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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도서]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

김미조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은 경험하게 되지만, 그 경험과 동시에 모든 것이 끝나기 때문에 결코 경험하고 싶지 않은 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러나, 애써 외면하고 싶은 죽음이지만, 그에 대한 인간들의 무한한 궁금증은 상상을 통하여 죽음의 세계관으로 연결되곤 한다. 이승과 저승의 개념 역시 명확히 증명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세계관은 물론 그를 기반으로 한 확장 역시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다.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이라는 작품 역시 저자의 상상에 의하여 만들어진 죽음과 관련된 세계관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부제 '미처리 시신의 치다꺼리 지침서'에서 그러한 저자의 의도를 보다 직관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데, 저자의 상상력으로 구축된 개념이 초반에는 다소 낯설게 느껴지지만, 어느새 그곳에서의 이야기에 몰입하면서 그 의미를 음미하는 것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미처리 시신의 주인''죽고 나서 사흘 이상 발견되지 않은 시신의 영혼'이라 정의하면서 저자는 그의 무한한 상상력을 펼쳐내기 시작한다. 더구나 대필작가인 주인공이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치다꺼리 지침서]의 서문에서 '이 책을 먹을 수 있는 존재는 살아 있지 않은 자'라고 정의한 부분을 떠올리면서 그 책을 먹음으로써 인식하게 되는 대목은 꽤 참신하다는 느낌마저 든다. 기존의 죽음과 관련된 통속적인 세계관에 '미처리 시신의 주인', '머물기의 공간'과 같은 새로운 개념을 적용하여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보다 확장된 자신의 세계에서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글이 독자에게 읽혀지기 위해서는 그러한 상상력도 어느 정도 타당함을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또한 통념적인 것들에 대한 저자 특유의 관점으로 극복하는 모습을 작품 곳곳에서 등장시키고 있다.

 

 죽은 자들에게 장례는 그 매듭을 끊어버리는 일이다. 하지만 미처리 시신 주인들은 다르다. 그들에겐 매듭을 끊어낼 기회조차 없었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주검으로 방치된 채 홀로 떠돌고 있으니. 당연히 장례를 치른 시신의 주인들보다 죽음에 대한 적응력이 떨어진다.

 - p. 21 中에서 -

 산 자들이 죽은 자를 떠나보내는 마지막 매듭을 짓는 것이 장례라는 일반적인 생각을 죽은 자들에 대한 관점에서 바라보고 나아가서 자신이 정의한 '미처리 시신'으로 보다 세밀하게 설명하는 부분은 죽음 이후에 '머무르는 공간'에 등장하는 미처리 시신의 주인들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고 있다. 매듭을 끊는다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닌데, 그 매듭조차 제대로 끊지 못했으니 미처리 시신의 주인이 더욱 죽음에 대한 미련을 갖는 것은 지극히 타당해 보인다.

 

 자신이 죽었다는 걸 아예 모르는 자, 죽은 것은 알지만 세상에 미련이 남은 자, 죽은 것을 알고 있는 데다 미련도 없는자. 세 번째 경우에 속한 자들은 거의 시간을 원하지 않는다. (중략) 이들은 저승의 책방이 지어내는 고요한 침묵 속에서 한 권의 책으로 책장에 꽂혀 있을 뿐이다. 반면, 앞의 두 경우에 속한 자들 대부분은 그들에게 '예정되었던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예정되었던 시간은 이제 공간으로 환원되어 버렸다.

 - p. 21 ~ 22 中에서 -

 죽은 상태에서 그들이 세 가지의 경우로 분류된다는 저자의 설명을 읽어보면 우리로서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상상력은 이제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구성 요소가 된다. 기존의 저승과는 다른 책방의 개념으로 죽은 사람이 한 권의 책으로 꽂혀 있다는 설정과 '예정되었던 시간'을 받아들이지 못하여 그들이 '머물기의 공간'에 나타난 이유도 이를 통하여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는 [치다꺼리 지침서]를 삼킨 주인공이 미처리 시신의 주인들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되는 이야기를 비로소 즐길 수 있게 된다.

 

 '머물기의 공간'에서 주인공은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책방 주인인 김 사장을 만나게 되고, 그에 의하여 미처리 시신의 주인들에 대한 치다꺼리를 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그가 그 역할을 맡게 된 것이 지침서를 삼키면서 시작된 것처럼 미처리 시신의 주인들과의 만남 역시 그들이 평소 애착을 갖고 있던 책들을 씹어 삼키면서 대면하게 된다. 이 작품에서는 총 3명의 미처리 시신의 주인들이 등장하는데, 흥미로운 점은 앞의 두 명의 인물은 대필작가인 주인공이 실제 대필한 자기계발서와 여행 관련 책자를 통하여 만나게 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이들 인물은 주인공과도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짐작케 된다. 도대체 주인공이 왜 죽음에 이르러서 그러한 역할을 수행하는지 알 길이 없던 상황에서 앞으로의 이야기는 그러한 의문을 해소하는 여정으로 느껴지게 된다.

