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아포칼립토]는 초반부에 아즈텍 제국의 인신공양의 장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는 역사 속에서도 아즈텍족이 이웃 부족에게 '꽃 전쟁'이라 불리우는 전쟁을 통하여 포로를 확보하여 그들을 인싱공양의 제물로 바쳤다는 사실과도 일치한다. 더구나 이러한 인신공양은 16세기 스페인의 정복과 더불어 아즈텍 제국이 멸망할 때까지 진행되었으니 역사적으로도 꽤 충격적인 것이었다. 다만 영화는 일방적인 서구의 시각으로 인하여 아즈텍 제국의 멸망이 내부의 그러한 야만적인 것으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서양 문명과의 조우로 인하여 마치 그들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처럼 묘사되고 있다는 것은 비판의 여지가 있다. 그러한 점에서 수산네 얀손의 [링곤베리 소녀]는 인신공양을 북유럽 스웨덴을 배경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그동안 북유럽의 장르 소설이 그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는데, 늪을 배경으로 인신공양을 주요 소재로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모스마르켄의 토탄 늪지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링곤베리 소녀]는 흡사 코난 도일의 [바스커빌 가의 개]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 악마개와 죽음의 황무지와 늪이 전형적인 미스터리 소설의 클리셰로 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링곤베리 소녀] 역시 모스마르켄의 늪지와 더불어 과거 그곳에서 발견된 잘 보존된 미이라를 통하여 인신공양의 풍습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늪의 음산한 분위기와 '링곤베리 소녀'라 불리우는 늪에서 발견된 철기 시대의 신에게 바쳐진 미이라의 존재, 그리고 주인공이 머물고 있는 '크바그미레'의 장원과 관련된 전설은 독자로 하여금 이곳에서 벌어진 사건들에 대하여 묘한 분위기를 조성하게 된다.
요한네스라는 젊은 남자가 평소와 마찬가지로 늪지대를 조깅하다가 누군가에게 둔기를 맞아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채 발견된다. 그 남자를 발견한 인물은 나탈리에라는 생물학자로서 요한네스와 교제하고 있던 여성이다. 그녀는 온실효과가 습지의 부패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연구를 위하여 거대한 늪지대가 조성된 모스마르켄으로 와서 크바그미레 장원의 별채에서 머물고 있는 중이었다. 날마다 조깅을 하면서 그녀가 머물던 숙소를 지나가면서 우연히 만나게 되면서 둘은 서서히 호감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사건이 발견되었으니 나탈리에는 자신이 느끼고 있던 불길한 기운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된다. 더구나 의식을 잃은 요한네스의 주머니에서 발견된 수많은 10크로나 동전들은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사건이 아님을 보여준다. 바로 인신공양의 제물로 요한네스가 선택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사건이 발생한 늪지대에는 과거 '링곤베리 소녀'라는 미이라가 발견되면서 큰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더구나 철기시대의 인물로 추정되는 그 미이라가 인신공양의 제물이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들어 비상한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요한네스가 둔기에 맞아 정신을 잃고 쓰러진 곳도 바로 그 '링곤베리 소녀'가 발견된 늪지대라는 점과 제물을 연상케 하는 10크로나 동전들이라는 점에서 사건은 범죄가 아닌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게 된다. 더구나 나탈리에가 요한네스에게 문제가 발생했다라고 생각하여 그를 찾아나선 이유도 날씨의 급격한 변화라는 부분은 그녀에게 무언가 사연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실제로 그녀는 원래 모스마르켄 출신으로서 14년 전에 이곳을 떠나서 연구를 위하여 다시 돌아왔기에 이제 이야기는 현재의 사건에 대한 수사와 함께 그녀의 과거에 대한 회상이 오버랩되면서 긴장감을 고조시키게 된다.
