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초중고 정규 교육과정을 받았다면
서양 철학사를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이름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의 국가는 플라톤이 저자이지만
그의 스승인 소크라테스가 화자로 이야기를 한다.
플라톤의 저서는 소크라테스의 사상을 정립하여
정리한 것으로 대부분 대화형으로 되어 있다고 한다.
플라톤 국가는 총 10권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전승 과정에서 누군가가 이렇게 정리한거지
플라톤이 10권으로 나눠 정리한건 아니라고 한다.
모르고 그냥 읽어서 구분해서 보는건 줄 알았는데
굳이 각 권을 독립해서 볼 필요는 없다고 한다.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이름때문에 플라톤 국가를
생각하면 유시민의 국가란 무엇인가도 같이 떠오른다.
내용은 별개로 제목은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소크라테스와 소피스트인 트라시마코스의 정의에
대한 논쟁은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떠올리게 한다.
어릴 때 교양과 철학 수업 시간엔 당연히 세뇌당하듯
소크라테스가 옳은 것으로 교육 받고 외웠지만
성인이 된 지금의 나에겐 트라시마코스의 주장이
더 맞다는 생각이 들고 공감이 된다.
현실과 이상의 차이라고도 생각되고
단순히 정의를 어떻게 정의하냐의 문제 같기도 하다.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예로 드는 이야기를 제외하고
전부 다는 아니지만 국가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보면
현재의 이야기라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는 내용들이다.
사회의 구성원들과 국가라는 시스템 구조는 같고
아마도 이 시대의 모습이 현재의 원형이라서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더 나아진 모습이 없이
계속 티격태격 거리고 다시 플라톤의 국가를 보며
현재를 반성하고 고치려고 하고 역시 역사는 반복된다.
이 글은 컬처블룸을 통해 제품 또는 서비스를 제공받아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