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에 '시(詩)'에 대한 공식화된 분석에 적응을 해야 했기 때문에 사실 시(詩)를 그리 많이 읽지 않았다. 시를 읽고 그에 대한 느낌이 하나로 정형화되어 그걸 강요하는 것이 너무나 싫었다. 하지만 최근 다양한 경로로 조금씩 시(詩)를 접하면서 이제는 내가 느낀 그대로 시(詩)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면 된다는 생각에 시집을 읽고 싶게 되었다. 수많은 시인들의 작품들 중에서 어떤 것을 읽어야 할지 많은 고민을 하였지만, 결국 나는 박진성 시인의 시집인 [하와와, 너에게 꽃을 주려고]를 선택하였다. 최근에 알게 된 그의 딱한 사연으로 인하여 그를 알게 된 점도 있었지만, 이 시집이 '연애시집'이라는 점에서 예전의 설레였던 시기를 떠올리면서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과나무에
사과 꽃이 피었다가
사과 잎이 머물렀다가
사과 열매가 열리는 것처럼
나는 당신에게 매달려 있네
- p. 19 : [사과] -
그동안 시(詩)가 어렵다는 편견을 적어도 이 시집에서는 접어두어야 할 것 같다. '사과'를 소재로 하여 남녀의 달달한 사랑을 이리 쉽게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새삼 시(詩)의 위력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전혀 어렵지 않은 표현을 통하여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로웠다. 삼국지연의에서 등장하는 조식의 '칠보시(七步之詩)' 역시 형제간의 우정이라는 단어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콩깍지로만 그것을 온전히 표현했던 것처럼 사랑과 연애라는 직접적인 표현없이 오로지 '사과'로만 그러한 것을 고스란히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왜 사람들이 시(詩)에 대하여 심취하게 되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나 다시 태어나면
식물도 동물도 아닌
당신의 창문으로 태어나리라
바람 불면 바람 막고
비 오면 비 맞고
눈 오면 당신이 여는
창문으로 태어나리라
애초에 생명이 없어서
영원을 사는
당신의 창문으로 당신의 눈빛을
지키리라
당신의 불면을 고요하게
재우리라
- p. 79 : [창문] -
이 시는 사실 내가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유달리 좋아했던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들의 죽음을 유리창에 서린 김을 통하여 표현하던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은 어렵지 않게 그 애틋함을 느낄 수 있었는데, 박진성 시인은 [창문]을 통하여 영원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이 간다. 창문이라는 존재는 추위와 더위, 소음 등을 막아주는데, 정작 투명하기 때문에 가끔 실체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러한 창문이 되고 싶다는 시인의 마음은 항상 어디에서나 그 사람을 지켜주고 싶다는 염원을 잘 드리우고 있는 것 같아서 정지용 시인의 [유리창]과 통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천변을 걸었다
물과 물이 서로를 만나서
강물이 되는 것처럼
너의 웃음이 나의 웃음을 밀고
너의 울음이 나의 울음을 덮고
같은 온도로
우리는 계속 걸었다
- p. 99 : [물의 온도] -
시인은 연인과 천변을 따라서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일까? 천변을 걸으면서 창작된 시(詩)가 제법 많다는 느낌이 드는데, [물의 온도]는 이미 제목부터 '아~~!'라는 나의 감탄을 이끌어낸 시(詩)라 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 따지고 든다면 강물의 온도는 그 깊이에 따라 분명 차이가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강물은 같은 온도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강물의 온도가 남녀의 사랑으로 재해석될 수 있다는 사실이 인상적이었다. 분명 강물 내부에서도 다양한 온도들이 합쳐져서 평균의 온도로 수렴하는 것처럼 나와 너의 슬픔과 기쁨이 함께 만나서 수렴하는 상태가 바로 사랑이라는 시(詩)의 그 표현들이 진정 시(詩)란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탄을 자연스럽게 이끌어내는 듯한 느낌이 든다.
[하와와, 너에게 꽃을 주려고]는 이처럼 달달한 사랑과 쓰라린 이별을 노래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전자에 치우친 느낌이다. 그래서, 읽으면서 어렵지 않게 나 역시 과거의 풋풋했던 연애 시절을 떠올리면서 사랑의 좋은 면만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나 생각된다. 사실 박진성 시인이 현재 처한 상황은 녹록치 않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시기에 이러한 시집을 출간하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그에게는 남다른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된다. 그의 억울함은 풀렸지만, 이미 찍힌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 것 같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애시집이라는 타이틀로 출간된 [하와와, 너에게 꽃을 주려고]는 그의 희망적인 의지를 보여주려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게 된다.
예전에는 읽어도 도통 이해하기 힘든, 또는 많은 분석이 필요한 시(詩)를 보면서 혀를 내두를 때가 많았다. 하지만 결국 시(詩)를 읽는 선택권은 나에게 있기 때문에 이제는 내가 읽고 충분히 공감하면서 느낄 수 있는 시(詩)도 얼마든지 있음을 [하와와, 너에게 꽃을 주려고]를 통하여 확실히 알 수 있게 되었다. 비록 내가 느낀 바와 해석이 시인의 의도와는 다를지라도 내가 느끼고 이해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나에게 맞는 시(詩)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 시집을 읽은 것을 계기로 앞으로 시(詩)에 대하여 보다 많은 관심을 가질 수 있어서 박진성 시인의 이번 시집은 나에게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 같다. 아울러 억울함이 풀린 만큼 이제는 박진성 시인의 시가 계속하여 독자들과 호흡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