이제 이야기는 사건을 수사하기 위하여 경찰과 함께 일하던 사진 예술가 마야 린데와 의식을 잃은 채 병실에 누워있던 요한네스 곁에서 자신의 과거를 담담하게 서술하면서 그 시기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려는 나탈리에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특별한 단서가 없는 상황에서 요한네스의 주머니를 가득 채운 10크로나짜리 동전들은 이 사건이 '링곤베리 소녀'와 깊은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을 뿐이었다. 마야 역시 그러한 점에 착안하여 그 미이라가 전시된 박물관 관장과의 대화를 통하여 그 의미를 파헤치기 시작한다. 고고학자이자 박물관 관장이었던 사만다는 모든 민족이 영적 세상과 관계가 있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다른 차원의 존재와 접촉하려는 시도를 하였는데, 기도를 하고 제물을 바친 행위가 바로 그러한 시도로 해석될 수 있음을 언급한다. '링곤베리 소녀' 역시 장대에 꽂혀진 점을 들어서 일종의 인신공양의 제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는 관장의 설명으로 인하여 마야는 이 사건을 색다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또한 나탈리에가 기억을 회상하는 과정 중에서 실제로 다시 만난 이웃집 아저씨였던 예란의 존재는 이 사건이 단순한 살인 사건이 아님을 확인시켜 준다. 원래 물리학자였던 그가 자신의 전공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영적인 존재에 집착한 것은 과거 그 늪지대에 실종 사건이 다수 존재하고 있다는 점과 연결되게 된다. 과거 나탈리에가 그곳에 살 때에도 예란은 그녀에게 영적인 존재에 관한 것들을 설명하면서 시간을 보냈기에 그의 존재는 늪지대를 배경으로 한 의문의 실종 사건들마저 다시 재고될 필요가 있음을 짐작케 한다. 이제 사건은 단순히 요한네스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늪지대에서 발생한 다수의 실종 사건으로 확대되고, 그 과정에서 마야의 색다른 발견과 점점 더 뚜렷해지는 나탈리에의 과거에 대한 기억으로 인하여 이 사건이 단순한 연쇄 살인마에 의하여 저질러진 것인지 아니면 인신공양의 풍습이 현재에까지 이어지게 된 것인지 독자는 갈팡질팡하게 된다. 과연 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고대의 인신공양이라는 소재를 내세우고 있기에 이 작품은 북유럽 스릴러 특유의 음산함과 함께 벌어지는 끔찍한 사건 보다는 다소 오컬트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보이고 있다.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 상황에서 늪지대를 배회하는 영적인 존재는 분명 말도 안되는 것이라 생각될 수 있지만, 과거 그곳에서 발견된 '링곤베리 소녀'라 불리우는 미이라의 존재로 인하여 독자에게 '어쩌면'이라는 생각을 심어주면서 사건의 진실에 쉽사리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래서, 분명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몇가지의 단서들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저자가 의도한 바에 이끌리는 느낌마저 받게 된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밝혀지는 이 사건의 진실은 약간 당황스럽다. 충분히 있음직한 결말이지만, 개인적으로 사건의 동기가 조금은 미약하지 않나 싶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산네 얀손의 처녀작인 [링곤베리 소녀]는 시종일관 독자에게 인신공양이 내뿜는 기묘한 분위기와 늪지대라는 배경이 주는 음산함으로 인하여 긴장감을 유지하게 된다. 그리고, 그 긴장감은 마야의 수사와 나탈리에의 과거에 대한 기억의 회복이 거듭될수록 오히려 고조되고 있다는 점이 바로 이 작품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실체와 영적인 존재의 적절한 균형은 논리적인 추리를 바탕으로 하는 장르에서 그 실체가 인정되지 않는 영적인 부분들이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이 책에 주목하는 이유이다. 더불어 이 작품이 수산네 얀손의 처녀작이기에 이 장르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작가 목록에 그녀를 추가할 수 있게 된 것도 이 작품을 통한 또 하나의 수확이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여러모로 의미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