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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러스먼트 게임

[도서] 해러스먼트 게임

이노우에 유미코 저/김해용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어디든 그렇겠지만 과거에 비하여 요즈음 직장 분위기에 많은 변화가 있음을 느끼곤 한다. 수평적인 관계를 강조하면서 직급도 하나의 호칭으로 통일하면서 근무 시간 역시 상당히 유연하게 운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확실히 과거에는 상사의 눈치를 보면서 퇴근을 해야했고, 야근은 조직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이자 개인 능력의 판단 지표로 활용되었으니 밥먹듯이 야근하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으며, 휴일은 물론 연차까지 사용하지 않으며 특근 근무를 자청했었다. 하지만 이러한 것들은 이제 노동법에 의하여 거의 사라졌으며, 연차마저도 오히려 회사에서는 워라밸을 강조하면서 강제적으로 사용하는 상황이니 그 변화를 이제는 몸소 체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상사 중 일부는 과거의 그러한 향수(?)에 젖어 직원을 압박하는 경우가 여전히 존재하는데, 육아휴직을 쓰거나 야근을 적게 하면 인사고과를 나쁘게 주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러한 압박과 괴롭힘은 과거와는 달리 은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여전히 직장 분위기는 변화가 필요하다.

 

 [해러스먼트 게임]은 바로 직장 내의 괴롭힘을 소재로 하고 있다. '해러스먼트(harassment)'일반적으로는 괴롭힘, 학대를 뜻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주로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종류의 괴롭힘을 가리키는데,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은밀히 이루어지는 다양한 형태의 해러스먼트를 다루고 있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이 작품의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게 된다. 아마 이 작품을 읽는다면 속으로 뜨끔하거나 또는 통쾌함을 느끼는 두 부류로 나뉘어지지 않을까 싶은 생각도 든다.

 

 이야기의 시작은 지방으로 좌천되어 소도시에서 점장으로 일하고 있던 아키쓰 와타루가 갑자기 마루오 홀딩스 본사의 컨플라이언스실 실장으로 발령되는 것에서 비롯된다. 흥미롭게도 아키쓰는 부하직원의 직장 내 고발을 통하여 좌천되었기 때문에 그가 컨플라이언스 실장이 되었다는 점은 의미심장해 보인다. 사실 사장 역시 바로 아키쓰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아서 지방으로 좌천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인물이기에 이러한 인사배치는 아키쓰 입장에서 충분히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실제 사장은 아키쓰에게 거래를 제안하는데, 그가 와키타 상무의 비위 행위를 적발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와키타 상무는 바로 일전에 아키쓰의 부하직원으로서 아키쓰를 내부고발한 인물이었다는 점에서 이들의 관계는 묘하게 진행된다. 아키쓰의 입장에서는 이제 회사의 실세가 되어 사장 자리를 위협하는 와키타와 자신을 내쫓았던 마루오 사장 사이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컨플라이언스 실장으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속내를 감추고 아키쓰는 유일한 컨플라이언스실 직원인 다카무라 마코토와 함께 다양한 해러스먼트를 처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 아키쓰야말로 부하 직원에 대한 파워 해러스먼트로 좌천된 이력이 있기에 그의 활동은 다소 모순처럼 보여지지만, 여러 에피소드를 통하여 드러나는 그의 행위는 당시 부하직원이었던 와키타 상무와의 갈등에 의하여 빚어진 것이었기에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아키쓰와 와카루의 관계 대립은 점점 심화된다. 그 와중에 마코토와 함께 소비자에 의한 불만에서부터 여성 간부의 배치에 대한 내부 불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러스먼트를 처리하는 과정은 우리로서도 충분히 현실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어서 이내 이야기에 몰입하게 된다.

 

 특히 육아를 이유로 단축근무제를 활용하는 직원의 이야기가 상당히 눈길을 끌었다. 왜냐하면 점점 출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한국에서도 기업에 육아휴직은 물론 육아를 배려한 단축근무제가 법적으로 정비되면서 많은 기업들이 그것을 따라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도 정해진 시간에 퇴근을 하는 남자직원은 정해진 규정에 따라서 그 제도를 활용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주위의 시선은 따갑기만하다. 사실 그 남자직원도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이지만, 육아를 병행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결국 상사로부터 아예 회사를 관두라는 폭언을 받게 된다. 아키쓰와 마코토는 우선 폭언을 한 상사를 파워 해러스먼트, 즉 직장 내 상사의 괴롭힘으로 규정하면서 해당 상사에 대하여 제재를 가하려고 하지만, 상사 역시 모두 바쁜 상황 속에서 그것을 외면하는 부하직원에 대한 분노는 오히려 당연한 것이 아니냐고 되물으며 항변한다.

 

