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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게으름이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번엔 이 소설이 그렇다. 구입한지 몇 개월이 지났지만 왠지 모르게 읽지 않고 남겨두었는데 이번에 즐거운 기분으로 읽게 된 것이다.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을 몇 권 읽었지만 이 소설이 최고의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공중그네’에서 그를 만나 그 괴상한 의사의 행동에 놀람과 즐거움을 가졌다면 이번엔 화자의 아버지가 보여준 좌충우돌하면서 체제 반항적인 모습에 웃음과 많은 생각할 꺼리를 얻게 되었다.

요즘 버스 광고에서 국민연금을 못 내겠다는 말을 부각하면서 광고를 하길래 뭔 말인가 하였는데 주인공 지로의 아버지 이치로의 철학이자 생활방침과 관련된 이야기였다. 그의 논리와 행동이 나중에 묘한 모습으로 전환하게 되는데 이 또한 즐거움이다. 이를 바라보는 지로의 모습과 현재 우리의 삶을 비교하면서 읽게 되어 더욱 즐거웠다.


지로의 성장 소설이며 사회 비판적이며 유머와 위트가 살아있는 소설이다. 초반에 약간 등장인물에 적응하는 시기를 거치고 나면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사고방식은 많은 즐거움을 준다. 특히 아버지 이치로와 관련된 여러 에피소드는 때때로 황당함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그의 아나키스트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이 쉽게 적응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덕분에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아나키스트에 대한 생각을 좀 더 많이 하게 되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가는 여러 가지에 대해 그 근본부터 생각하게 된 것이다. 초등학교 의무교육과 연결된 수많은 의무와 국가 권력과 공권력과 시민의 자유라는 어려운 주제부터 비교적 많이 알려진 자본의 노예가 되어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까지 포괄적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현재의 체제가 원하는 것은 자신들을 유지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너무나도 많이 말해져 약간은 진부하기도 하지만 상업적으로 변해가는 현실에서 이 소설을 접하며 다시 한 번 되새겨 본다. 가장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 매체가 상업적 목적에 의해 인권보다 흥미위주로 돌아간 것이 언제부터인지, 자본가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위해 공권력을 동원하는 현실에서 과연 우리가 믿고 있는 정의라는 단어가 살아있는 것인지 의문이 다시 생긴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주제들과 현실 속에서 기쁨을 주는 존재들은 항상 있다. 풍족함보다 나누면서 살아가는 순박한 사람들과 자신들이 자본에 의해 이용당했지만 힘차게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 소설의 화자인 지로와 그 친구들의 존재는 어리기 때문인지 모르지만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폭력에 쉽게 굴하기도 하지만 그것을 이겨내기도 하고,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용기를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상, 하 두 권으로 나누어진 소설이지만 즐거움을 주는 대목이 많은 것은 역시 하권이다. 상권이 도쿄에서의 생활이라면 하권은 순박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섬의 이야기다. 여기에서 인간이 지닌 좋은 점을 많이 보여준다. 공유하는 삶과 순박하고 진심으로 남을 걱정하고 자연스러운 행동을 보여주는 그들이 등장하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도 순수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그들을 보면 나도 그곳에 살고 싶다고 생각이 계속해서 생긴다.


이 소설엔 많은 이벤트가 있다. 지로의 어린 문제부터 아버지와 관련된 수많은 사건들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벤트 중에서 최고의 웃음을 주는 것은 역시 마지막에 가서 보여주는 코믹한 설정에 있다. 그들이 섬에 와서 살게 된 집의 철거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한판 대결에서 그 섬 주민들과 어우러진 만화경 같은 풍경은 읽는 내내 웃음을 자아내었다. 물론 그 속엔 사회 비판적인 시선도 담아내고 있다. 역시 이전부터 보아온 그의 능력을 다시 한 번 더 확인한다. 웃음 속에 담아내는 비판적 시선.


현 체제에 불만이 없고, 자본에 끌려가는 사람이라면 이 소설은 황당하기만 할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고 과연 왜 이치로는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일까? 하고 의문을 가진다면, 단순히 그가 속한 혁명 조직의 권력 다툼에 질렸다느니 회의를 느꼈다느니 하는 단순한 생각 없이, 많은 주제가 나올 것이고 우리 사회와 삶에 대해 되돌아 볼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그리고 작가가 기교를 부려 보여준 재미있는 상황 묘사의 즐거움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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