 

 주인공이 대필한 성공에 대한 자기계발서 [시스템이 당신의 부를 결정한다]를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성공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인 '허08'이라는 인물은 결국 옥탑방에서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 그는 주인공과 함께 주어진 열 여덟 시간 동안 미처 이루지 못한 것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이 죽은 옥탑방으로 향하게 된다. 사실 우리로서는 허08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라는 의문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사랑과 영혼]이라는 영화처럼 이들 죽은 존재는 현실 세계에 대하여 물리적인 것을 포함하여 어떠한 영향력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08은 자신이 미처리 시신 상태라는 점에 분노하며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한다. 애초 죽기로 결심하면서 이후 자신의 시신이 곧 발견되도록 하기 위하여 집주인이 집세를 독촉할 즈음을 죽는 날짜로 선택하였고, 만일을 대비하여 '당일 배송'을 당부하는 택배까지 자신의 거처로 주문을 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중적인 장치는 이런저런 사정으로 어긋나 버리면서 그의 시신은 옥탑방에서 그대로 방치되고 있었던 것이다.

 

 주인공은 그러한 허08의 치다꺼리를 위하여 그가 생각하는 것과 기억하는 것들을 읽을 수 있는데, 우리는 이를 통하여 허08의 결코 쉽지 않은 삶의 흔적을 바라보게 된다.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기던 자기계발서를 읽으면서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물론 책을 읽고 행동으로 옮기기 전에 작심삼일로 자포자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저자의 강연을 따라다니며 자신의 의문을 저자에게 묻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스스로 그 책을 쓴 것이 아니기에 저자는 그러한 허08이 귀찮은 존재였고, 둘은 옥신각신하다가 결국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게 된다. 불행 중 다행으로 허08은 자신의 바램대로 자신의 시신이 발견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얻게 되고, 비로소 안도하게 된다. "그거 내 거야. 내 거. 옥탑방으로 가. 제발! 옥탑방으로 가!"라는 그의 마지막 외침은 우리에게는 소소한 반전의 매력을 선사하지만, 그 매력은 오직 서글픔이 전부이다.

 

 노17이라는 두 번째의 마남 역시 주인공이 대필한 [여행의 기쁨]이라는 책을 씹어 삼킴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만남은 꽤 복잡한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인공과 책방주인 김 사장이 어떻게 죽고, 또 그들이 시요라는 여성을 통하여 얽히고 설킨 관계마저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집을 뛰처나와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으로 소일하면서 빈곤하게 살아가는 노17은 앞서 허08과는 달리 자신의 죽음에 대한 미련보다는 자신과 친했던 '장'이라는 인물에 대한 걱정이 가득찬 인물이다. 실제 장은 홀로 재개발구역에서 거동도 못한 채 누워있는데, 동시에 포크레인이 그의 존재를 모르고 집을 부수기 일보 직전이었기 때문이다. 노17 역시 현실에 아무런 영향력을 끼칠 수 없었기에 그저 과거의 기억을 회상하게 되고, 주인공 역시 그러한 노인의 기억을 그대로 마주하게 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그는 시요를 둘러싼 자신과 김 사장의 불편한 관계를 다시 떠올리면서 김 사장의 실종과 자신의 죽음에 대한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시요로 인하여 그는 본분을 상실하고 그녀를 따라나섬으로써 모든 진실을 알게 되고, 충격에 빠지게 된다. 장르물의 나름의 반전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치다꺼리 지침서]를 위반한 주인공의 이후의 이야기는 세 번째의 만남을 통하여 보여준다. 그 만남 역시 흥미롭지만, 여기에서 새롭게 치다꺼리 임무를 수행하는 저자는 우리에게 생각의 의미를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 오히려 눈길을 끌고 있다. 죽음 이후에 시신마저 영원히 발견되지 않을 수 있는 그의 상황은 딱히 존재감마저 느끼기도 쉽지 않았지만, 생각하는 것을 통하여 그 존재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김 사장에 이어서 주인공의 새로운 관리자 역할을 하는 인물은 주인공이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책을 던져주고, 그로 인하여 치다꺼리 역할을 계속 하도록 강요하게 된다. 이제 주인공은 그러한 끝없는 임무 수행과 더불어 스스로 생각하는 것 사이에서 고뇌를 하게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비록 우리에게 세 번의 만남만을 보여주고 있지만, 주인공의 이야기는 끝없는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된다. 비록 감정은 제거할 수 있지만, 생각마저 거세시킬 수 없음을 주인공이 확실히 인지를 하였으니 말이다.

