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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필사 리뷰 이벤트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도서]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

나태주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산문을 읽다 시를 마주하면서 드는 생각은 바로 동양의 대표적인 미가 여백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이다. 단지 글자가 적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시어(詩語) 사이의 형식적인 간격과 더불어 홀로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시의 표현들이 지닌 의미가 깊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나태주 시인의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는 바로 그런 공간의 아름다움을 시를 연상케 하는 그림과 함께 마주할 수 있는 시집이기에 깊은 여운이 남는다. 또한 시를 읽으면서 거꾸로 시의 제목을 유추하는 묘미는 시의 특성을 잘 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언제적 헤어진

애인이었을까?

 

길 가다가 멈춰서

아직도 나를 지켜보고 있는

 

새하얀 얼굴의

저 여자.

 

   - 흰 구름 -

 언제나 하늘을 바라보면 볼 수 있는 구름이 왜 헤어진 애인처럼 보였던 것일까? 항상 의식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내 위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구름의 존재가 바로 그녀였던 것은 아닐까? 하늘에 구름이 떠 있는 동안에는 애인을 잊을 수 없기에 '새 하얀 얼굴'의 구름은 영영 쉽게 잊혀질 수 없는 그녀를 상징하는 듯하다.

 

달 없이도

밝은 밤입니다.

 

꽃 없이도

향기로운 밤입니다.

 

그대 없이도

설레는 밤이구요.

 

   - 봄밤 -

 '봄밤'이 정말 그대 없이도 설레이는 밤일까? 그러고보면 이 시는 역설적인 상황이 시구마다 느껴진다. 달이 없음에도 밝고, 꽃이 없어도 향기롭다니 이 무슨 조화인가? 그만큼 '봄밤' 자체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것일까? 달과 꽃,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마도 진정한 봄의 밤은 그러한 것들이 있기에 더욱 의미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시는 모순을 통한 강조를 보여주고자 한 것 같다.

 

 

어딘지 모르고 간다

누군지 모르고 만난다

무슨 일인 줄도 모르고 한다

날마다 열심히

다시 날마다 열심히.

 

   - 삶 -

 

 

 우리의 삶에 대하여 말하고자 한다면 그 끝을 헤아릴 수 없다. 저마다 자신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니 그로 인하여 각기 다른 삶이 존재하고 있으니까. 하지만 나태주 시인의 [삶]을 읽노라면 시의 내용이 우리의 삶에 대한 공통분모를 너무나 간결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아니라고 항변하고 싶지만, '열심히' 살면서 그 모르던 것이 훗날 자신의 삶에서 의미있는 것으로 되어 있던 것을 알기에 자연스럽게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외출했다가 돌아온 아버지

첫 말씀은 언제나

너의 엄마 지금 어디 있냐?

셨다

어머니 집 안에 계시다 그러면

들어오시고

밭에 계시다 그러면 이내

밭으로 가곤 하셨다.

 

  - 자전거 받쳐놓고 -

 [자전거 받쳐놓고]의 제목에서 연상되는 아버지의 이미지는 이전의 가장으로서 한껏 위엄을 지닌 존재이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온 아버지의 물음은 처음에 가장으로서 자신의 의미를 다시금 확인시키려는 시도로 보이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러한 시대에서 아버지의 어머니에 대한 은은한 사랑을 곧바로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마음에 든다. 그 시대의 부모님들의 사랑을 어쩜 이렇게 짧은 글로 듬뿍 담아낼 수 있는 것인지 새삼 시(詩)의 위력을 실감하게 된다.

 

 

 

너무 예쁘고 귀여워

이 편에서 오히려

사진을 찍어주고 싶다

사진기 들고 있는 너.

