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시선 466권이다.
처음 만나는 시인이다.
작가의 네 번째 시집이다.
얼마 전에 읽었던 시집보다 조금 쉽게 읽었다.
그렇다고 이해가 더 많이 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읽으면서 몇몇 단어가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표적으로 ‘빚’과 ‘자본’과 ‘신’과 ‘부산’이다.
빚은 빛과 함께 사용하면서 잠시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많은 시어들이 시집을 읽으면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그 중에서 나의 감성을 건드린 단어 두 개가 있다.
‘하염없이’와 ‘가까스로’ 라는 <작은 가방> 속 시어다.
하염없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멍하니 아무 생각이 없이”다.
가까스로란 단어는 “애를 써서 매우 힘들게”란 의미다.
이 두 단어를 보면서 우리의 삶이 이런 식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희망이나 꿈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힘겨운 하루의 연속을 가까스로 버티는 우리.
표제작 <뿌리주의자>에서 나의 시선은 반복되지만 다른 감정의 표현이다.
“엉겅퀴, 아픈, 아프게 붉은” 과 “엉겅퀴, 뻔뻔한, 뻔뻔하게 붉은”
<하필>에서는 무명 시인 두 명의 죽음과 “하늘 아래 누군가 시를 쓰고 있었다”와 엮인다.
시에 산복도로란 단어가 나오면 괜히 반갑다.
어느 동네에나 있는 도로명이지만 내 어린 시절을 잠시 떠올려준다.
<허리 디스크>에서 꼬리뼈에 주사를 놓은 이야기가 나온다.
아니 꼬리뼈가 휘어 “믿음도 절망도 기다림도 엉터리였다는 말”이다.
<근대화슈퍼>에서 “1950년대 점방 그대로다”라고 말하면서
“가난은 이끼 많은 바위처럼 고집 센 가축 / 희망과 예언은 근대화될 수 없다 /
거리서 팔리는 것들은 언제나 초월“이라고 말한다.
왠지 모르게 오래 전 박제된 이미지가 기억으로 다가온다.
<한올의 실>은 여러 번 읽으면서 마지막 “다만 방향이다”란 시어에 눈길이 머문다.
흔하게 말하는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가 방향이란 의미는 아닐 텐데.
시집을 읽고 며칠 지난 후 시집을 뒤적이면서 그 감상을 적는다.
그때 그 느낌들이 왠지 모르게 많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