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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곤베리 소녀

[도서] 링곤베리 소녀

수산네 얀손 저/이경아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영화 [아포칼립토]는 초반부에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의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역사 속에서도 아즈텍족이 이웃 부족에게 '꽃 전쟁'이라 불리우는 전쟁을 통하여 포로를 확보하여 그들을 인싱공양의 제물로 바쳤다는 사실과도 일치한다. 더구나 이러한 인신공양은 16세기 스페인의 정복과 더불어 아즈텍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진행되었으니 역사적으로도 꽤 충격적인 것이었다. 다만 영화는 일방적인 서구의 시각으로 인하여 아즈텍 제국의 멸망이 내부의 그러한 야만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서양 문명과의  조우로 인하여 마치 그들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수산네 얀손의 [링곤베리 소녀]인신공양을 북유럽 스웨덴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동안 북유럽의 장르 소설이 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늪을 배경으로 인신공양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모스마르켄의 토탄 늪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링곤베리 소녀]는 흡사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의 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악마개죽음의 황무지이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클리셰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링곤베리 소녀] 역시 모스마르켄의 늪지와 더불어 과거 그곳에서 발견된 잘 보존된 미이라를 통하여 인신공양의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늪의 음산한 분위기와 '링곤베리 소녀'라 불리우는 늪에서 발견된 철기 시대의 신에게 바쳐진 미이라의 존재, 그리고 주인공이 머물고 있는 '크바그미레'의 장원과 관련된 전설은 독자로 하여금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하여 묘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요한네스라는 젊은 남자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늪지대를 조깅하다가 누군가에게 둔기를 맞아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된다. 그 남자를 발견한 인물은 나탈리에라는 생물학자로서 요한네스와 교제하고 있던 여성이다. 그녀는 온실효과가 습지의 부패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거대한 늪지대가 조성된 모스마르켄으로 와서 크바그미레 장원의 별채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날마다 조깅을 하면서 그녀가 머물던 숙소를 지나가면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둘은 서서히 호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건이 발견되었으니 나탈리에는 자신이 느끼고 있던 불길한 기운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더구나 의식을 잃은 요한네스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수많은 10크로나 동전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바로 인신공양의 제물로 요한네스가 선택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늪지대에는 과거 '링곤베리 소녀'라는 미이라가 발견되면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더구나 철기시대의 인물로 추정되는 그 미이라가 인신공양의 제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어 비상한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요한네스가 둔기에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진 곳도 바로 그 '링곤베리 소녀'가 발견된 늪지대라는 점제물을 연상케 하는 10크로나 동전들이라는 점에서 사건은 범죄가 아닌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더구나 나탈리에가 요한네스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생각하여 그를 찾아나선 이유도 날씨의 급격한 변화라는 부분은 그녀에게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그녀는 원래 모스마르켄 출신으로서 14년 전에 이곳을 떠나서 연구를 위하여 다시 돌아왔기에 이제 이야기는 현재의 사건에 대한 수사와 함께 그녀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 오버랩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게 된다.

 

