는 순.
솔직히 말해 이 한자의 뜻과 등장인물들을 연결해서 해석하면 더 좋겠지만 당장 머릿속이 복잡하다.
실명이 아닌 사람들을 이렇게 한자의 한 단어를 사용한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야기는 자극적이고, 잔인하고, 묵직하면서 무겁게 펼쳐진다.
어떤 대목은 읽으면서 왜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나왔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자세하게 알려주지 않고 간단하게 처리해도 되는 부분인데 말이다.
테러의 피해자이자 자신의 삶을 살게 된 경.
테러범이자 자신의 삶이 망가진 태.
이 둘의 섹스는 동물적이고, 그들의 몸에는 수많은 상처가 있다.
이 상처의 원인이 서로 다르지만 고통과 테러가 서로를 잠시 이어준다.
경은 진통제 실험 때문에 생긴 상처이고, 태는 교단의 교리(?)에 의한 것이다.
이 둘만의 이야기로 한정되지 않고, 조금씩 확장되면서 다른 사람의 삶도 나온다.
단편적인 이야기 속에 나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빛.
교단의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연쇄 살인. 원래의 의미가 바뀐 교단의 모습.
이 소설의 마지막에 드러나는 교주의 정체와 교단의 행동은 생각할 거리를 가득 던져준다.
육체적 통증은 진통제로 해결되지만 정신적인 고통은 어떨까?
읽으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은 물음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