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9.22. 트레바리에 올렸던 내가 쓴 독후감
자기계발서 만을 탐독하며 남들에게 잘 보이기만을 바라며 시작한 회사생활. 그리고 10년 후 번아웃을 경험하며 퇴사를 했다. 하루하루를 공허함과 왠지모를 우울함 속에 같혀 지내다 인문학이라는 한줄기 빛을 찾았고, 종교와 철학 그리고 심리학 서적에 빠져 지냈다. 그런데 이들 분야는 읽으면 읽을수록 지난 10년의 반추는 커녕 더 높은 이상을 향해서 가라는 강요아닌 강요를 느꼈다. 내가 추구하던 행복 또한 이상향 속에서 찾아야 하는 것이다. 심지어 동양철학은 군자가 되었을 때 느끼는 행복이 최고의 선이라는...물론 그나마 나 자신에 대해서 돌아보며 분석하고 개선점을 찾을 수 있게 만들어 주었던 것은 프로이트와 아들러의 책들 덕분이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내가 살아 숨쉬는 이유는 너무 뻔한 대사이니 패스, 그렇지만 아직도 내가 행복을 왜 추구해야 하는가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언제나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답을 찾으려 했을 뿐..
"행복의 기원"이란 책의 서문을 읽으면서 한 눈에 이 책이다!!!를 알아보았다. How가 아닌 Why를 그리고 진화론에서 그 이유를 찾아준다니! 얼마전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며 알게된 사실 하나, 크로마뇽인과 호모사피엔스 간의 전쟁에서 호모사피엔스가 승리함으로써 지금의 현생 인류가 존재할 수 있었으며, 크로마뇽인과 대비되는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이 바로 소심한 성격 그리고 집단주의이다.(다른 말로는 사회성이 크로마뇽인보다 우월하다는 것. 최근의 나는 사회성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이고EGO의 집단화된 결과로만 보인다.) 본 책의 후반부에도 호모사피엔스의 이동에 대해서 잠깐 언급되는데, 왜 크로마뇽인과 호모사피엔스 얘기를 하느냐면 그들의 행동 특성에 따라 행복을 느끼는 정도가 달랐다고 한다. 크로마뇽인은 끊임없이 옮겨다니며 맹수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때 행복을 느끼는 반면, 호모사피엔스는 정착하고 집단을 구성하고 그 구성원과의 끈끈한 결속력을 얻었을 때 행복을 느낀다고 한다. 이 역시 이론에 불과하지만 어떻게 보면 호모사피엔스의 출현은 곧 이고EGO의 출현과 일치하는 것인가... "행복의 기원"의 저자 서은국 교수는 수많은 연구 결과와 실험 사례를 바탕으로 인간의 본능과 행복을 구체적으로 연결시켰고, 그 덕분에 나는 더이상 어렵고 복잡하게만 표현하는 정신세계와 존재하지 않는 이상이라는 우물 속에 같혀있지 않고 본능이 지배하는 현실세계로 나올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결말까지 읽은 독자라면, 한번쯤은 생각해 볼만한 것이 바로 에피쿠로스 학파 또는 쾌락주의이다. 저자도 잠깐 언급한 쾌락이라는 개념이 사실 우리들에겐 매우 거북하고 음흉한 개념이다.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사실 성욕에 관련된 쾌락은 쾌락주의의 일부분에 불과한데...나는 오히려 에피쿠로스의 저서를 다시금 읽고싶어졌다. 기원전 하고도 몇 백년 이전에 그는 이미 인간의 본능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는 사실에 놀라울 뿐이다. 이 책의 결론도 크게 다르지 않은데, 생존과 번식 그리고 사회적 결속을 통해 느끼는 쾌락이 곧 행복이라는 것이고, 지금 내 머리 속의 커다란 화두인 '강박, 눈치, 미래'에 대해서 확실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되었다. 행복은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결과물이 아니고, 내 삶의 이유 또한 찾는다고 찾아지는 정답이 아니기에 나는 지금 이순간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지금 내가 속한 네트워크, 원하던 원치않던 상관없이, 이 네트워크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 상처받을까 두려워하지도 않겠다.. 어차피 내 의지와 상관없이 생겨나는 상처니까. 맞다! 게보린이 있으니까. (참고로 마음이 상처받아 괴로울 때 진통제가 효과 있다고 함. 팩트임. 궁금하면 구글링.)
2021.02.25. Revised
이 책을 읽은 이후 3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다. 사실 그동안 위에서 내린 결론 "지금 내가 속한 네트워크에 원하던 원치않던 상관없이 최선을 다할 뿐이다"를 실천했지만 오히려 내 속에 강력하게 자리잡은 EGO의 도전과 설득을 끊임없이 당했다.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도 EGO는 틈만나면 나를 설득시키려 했고, 그 결과 나를 둘러싼 장벽(나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EGO가 만들어낸 내 자아를 가두는 우물같은 개념)만 더 두꺼워졌다. EGO는 언제나 나에게 미래의 시나리오를 상기시키며 나를 조종하려 했다. 새로운 인연을 무시하던 그리고 나만의 우물 속에서 내 상황을 합리화시키는 나를 꽤 자주 목격하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앞서서 내린 결론을 수정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어떤 일이나 임무나 행위에 대한 것일 뿐, EGO에게 휘둘린 최선은 진정한 최선이 아니다. 인간의 본능 역시 EGO가 애용하는 강력한 도구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의 결론은 "지금 내가 속한 네트워크에 그리고 언젠가 새롭게 생겨날 네트워크에 원하던 원치않던 EGO에 휘둘리지 않고 나를 내맡기자" 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각인데, '호모사피엔스가 과연 크로마뇽인보다 더 진화된 인류가 맞는가'라는 의심이 든다. 현생인류 역시 호모사피엔스의 후손이며, 현재 돌아가는 인류 사회를 보면 호모사피엔스의 특징이자 차별화 포인트인 그 사회성이 진화(?)한 결과 집단 이기주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대다수가 본인이 확증편향의 본능에 휘둘리는 것 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각자의 극단에 서서 상대 집단을 부정하고 욕하고 폄훼시키고 있다. 과연 이것이 그 사회성이란 특징이 진화해서 이렇게 된 것일까? 솔직히 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윤리와 도덕성을 들이대도 확증편향에 빠져버린 이상 본인의 양심과 윤리사상에서 올라오는 목소리는 결코 본인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에. 게다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치닫는 상황으로 가는 것이 사회성을 지닌 인류가 진화하는 아주 자연스러운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크로마뇽인이 지구를 정복했더라면 어땠을지가 너무나도 궁금하다. 아니 오히려 집단 이기주의나 확증편향 같은 부작용은 없었다고 긍정 아닌 긍정적 기대를 해본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과 이브가 호모사피엔스라는 인류의 최초의 조상이 아닐까... 아무튼 현생인류는 호모사피엔스니까 그토록 원하는 행복은 지금 내가 속한 사회 속에서 찾자. 그 사회가 편향적일수록 행복은 점점 멀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