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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기 전에 한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영화를 먼저 보았다면 더 좋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뭔말이냐 하면 책 헌사에 바쳐진 두 사람 때문이다. ‘나는 전설이다’의 작가 리처드 매드슨과 ‘새벽의 저주’의 감독 조지 로메로. 이들이 만들어낸 소설과 영화의 내용 때문이다.

‘나는 전설이다’의 경우 이전에 토요명화에서 본 것이 기억나지만 정확한 내용이 가물거리고 소설은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새벽의 저주’ 또한 제대로 처음부터 끝까지 본 기억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까지만 말해도 대부분은 이것이 좀비와 관련된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 속에 나오는 좀비는 확연히 다르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아닌 살아있는 좀비이기 때문이다.


시작은 일상의 풍경에서 예상하지 못한 공포와 광기의 순간으로 전환하면서 부터이다. 서서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모든 것이 바뀌는 것이다. 사람이 개를 물고, 사람이 사람을 죽이고, 빌딩에서 뛰어내리고, 차로 사람을 들이받고 하는 괴이한 상황에 돌입하는 것이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원인은 모두가 핸드폰을 사용하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아내와 별거 중인 만화가 클레이가 성공적인 계약으로 들뜬 상황에서 벌어진 이 풍경에 놀라고 도망가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곳에서 만난 톰과 함께 도망가고 어린소녀인 앨리스를 만나는 과정도 광기의 소용돌이 외부에 있기 때문이다. 즉 우연히 핸드폰이 고장 나거나 없거나 다른 사람이 사용 중이었다는 것이다. 달아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살인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벌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뒤에 나올 수많은 이들에 대해 가하는 이들의 대학살에 비하면 이것은 새발의 피다.

이후 이들의 여정은 하나의 로드무비와도 같다. 한 지역에서 다른 지역으로 옮겨 다니면서 자신들이 만나고자 하거나 피하고자 하는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그 과정에 이 폰 사이코에 대해 관찰을 하거나 다른 이들로부터 정보를 얻게 된다.


이들의 중심은 역시 클레이다. 움직이는 목적도 클레이의 별거 중인 아내가 있는 집으로 가서 가족을 만나거나 최악의 경우 아들만이라도 살리는 것이다. 미국 영화에서 가장 많이 부각하는 가족이라는 집단을 여기서도 강하게 부각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앨리스는 자신을 공격하던 어머니를 발로 차면서 달아났고, 많은 수의 폰 사이코가 그 당시에 가까이 있던 가족을 공격하였다는 것이다. 앨리스의 가족 중 어머니는 폰 사이코가 되었고, 아버지와 연락할 방법은 없다. 톰의 경우 부모님이 모두 생존해 계시지 않으니 이들이 움직이는 곳은 일차적으로 클레이의 목적지와 유사할 수밖에 없다.


킹의 소설에서 자주 나오는 것 중의 하나가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다. 왜? 라는 의문에 정확한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 소설에서도 역시 왜 이런 현상이 발생했는지 모른다. 이런 사실이 재미를 반감시킨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다. 그의 재미는 살아있다. 중간 중간에 펼쳐 보이는 이벤트들과 이 좀비들의 진화하는 모습과 현상에 대한 설명이 조화를 이루면서 작가의 문장과 함께 독자를 쉽게 빨아 당긴다. 킹의 소설을 자주 읽어본 사람이라면 왜보다 그 상황과 그것을 해쳐나가는 그들에 더 중심을 주지 않을까 생각한다. 뭐 취향과 관점의 차이일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하지만 이번 소설은 이전과 많이 다르다. 이전엔 한 장소에서 서서히 다가오는 공포가 일상과 더불어 부각되는데 이번은 전 세계적 현상에 갑자기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묘사 또한 이전보다 더 잔혹한 모습을 띄고 있다. 사람의 심리를 자세히 묘사하면서 조금씩 다가오던 그 알 수 없는 실체의 공포가 이번엔 다수의 폰 사이코 같은 좀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 부분은 분명히 로메로의 ‘살아있는 새벽’의 장면을 연상시킨다. 롤로코스트처럼 이어지는 전개를 좋아하는 분들에게는 좋은 선물일 수 있지만 이전에 보아오던 킹을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왠지 어색한 느낌이 들 것이다.

나의 경우 후자다. 할리우드 영화를 염두에 둔 것 같다는 역자의 후기처럼 영상으로 만들어진다면 분명 피가 난무하면서 괴이한 장면들이 가득한 멋진 호러 장면이 만들어질지 모른다. 책을 보는 도중에도 가끔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어떤 장면이 나올까 생각하였다. 하지만 역시 소설만이 가진 심리묘사와 그의 특징인 섬세하고 자세한 설명이 살아있는 장면들이 많이 생략된 것 같아 아쉽다.

그래도 역시 다음에 나올 그의 작품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그리고 아쉬운 점 하나. 음악에 영어 원제가 있었다면 내가 생각한 것이 맞는지 몇 개는 확인하고, 몇 개는 검색하여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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