 

   - 눈사진 -

 

 

시(詩)에 쓰이는 표현들은 사전적인 의미와 더불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새로운 표현들을 만들어 내는 점도 역시 시(詩)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눈사진]이 바로 그러한 시가 아닐까 생각된다. 우리는 사진기를 들고 무언가를 찍으려고 집중한다. 그런데, 소중한 추억을 담아내려는 그 모습 자체가 너무나 귀엽고 예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을 눈으로 사진을 찍는다는 '눈사진'이라는 제목은 기존의 관념을 확 바꾸어 놓는다. 사진을 찍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 역시 상대방의 '눈사진'에 영원히 기록되고 있으니 말이다.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프다]에 수록된 시들은 참으로 간결하다. 심지어 시집의 제목 역시 그 자체가 하나의 시라는 점은 그러한 것을 잘 드러내고 있다. 그 여백을 그림과 함께 우리의 생각과 느낌으로 채울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시집은 매력이 있다. 나처럼 이제 시의 매력을 조금씩 알아가는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시의 내용 - 시의 제목 - 그림'으로 구성된 이 시집은 우리로 하여금 감성에 젖게 함은 물론이고, 무한한 상상의 나래로 빠지게끔 한다.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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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수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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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우와 책찾사님의 글씨와 함께 보는 리뷰 좋은 걸요, 참 멋진 이벤트를 해서 우리 블친님들 글씨까지 볼 수 있어 참 좋네요 간결하고 쉬운 시어로 펼쳐지는 인생 멋져요

    2019.02.13 12:2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글씨 자체가 좀 유치스러워서 사실 고민이 많이 되었는데, 평소 필사를 꾸준히 하고 있기에 이런 글씨로도 필사를 하는 사람이 있구나라는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 써 보았습니다. 특히 시는 직접 이렇게 써보면서 함께 되뇌이면 더 느낌이 오는 것 같아서 자주 하는 편이기도 하구요. 시 분야에서 제가 존경해마지 않는 시골아낙님에게 이런 칭찬을 받으니 저로서는 오히려 더 고마울 따름입니다. ^^

      2019.02.13 12:39
  • 파워블로그 march

    멋진 리뷰에,멋진 필사에요.책찾사님 시 읽기가 계속 되고 있군요. 필사해서 보니 시의 느낌이 더 살아나는듯 해요. 나태주 시인은 자주 스치다보니 익숙해졌어요. 책찾사님의 '그래서 나는 이 시집이 참으로 마음에 든다'는 말씀이 참 따뜻합니다.^^

    2019.02.13 14:4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제가 march님은 물론 시골아낙님을 비롯한 많은 블친님들의 시 읽기를 보면서 조금씩 배워왔던 바를 직접 경험하고자 조금씩 읽어보려고 계획중이었는데, 리뷰어 이벤트로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또 시를 직접 필사하면서 그 의미를 되살릴 수 있는 것 같아서 부끄럽지만, 필사도 함께 리뷰에 넣어봤습니다. ^^
      march님 정말 대단하신데요? 마지막 리뷰의 마무리를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그 짧은 문구로 이 시집을 말하고자 했는데, 바로 캐치하시다니 대단한 안목이십니다. ^^

      2019.02.13 15:17
  • 파워블로그 신통한다이어리

    괜찮은데요..!근데 글씨가 기대한 것처럼 악필이 아닙니다요... 제 글씨는 정말 악필이고...ㅋㅋㅋ... 악필이 아니라는 데에서 실망을 금할 길이 없사옵니다...ㅋㅋ..시는 정말 좋네요. 아직도 너를 사랑해서 슬픈 현실...ㅋㅋ...

    2019.02.13 14:5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음, 도대체 어느 정도의 악필을 기대하셨길래 제 글씨를 악필이 아니라고 하시는건가요? 신다님 ^^ ㅋㅋㅋ
      사실 교사 출신인 아버지와 인사쪽 일을 하는 동생의 글씨는 정말 멋지고 훌륭한데, 저는 대학 시절 이후로 손글씨는 거의 쓰질 않아서 원래 셋중에서 가장 못썼는데, 더욱 퇴화한 상태입니다. ㅋ ㅠ.ㅠ

      2019.02.13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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