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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

[도서] 돌이킬 수 없는 약속

야쿠마루 가쿠 저/김성미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 관점에 따라 이야기의 결말 및 주요 단서가 포함될 수 있으니 읽기 전 참고하세요. )

 

 좋아하는 작가의 작품이거나 서점 또는 도서관에 가서 책장을 몇 번 넘겨보고 마음에 들면 결정하는 것이 나의 추리소설의 선택 방법이다. 그런데,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그러한 기준과는 달리 인터넷을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한 흥미로운 광고 문구를 통하여 관심을 갖게 된 책이다. "제 딸을 살해한 놈들을 15년 후에 죽여주세요."라는 문구를 본다면 한 번쯤 흥미를 느낄 수 있지 않을까? 더구나 이러한 마케팅 전략이 꽤 성공을 거두었는지 한국에 2017년에 출간된 이 책이 최근 '역주행베스트셀러'라는 타이틀과 함께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고 있어서 나 역시 이제서야 이 작품을 읽게 되었다.

 

 15년 후 딸의 복수를 요청하는 이 책에 대한 광고 문구는 확실히 이 책의 첫 장을 여는 강력한 동기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HEATH(히스)'라는 식당 겸 바에서 일하는 무카이 사토시의 시선으로 펼쳐지는 이야기에 이내 빠져들게 된다. 40대 초반의 무카이 사토시는 친구인 오치하이가 운영하는 이곳에서 바텐더로 일하면서 아내와 딸을 둔 단란한 가정을 이루며 살고 있다. 손님들로부터 평판이 좋은 사토시는 가게의 직원들도 알뜰하게 챙기면서 안정된 삶에 내심 고마워하면서 또 만족해 한다. 하지만 이러한 그의 평온한 삶은 발신인이 사카모토 노부코로 되어 있는 편지로 인하여 곧 엄청난 혼란을 마주하게 된다.

 

 "그들은 교도소에서 나왔습니다."

 이 단 한 줄의 편지 내용을 읽는 순간 무카이 사토시의 숨겨진 과거의 행적이 독자에게 펼쳐진다. 사실 그는 16년 전 야쿠자들의 보복을 피하기 위하여 도망다니다가 우연히 사카모토 노부코라는 여성을 만나게 된다. 당시 55세였던 그녀는 마쿠이 사토시, 아니 본명이 다카토 후미야인 그에게 숙식을 제공하면서 도움을 준다. 사실 후미야는 태어날 때부터 끔찍한 얼굴로 인하여 사람들의 외면을 받으면서 절도와 강도질로 살아오다가 야쿠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 상태였다. 그러한 후미야를 홀로 연립주택에 살고 있던 노부코가 도움을 준 것이었다. 그리고, 성형을 하고 신분을 위조하기 위하여 꽤 많은 돈이 필요했던 후미야에게 노부코는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자신의 딸을 납치하여 온갖 끔찍한 일을 저지르고 살해한 후에 토막을 낸 범죄자 두 명이 나중에 석방되면 그들을 죽여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광고 문구와는 달리 정확히 15년후라는 언급은 없다. 무기징역 상태에서 감형이 되어 석방되면 복수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쯤되면 이 책의 광고 문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는 확실히 깨닫게 된다. 자신의 딸을 죽인 범죄자들이 무기징역 상태에서 언제 감형을 받아 나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법의 판결에 대하여 분노하는 그녀의 입장에서 복수를 꿈꾸는 것은 어느 정도 납득이 간다. 머리로는 분명 법의 판결을 받아들여야겠지만, 자신의 딸에게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을 저지른 그들이 사형 판결을 받지 않은 것에 대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녀가 자궁암으로 인하여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는 점이다. 곧 죽음에 임박한 그녀로서는 언제 석방될지 알 수 없는 범인들에 대한 직접적인 복수가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다카토 후미야는 고민을 하게 된다. 비록 끔찍한 얼굴로 태어나서 자포자기의 상태로 범죄를 저지르면서 살아왔지만, 살인이라는 끔찍한 범죄에는 관여한 적이 없었기에 그는 쉽게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당장 야쿠자에게 잡힌다면 자신이 죽게 되는 상황에 처해있었기에 그녀의 제안은 엄청난 유혹으로 다가오게 된다.