 이 공간은 생각을 감정처럼 거세시키지 않았다. 생각은 곧 형체를 만들어낼 수 있는 원자이기 때문이다. 생각마저 거세된 존재는 형체를 가질 수 없다. 최소 입자인 원자, 생각은 머물기의 공간의 기억, 또는 정보를 받아들이는 바탕이 된다. 이 바탕이 있기에 형체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 p. 190 中에서

 

 죽은 존재 또는 영혼에 대하여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현실에 절대로 영향을 미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빌어먹을 놈은 아니지만]은 자칫 허무감에 휩싸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자신과 김 사장의 죽음에 대한 이유를 알았지만, 이후 그에 대한 별다른 조치는 등장하지 않는다. 아니, 현실 세계에 영향을 끼칠 수 없다고 이미 정의했기 때문에 나올 수가 없다. 하지만 생각이 있다면 언제든 형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주인공의 자각은 그 자신을 작품 속에서 드러내고 있는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역시 이 작품을 그저 작가의 상상에만 의지하는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님을 생각하게 하는 것 같이 여겨진다. '미처리 시신'이라는 용어가 언뜻 낯설게 보이지만, 이제는 고독사가 우리의 사회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 작품은 홀로 죽음을 맞이하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모두 사회적 약자라는 점에서 단지 이 작품의 이야기가 기발한 저자의 상상력으로만 볼 수 없는 이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세 번째의 만남으로 이 작품은 마무리 되었지만, 주인공은 [누구나 알고 있는 비밀]이라는 책을 씹어 먹으면서 그의 역할은 무한히 반복될 수 있음을 내비치고 있다. 그의 시신이 김 사장과 마찬가지로 거의 발견될 가능성이 없기에 아마도 그는 끝없는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커보인다.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하여 우리는 주인공의 시신을 수습하여 장례를 치뤄야 할 것이다. 이는 왠지 현실 세계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을 당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추측된다. 그래서, 독특한 재미 속에서도 이 책의 내용이 꽤 묵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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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타블로거 쥬쥬

    끝까지 주인공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니!! 내용이 정말 너무 궁금해지네요~ 주인공말고도 나오는 등장인물들도 하나같이 미스테리한데요~ 리뷰를 보니 더 책을 보고싶네요!

    2019.11.07 20:5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아, 주인공의 시신이 발견되지 않았다라는 것은 확정된 내용은 아니고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접하니 쉽게 발견되지 않을 것 같다는 저의 생각입니다. 리뷰에 그 진실을 쓰면 스포나 다름이 없어서 글에는 언급하지 못했어요. ^^

      2019.11.07 23:40
  • 스타블로거 異之我...또 다른 나

    저는 아무래도 '문학 난독증'인 모양입니다. 드라마도 '첫회'는 늘 재미가 없고 '5회'쯤 되어야 이야기 돌아가는 상황을 겨우 깨치고서 '몰입'하게 되거든요. 소설도 '발단' 단계에서는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하다가 '위기-절정' 부분에 도달해야만 겨우 '맥락'을 이해하고 다시 처음부터 읽는답니다. 이래서 '결말'을 못보고 만 소설들이 참 많습니다. <해리포터>도 마지막 '한 권'을 지금까지 읽지 않고 있어요(")

    이 작품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네요. <사랑과 영혼>의 페트릭 스웨이지 같이 지금 '혼령들'이 이야기를 이끌고 있는 거죠? 사후세계에 들어가지 못하고 이승을 떠돌며 저마다 '억울한 사연'을 늘어놓고 있는 거구요..(")a아닌가?

    2019.11.07 23:22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혼령들의 이야기이고,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떠돌다가 주어진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역시나 혼령인 주인공이 치다꺼리를 한다는 내용이지요. 물론 그 하고 싶은 일이 현실에서는 전혀 영향을 끼칠 수도 없으니까요.

      이 작품은 사실 저자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일이라서 저도 처음에는 좀 이해가 잘 안되는 부분들도 있긴 합니다. 뒤늦게 읽다가 그제서야 이해한 부분들도 있긴 합니다만, 그리 분량이 많은 편은 아니라서 그나마 설정이 그리 복잡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약간 저자의 생각을 짚어내기가 쉽지 않은 부분들도 있어서 그 부분에서는 문맥의 이해가 좀 혼란스러운 부분들도 있긴 했지요. ㅋㅋ

      2019.11.07 23:44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신선한 소재이면서도 현실에서 있을 수 있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 흥미롭네요. "치다꺼리 지침서"를 먹으면서 죽은 이들을 글자 그대로 치다꺼리하는 주인공 캐릭터도 흥미롭고....
    고독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 같아요. 주인공이 만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씁쓸하기도 하고... 아무튼 신선한 소재의 소설이네요.^^

    2019.11.08 05:1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일단 미처리 시신의 주인공들을 만나다보니 대부분 그들의 이야기는 씁쓸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겠더라구요. 그리고, 그들의 죽음이 너무나 쓸쓸하게 잊혀지니 아마도 저자는 글로나마 그러한 죽음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보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2019.11.0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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