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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다닥닥닥 기사

[도서] 후다닥닥닥 기사

질 바슐레 글그림/나선희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4점

동물 중에는 외모로 특징을 잡아 이름을 붙인 것이 많다. 달팽이도 껍데기가 달처럼 둥글고 팽글팽글 돌아가는 팽이를 닮았다고 붙인 이름이다. 느리게 움직이며 살아가는 목숨의 상징처럼 여긴다. 옛날 사람들은 달팽이를 와우’(蝸牛)라고 했는데, ‘는 달팽이, ‘는 소라는 뜻으로, 행동이 소처럼 느릿하고 굼뜨다는 의미가 들었다.

 

달팽이를 느릿하고 굼뜬 동물로만 여기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 거의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은 야행성이기 때문일 테다. 실상 달팽이는 비록 몸집은 작지만 두려움 없고 지칠 줄 모르는 탐험가다. 낮에는 잠을 자다 저녁이면 일어나 밤새 움직인다. 미끄러지듯 기어가 먹이 활동을 한다. 물 흐르듯이 이동하는 달팽이는 신비하고 마치 무술의 고수처럼 우아하기도 한다. 질 바슐레는 사람의 눈으로 보는 달팽이의 특징을 드러내면서도 얼마나 현명한지 재미있게 보여준다. 아이디어와 메시지가 딱 들어맞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수탉의 첫 울음소리가 들리자 달팽이 후다닥닥닥 기사는 한쪽 눈을 뜨며 소리친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야 한다. 물렁더듬이 기사가 어제저녁 군대를 이끌고 딸기밭에 쳐들어왔기 때문이다. 전쟁이 일어난 상황. 후다닥닥닥 기사는 아침을 먹고, 헬스장을 다녀오며, 목욕한 뒤에야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다. 몇 군데 답장까지 보낸다. 아이들에게 인사하고, 아내에게 뽀뽀까지 한다. 전쟁터로 가는 길에 공주를 구하고, 길 잃은 소녀에게 길을 가르쳐 주고, 거인과 맞서 싸우고, 옛 여자 친구와 체스를 두며, 버섯에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새긴다. 드디어 전쟁터다. 그렇지만 벌써 점심시간. 양쪽 군대는 캠핑을 온 듯 성찬을 준비한다. 그러고는,

 

쥐 죽은 듯 고요해!

전쟁터의 시체처럼 모두 바닥에 널브러져 있어.

다 죽은 걸까?

아니, 배가 불러 싸울 수 없었어.

잠시 낮잠을 자야 했지.

 

잠에서 깨어난 뒤는 너무 늦어 버렸다. 인정사정없는 피비린내 나는 끔찍한 전투를 짧은 시간에 끝낼 수 없다. 후다닥닥닥 기사와 물렁더듬이 기사는 서로 악수하고 다음 날 만나기로 약속한 뒤 양쪽 군대는 철수한다. 집으로 돌아갈 때 후다닥닥닥 기사는 후다닥닥닥 돌아간다. 집에 오는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 다음 날 수탉은 첫 울음소리가 들리자 달팽이 후다닥닥닥 기사는 한쪽 눈을 뜨며 소리친다. 시간이 없어 서둘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그다음 이야기를 알고 있다. 후다닥닥닥 기사의 하루를 보며 진정 우리한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오늘 해야 할 일이 무엇이고 미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자연스레 알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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