 

 독자로서 우리는 그가 결국 제안에 응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헤어날 수 없는 밑바닥 상태였기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그 돈으로 성형 수술과 신분 세탁을 하여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은 해봄직한 시도로 보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다면 곧 야쿠자에게 잡혀 죽을 수 있는 상황이니 바람직하지 못한 그녀의 제안은 오히려 설득력있게 느껴진다. 더구나 다카토 후미야는 범죄자들이 언제 풀려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고, 설령 감형되어 석방되더라도 시한부 삶을 선고받은 노부코가 죽은 뒤에 그 약속을 굳이 지키지 않아도 되리라는 점도 그녀의 제안에 응하게 된 이유 중 하나였다. 후미야는 노부코의 제안을 받아들여 성형 수술과 동료의 도움을 받아 무카이 사토시라는 인물로 새롭게 태어난다. 더구나 식당에서 바텐더 일을 배우는 과정 중에 만난 오치하이 유키히로와 친구가 되면서 결국 그와 함께 동업하면서 오늘의 안정된 삶을 이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은 줄로 알았던 사카모토 노부코라의 이름과 함께 두 범죄자가 석방되었다는 내용의 편지는 사토시에게 큰 혼란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게 된다.

 

 16년 전, 절박한 상황에서 받아들인 그 제안이 현실화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한 무카이 사토시의 상황은 확실히 흥미롭다. 범인들을 죽여야 하는 갈등도 그렇지만, 무엇보다 죽은 줄로 알고 있던 노부코가 편지를 보낸 점에 오히려 눈길이 가게 된다. 더구나 실제 의뢰받은 복수를 하지 않기로 결심한 그에게 역시나 같은 이름으로 복수를 실행하지 않으면 사토시의 가족에게 재앙이 올 것이라는 협박 편지가 도착하면서 추가적인 긴장감이 연출된다. 더구나 노부코의 영혼이라면서 걸려온 전화(목소리는 기계음으로 위조)가 그를 압박하면서 그는 살인은 물론 이제서야 자신을 감시하고 협박하는 그 존재에 대하여 알아내야 하는 처지에 직면하게 된다. 그것이 자신이 아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말이다. 수소문 끝에 사토시는 노부코가 이미 암으로 사망한 사실을 알게 되었기에 도대체 자신과 노부코만이 알고 있던 그 복수에 대한 제안을 16년이 지난 지금 누가 왜 들먹이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제 사토시는 석방된 두 명의 범인을 살해해야 하는 상황은 물론 마치 자신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듯한 인물로부터 가족을 보호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더구나 자신의 과거의 행적마저 노출될 우려가 있어서 사토시의 고민은 더욱 커져간다. 독자의 입장에서도 과연 사토시를 협박하는 인물은 누구이며 또 이야기는 정말로 석방된 두 범죄자에 대한 응징으로 이어질지의 여부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다. 분명 사토시를 협박하는 인물은 그의 모든 행적을 잘 알고 있기에 협박하는 이의 정체가 주변인물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또한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사토시가 추가적으로 만나는 인물들 역시 우리는 예의주시하게 된다. 과연 사토시는 이 난관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자신의 약점과 과거를 이미 알고 있는 그 미지의 인물과의 대결이 힘겨워 보이는 상황에서 이 모든 상황의 진실은 무엇일까?

