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이다.
9급 공채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잘 다니고 있다.
그리고 아마 별 이변이 없는 한 정년까지 다닐 것이다.
요즘은 내가 처음 공무원생활을 시작한때보다 훨씬 더 공무원에 대한 위상이 높아져 있다.
위상이라면 좀 거창하고, 완전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고 있고, 많은 취준생 뿐만아니라 기존회사에 다니고 있는 중년들도 9급 공채시험을 준비한다고 들었다.
도대체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90년대 중반엔 별로 인정받지 못했던 9급 공무원이 왜 이렇게 많은 취준생들에게 선망의 직업이 됐을까?
이 책의 저자인 장강명 작가는 <표백>이란 소설로 처음 알게 되었다.
그 책으로 한겨레문학상을 받았었고, 나 역시 그때 당시 모르는 작가였지만, 문학상에서 상을 받았다는 이유로 그 책을 선택했었다.
그 당시 작가는 현직기자였고, 그 후로 장편소설을 여러권 냈고, 전업작가로 산다고 알고 있다. 아마 소설이 아닌 르포르타쥬인 이런류의 책은 작가로선 처음인것 같은데, 주제가 상당히 흥미로웠다.
작가가 가장 잘 아는 분야인 문학상에 대한 얘기가 상세히 나왔고, 그런 문학상 수상과 대기업, 공무원 공채제도가 비슷하다는 것이다.
작가는 역시 기자출신답게 통찰력이 참으로 뛰어난 것 같다
문학상, 대기업 공채, 공무원 공채 모두 합격인원은 정해져 있고, 그 안에 들어가기 위해 수십배, 수백배의 사람들이 매달려 있다.
일단 합격한 사람은 더 이상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불합격자의 세계로 밀려날 일이 없다.
물론 작가는 계속 작품활동을 하기 위한 노력을, 대기업은 그 안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한 노력을 해야하지만, 어쨋거나 합격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는 것이다.
그럼 나머지 수많은 불합격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그리고 왜 그렇게 그런 선발제도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리고 뭣때문에 개성이 강한 제 각각의 사람들이 선망하는 게 이렇게도 획일적일까.
작가의 말에 따르면, 간판을 중요시하는 문화때문이다.
사실 내용을 잘 모른다면 우린 간판으로 평가를 하고, 잘못된 선택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좋은 간판을 먼저 고르게 된다.
작가들의 경우, 문학상 출신과 문학상 출신이 아닌 소설가는 대우가 다르고, 호칭이나 방송출연여부등 평범한 우리로선 좀 의아한 것들까지도 차별을 받는다고 한다.
공채시험도 마찬가지다.
그 사람의 역량을 확인할수 없으니 시험으로 일단 사람을 뽑고 보자는 건데, 그 시험이라는게 실제 업무와는 무관한 시험이 대부분이고, 시험을 통과해서 입사를 하면 다시 돈을 들여 업무관련교육을 시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비실용적이고, 비효율적인 시스템인가...
그리고, 이런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몇 년씩이나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얼마나 낭비되는 인원들인가...
9급 공무원이 좋은 직업으로 인식되기 시작한 건 아마 imf이후일 것이다.
그때를 계기로 안정된 직장에 대한 열망이 사회적으로 높아졌고, 갈수록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해지니 더욱 더 이런 현상이 심화된 것 같다.
학벌과 업무능력이 별개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을 것이다.
특히 지방자치단체의 공무원처럼 대단한 똑똑함과 지식이 요구되는 직업이 아닌경우, 사실 나온 대학값도 못하게 일하는 직원도 여럿 봤다.
사실 업무능력은 일을 시켜봐야 알수 있는 건데, 공무원의 경우 일단 되기만 하면 그 사람이 일을 잘 못하든, 성격이 이상한 사이코든, 맨날 빈둥거리면 할 일을 제대로 안하든, 공무원으로서 치명적인 실수를 하지 않는 한 어떻게 할 도리가 없고, 고스란히 주변의 직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가 감히 공무원 공채제도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다면,
공무원도 인턴제도를 도입해서 몇 배수의 인원을 인턴으로 선발한 다음, 일을 시켜보고 선발하는 방식을 택하면 좋겠다.
그래봤자 어차피 공채제도의 연장이긴하지만, 그래도 일단 더 많은 사람에게 기회를 줄수 있고, 검증되지도 않은 성적이 좋은 사람을 무조건 뽑는 실수는 좀 더 줄일수 있지 않을까싶다.
시작은 장강명 작가의 책이었으나, 공채제도의 수혜자이면서 피해자이기도 한 나로선 내가 아는 공무원 공채제도에 대한 많은 생각을 해 보는 계기가 되었고, 작가가 제안한 여러가지 대안이 좀 더 구체화되고 현실화되어서 우리 아이들이 구직활동을 할때는 좀 더 다양한 길이 있으면 참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