 이제 이야기는 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경찰과 함께 일하던 사진 예술가 마야 린데와 의식을 잃은 채 병실에 누워있던 요한네스 곁에서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그 시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는 나탈리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특별한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요한네스의 주머니를 가득 채운 10크로나짜리 동전들은 이 사건이 '링곤베리 소녀'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마야 역시 그러한 점에 착안하여 그 미이라가 전시된 박물관 관장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 의미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고고학자이자 박물관 관장이었던 사만다모든 민족이 영적 세상과 관계가 있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와 접촉하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기도를 하고 제물을 바친 행위가 바로 그러한 시도로 해석될 수 있음을 언급한다. '링곤베리 소녀' 역시 장대에 꽂혀진 점을 들어서 일종의 인신공양의 제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관장의 설명으로 인하여 마야는 이 사건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나탈리에가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 중에서 실제로 다시 만난 이웃집 아저씨였던 예란의 존재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원래 물리학자였던 그가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적인 존재에 집착한 것은 과거 그 늪지대에 실종 사건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점과 연결되게 된다. 과거 나탈리에가 그곳에 살 때에도 예란은 그녀에게 영적인 존재에 관한 것들을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냈기에 그의 존재는 늪지대를 배경으로 한 의문의 실종 사건들마저 다시 재고될 필요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제 사건은 단순히 요한네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늪지대에서 발생한 다수의 실종 사건으로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마야의 색다른 발견과 점점 더 뚜렷해지는 나탈리에의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인하여 이 사건이 단순한 연쇄 살인마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인지 아니면 인신공양의 풍습이 현재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인지 독자는 갈팡질팡하게 된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고대의 인신공양이라는 소재를 내세우고 있기에 이 작품은 북유럽 스릴러 특유의 음산함과 함께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보다는 다소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늪지대를 배회하는 영적인 존재는 분명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과거 그곳에서 발견된 '링곤베리 소녀'라 불리우는 미이라의 존재로 인하여 독자에게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면서 사건의 진실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분명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몇가지의 단서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저자가 의도한 바에 이끌리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밝혀지는 이 사건의 진실은 약간 당황스럽다. 충분히 있음직한 결말이지만, 개인적으로 사건의 동기가 조금은 미약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네 얀손의 처녀작인 [링곤베리 소녀]시종일관 독자에게 인신공양이 내뿜는 기묘한 분위기와 늪지대라는 배경이 주는 음산함으로 인하여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마야의 수사와 나탈리에의 과거에 대한 기억의 회복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실체와 영적인 존재의 적절한 균형은 논리적인 추리를 바탕으로 하는 장르에서 그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영적인 부분들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더불어 이 작품이 수산네 얀손의 처녀작이기에 이 장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작가 목록에 그녀를 추가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작품을 통한 또 하나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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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march

    나탈리에는 과거의 어떤 사건으로 인해 기억이 불분명한 상태에 있었던걸까요? 그녀의 과거 기억과 현재의 상황들을 조사하면서 밝혀지는 진실이 무엇일지 궁금하네요.인신공양이 있었다는 사실을 이용한 연쇄살인에 무게가 두어지지만 그 동기가 무엇이었을지...이해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었던가봐요.조금 약했다 하시는 걸 보면. 읽고싶은 작가가 늘어나는 것은 좋은 것같아요.^^

    2019.09.30 08:5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친구의 언니와 가족에 대한 희미한 그녀의 기억이 다소 스포의 여지가 있어서 따로 언급하지는 못했어요. march님께서 의문을 가지셨던 부분들이 실제로 이 책을 읽었을 때, 아마 대부분의 독자들이 가지게 되는 부분과 일치합니다. 인신공양이 내뿜는 분위기로 인하여 다소 독특한 느낌의 소설인데, 결말에서 나타난 범죄의 동기는 조금 공감하기는 어려웠지만, 저자의 처녀적이라는 점과 독특한 소재로 인하여 그 이후가 기대되는 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

      2019.09.30 09:03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인신공양 등 오컬트를 소재로 하고 있는 책이군요, 저는 조금이라도 무서운 내용이면 읽기가 너무 무서워요 그나마 이렇게 리뷰로나마 접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2019.09.30 19:0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아, 내용은 그다지 무섭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추리 장르치고는 선정적이거나 끔찍한 장면 모사는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인신공양을 전면으로 내세우고 있기에 분위기가 좀 음산한 느낌이 들긴 하는군요. ^^

      2019.09.30 19:07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우리 역사에도 '인신공양'의 모습을 엿볼 수 있지요. 부여의 '순장'이 그것이죠. 실제로는 그 당시에는 꽤나 '일반적인 모습'이었습니다. 중국의 고대역사에서도 보여지며, 고조선을 비롯해서 삼한에까지 '순장'은 참여하는 것만으로도 영광이라는 인식이 강했다죠. 종교적 의미도 강해서 '영혼숭배 사상'이 팽배할 즈음이었기에 '사후세계'를 믿고 있었고, 왕이나 귀족의 죽음에는 어김없이 '죽어서도 모셔야 한다'는 사명감을 강조하던 시절이었으니까요.

    이런 '순장' 전통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동물이나 인형으로 대체하며 '인명 존중'이 강했다기보다는 '노동력 보존'이라는 현실적인 근거를 대고 있지만, 저는 아무래도 여기에 의문이 듭니다. '순장'이 점차 사라지던 시기 이전과 이후에도 여저히 '신분제 사회'가 매우 강력했으며 신분이 낮은 사람들의 '목숨'을 소중히 여겼다는 것에 그다지 신뢰가 되지 않습니다. 그나마 정복전쟁과 노동력 확보라는 이유가 가장 그럴 듯 싶지만 '순장'을 영광으로 여기던 생각이 그리 한 순간에 사리지게 되는 근거로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여기거든요.