 

 [돌이킬 수 없는 약속]은 확실히 초중반까지 다양한 관점에서 몰입하게 된다. 사토시를 압박하는 미지의 인물과 상황은 확실히 추리소설에서 보여주는 긴장감과 호기심을 적절하게 자극하고 있으며, 노부코의 시선에서 보여지는 범죄자에 대한 법의 판결에 대한 불만은 일종의 사회파적인 부분마저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말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초중반의 온갖 설정에 비하여 다소 평면적으로 마무리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게 된다. 추리소설에 익숙한 독자라면 꽤 이른 시기에 사토시를 협박하는 인물의 정체에 대하여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을텐데, 그것이 결말에서 초중반의 진행과는 달리 너무나 빨리,그리고 관점에 따라서는 별다른 반전없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여질 수 있기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확실히 이 작품을 범인을 찾기 위한 부분에만 초점을 맞춘다면 그러한 전개에 대사여 다소 아쉬움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 대한 책의 평가를 접하게 된다면 관점에 따라 달리 즐길 수 있는 부분이 있음을 깨달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수많은 복선이 깔려 있는데, 무심코 지나친 소품이나 에피소드가 뒤에서 의미를 갖고 연결되어 아귀가 들어맞는다. 던져진 단서 중 회수되지 않는 것이 없으므로 작은 장면 하나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책의 앞표지 안쪽에 적힌 이 작품의 평가를 염두해 둔다면 단순히 범인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보다 책의 내용 곳곳에 던져진 수많은 단서를 찾고 또 그 단서가 결말 부분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에 대하여 더욱 관심을 갖게 될 수 있다. 따라서 나로서도 사실 범인의 정체보다는 앞서 무심코 지나간 많은 부분들이 어떻게 사건의 진실과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전반적으로 이 작품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대대적인 작품에 대한 광고로 역주행을 질주하는 이 작품이 오히려 자주 노출된 광고로 인하여 독자의 눈높이가 더욱 높아져서 상대적으로 결말 부분에 대한 실망을 언급할 수도 있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무난하게 즐길 수 있는 한 편의 추리소설을 만난 것 같아서 대체적으로 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동의하게 된다. 물론 이것을 강요할 생각은 없다. 모든 책이 그렇지만, 특히 추리소설은 개인에 따라 지극히 호불호가 갈리며 모두를 납득시킨다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장르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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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신통한다이어리

    저는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서 금방 읽어버렸는데, 나름 재미있게 읽었으나 결말의 허술함 때문에 약간 실망한 적이 있지요. 그래도 더운 여름 더위를 살짝 날려버리기엔 좋은 소설이었던 기억이 나네요~

    2019.09.21 16:3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신다님처럼 도서관에서 빌려서 곧바로 읽어버렸어요. 확실히 이야기 초반부터 몰입의 요소가 꽤 많았거든요. 광고를 통한 기대에는 못미쳤지만, 그래도 장르적인 특성을 무난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던 것 같아요. ^^

      2019.09.22 18:42
  • 파워블로그 산바람

    자세한 리뷰로 인하여 한 편의 추리 소설을 읽은 것 같은 느낌을 받고 갑니다. 수고하셧씁니다.

    2019.09.21 20:0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저도 오랜만에 빌려서 읽은 추리 소설이었는데, 그 느낌을 조금이나마 공유한 것 같아서 기쁘네요. 감사합니다. ^^

      2019.09.22 18:54
  • 파워블로그 찻잎향기

    수많은 복선과 단서가 결말에서 빠짐없이 퍼즐처럼 맞춰지는, 완벽한 스릴러 추리 소설을 읽고 싶었는데. 기회 닿으면 찾아 보도록 하겠습니다. 리뷰가 저를 아주 격하게 유혹합니다 ^^

    2019.09.21 20:2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가끔 이런 장르의 책들로 머리를 식히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읽은 책입니다. 결말의 진행 자체가 조금 아쉽지만, 전반적으로 각종 단서들이 들어맞는 과정에서 충분히 재미를 느낄 수 있으시리라 생각됩니다. ^^

      2019.09.22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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