    아즈텍 제국만 보더라도 16세기까지도 '인신공양'은 영광이었습니다. 멀리 인도의 예를 들것도 없이 조선시대에도 '열녀'라는 이름으로 자결하는 여인은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사회적 약자'들에게만 '영광'이라는 이미지를 내세워 '희생'을 강요했다는 점입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말이죠. 그렇다면 '인신 공양'은 누구를 위해서 하는 걸까요? 사회적 약자의 '희생'을 통해서 이득을 얻을자가 누구일까요?

    미이라로 발견되었다는 '링곤베리 소녀'는 누구의 이득을 위해서 '희생'된 것일까요? 죽어서도 모실만한 존귀한 분을 위해서? 가문의 영광을 위해서? 집단의 안녕과 평화를 위해서? 그토록 자랑질을 하던 서구문명 속 '인신공양'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궁금궁금~

    2019.09.30 21:4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인신공양'의 제물이 되는 사람들 중에서 자발적으로 나서는 경우가 있으니 일종의 영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보면 종교 또는 교육으로 인한 세뇌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지아님과 마찬가지로 순장이 한반도에서 어느 순간 사라진 사실이 참 신기하더군요. 중국은 물론 몽골은 징기스칸이 죽었을 때, 대규모의 순장이 이루어졌고, 인도는 법으로 금하고 있지만 여전히 남편이 죽었을 때 아내가 산 채로 화장하는 사티가 이어지고 있으니까요.

      인도의 경우에는 힌두교의 풍습이 종교와 함께 맥을 같이 한 것으로 보여지는데, 그런 점에서 부여의 순장도 종교적인 맥락과 같이 한 것은 아닐까 싶습니다. 당시 부여의 종교는 체계적이기보다는 토속 신앙에 근거했을 가능성이 큰데, 그것이 약화되면서 시들해진 것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합니다.

      생산력 차원에서 금지가 되었다면 순장으로 인한 희생이 엄청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인데, 여러모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작품이 그러한 인신공양에 대한 다양한 생각으로 인하여 이전의 추리소설과는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하더군요. 그 비밀이 곧 사건의 진실이기에 따로 언급은 못하겠어요. ㅋㅋ^^

      2019.10.01 07:37
    • 달빛망아지

      지아님께서 조목조목 열거하신 의문들을 읽자니 영화 <미드소마>가 떠올라요. 그 영화에서는 약자가 아닌 이방인을 희생양으로 삼는데 배경이 되는 비밀스러운 마을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이방인들이라는 점에서 억지로 엮어보자면 그들도 분명한 약자의 위치였다는 생각이 들어요. 따져보면 마을에 대대로 뿌리내리고 살아 온 사람들의 입장과 비교했을 때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다 온 이방인들은 그 집단 속에서 절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인 건 맞으니까요.
      인신공양의 제물이 되는 일이 개인에게도 큰 영광이라고 설명하지만 정작 그 일에 자원하는 마을 사람은 생산력이 고갈된 일흔을 넘긴 노인 두 명과 어릴 때부터 부모가 누군지, 어찌 됐는지도 모른채 관습과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세뇌되며 자라 온 젊은 남성 두 명 뿐이거든요.
      엄청난 고통속에서 숨이 끊어지는 순간에도 영광이라고 생각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는 의문이 생겨요.

      2019.10.05 13:44
    • 파워블로그 책찾사

      달빛망아지님의 리뷰로 [미드소마]를 처음 알게 되었는데, 최근 우연한 계기로 유튜브에서 그 영화에 대한 요약을 다시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그 마을의 축제에 희생양이 되는 인물들이 외부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인신공양의 제물이 되는 것은 그에 대한 신념이 확고한 사람들에게는 영광이지만, 전혀 관련없는 사람들이 제물로 된다면 그건 끔찍한 비극일 뿐이지요. 그러한 것들이 오래도록 전통으로 자리하여 전승되는 점이 참 모순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정말 그것이 영광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면 그것을 살기 위하여 억지로 따르며 살아왔을테니까요.

      2019.10.05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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