 이 대목에서 꽤 많은 생각과 함께 직장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과거에는 육아휴직을 쓴다는 것은 퇴사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지만, 이제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제대로 정비되면서 그러한 일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그들에 대한 불이익은 존재한다. 바로 인사고과를 나쁘게 주는 것으로 말이다. 물론 육아휴직자로 인하여 남은 사람들의 업무 부담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기에 어느 정도는 공감할 수 있지만, 애초 육아휴직의 취지를 생각해 본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어쩌면 제도만 도입하고 그에 따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는 회사 시스템에도 문제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즉, 휴직자가 발생하면 인원을 보충해야 하는데, 휴직은 법적으로 보장하여 받아주지만 이후 조치가 없으니 남아있는 사람들로서는 충분히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은 또 다른 형태의 해러스먼트를 야기하고 있지만, 아마 한국의 대부분의 직장에서는 그에 대하여 별다른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니 법으로 보장된 육아휴직을 쓰는 사람도, 또 남아있는 사람 모두가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이 작품도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아키쓰와 마코토는 육아를 위한 남자직원의 그 선택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는 것까지는 가능했지만,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현실에 대한 구체적인 방안은 따로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여성 인재를 발탁하는 부분 역시 현실적이다. 과거보다는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성들이 진급하고 주요 보직을 맡는다는 것은 여전히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요 업무에 여성이 배치되면 엄청난 홍보를 하는 것은 거꾸로 그러한 상황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에서도 그러한 홍보 과정을 거쳐서 부임한 여성 상사가 부서원 전체로부터 따돌림을 당하고 있었으니 이 또한 낯선 현실은 아니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이러한 성별의 차이는 물론 새로 발탁되어 임무를 맡게 된다면 기존 조직원과의 갈등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었고, 이로 인하여 업무상 많은 차질을 빚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우는 위로부터의 괴롭힘이 아니라 거꾸로 아래로부터의 괴롭힘이기에 해러스먼트라는 것이 하나로 특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직장에서 살아남기 위한 아키쓰의 이야기도 흥미롭지만, 그 이야기 자체는 물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다양한 해러스먼트는 직장에서 우리 역시 얼마든지 목격되는 것이고, 심지어 그러한 괴롭힘을 경험한 적이 있기에 누구라도 과몰입하여 읽어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나 역시 중간 관리자로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러한 괴롭힘을 어느 정도 경험하였기에 이 작품을 통하여 직장의 문제점을 돌아보는 시간도 가져보게 된다. 그리고, 행여나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것이 해러스먼트가 될 수 있음도 다시 한번 배울 수 있었다. 아, 그리고 꽤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는데, 그것은 해러스먼트에 대한 아키쓰의 혼잣말이었다.

 "이럴 때 파워하라(파워 해러스먼트의 일본식 표현)나 성희롱은 편리해. 그만두게 만들 대의명분이 되니까. 해러스먼트도 참 각양각색이야."

 - p. 12 中에서 -

 해러스먼트 그 자체는 분명 잘못된 것이지만,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려는 회사 또는 직원으로 인하여 또다른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한 공간에서 비슷한 일을 하기 때문에 직장 상사나 동료, 부하직원에 대하여 동질감을 느낄 때가 많았지만, 요즈음은 그 동질감이 착각에 가깝다는 생각도 적잖이 하게 된다. 동질감은 비슷한 전공과 일을 하는 것이 전부이지 인성과 도덕은 비록 한 공간에서 일을 하고 있지만, 천차만별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도 회사에서는 실로 상상도 할 수 없는 다양한 사건과 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해러스먼트로 인하여 또 그 발생한 해러스먼트를 이용하여 일어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무심코 내뱉은 아키쓰의 그 말이 결코 가볍게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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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신통한다이어리

    직장내 괴롭힘은 그저 생각만 하는 것보다 직접 경험해 보면 더욱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지요. 특히 운영자의 갑질이 시작되면, 그로 인한 상처는 말하기 힘든 정도입니다. 해러스먼트 게임은 그런 면에서 조금 해러스먼트를 가볍게 다룬 측면이 조금은 있어요. 그래서 저는 판타지 같은 느낌이 든다고 할까요. 그래도 어쩄든, 그래서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거 같습니다.

    2020.02.16 17:2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현실과 동일하게 다루었다면 아마도 르포 형식의 소설이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저도 일종의 해러스먼트를 직접 경험하기도 하고, 또 멀리서나마 목격한 경우가 자주 있기 때문에 신다님의 의견처럼 현실에서의 직장내 괴롭힘이 심각하다는 사실에 공감합니다. 그래서, 직장인의 삶은 또 항상 고달플 수밖에 없겠지요. 이 책이 보여준 긍정적인 결과에 다가가기 위해서는 아직 멀었죠. ㅋ

      2020.02.16 20:45
  • 스타블로거 ne518


    설정이 재미있기도 하네요 어디나 사람하고 관계를 맺고 사는 게 가장 어렵지 않을까 싶어요 중간에 있는 사람은 윗사람 밑에 사람 다 마음 써야 할 듯합니다 육아휴직은 써도 괜찮은 건데, 그걸 눈치를 보고 써야 한다니... 한사람이 빠지면 그만큼 다른 사람이 일을 많이 해야 하는군요 어디든 그런 건 생각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해요 그때만이라도 다른 사람을 쓰기도 해야 할 텐데... 그렇게 하는 곳이 아주 없지 않을 듯하지만 많지 않겠지요 어떤 드라마에서는 여성이 아이를 낳고 육아휴직 쓴다는 걸 광고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다른 동료는 그 여성 때문에 일이 많아져서 불만을 갖기도 하더군요 지금은 여성뿐 아니라 남성도 육아휴직 쓴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쓰는 사람이 마음 편하게 해주면 좋겠네요

    성희롱을 꾸며내서 경쟁자를 쫓아내는 이야기도 봤어요 성희롱이든 직장에서 괴롭힘이든 꾸며내지 않아야지요


    희선

    2020.02.17 02:34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육아휴직이 법적으로 제도화되는 것은 참 반가운데, 그것을 지탱할 수 있는 후속조치에 기업들이 사실 그리 큰 신경을 쓰지 않아서 문제가 되는 것 같습니다. 몇몇 회사에서는 임시로 인원을 보충하지만, 사실 기존에 하던 일을 그대로 전력 누수없이 채우기란 쉽지 않은 일이지요. 심지어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별다른 인력 보충도 하지 않으니 쓰는 사람이나 남아있는 사람이나 모두 고통스러운 것 같아요.

      성희롱에 대한 부분은 회사에서도 큰 처벌이 뒤따르는 부분인데, 이걸 또 엉뚱하게 이용하는 사례도 가끔 있기 때문에 해러스먼트가 또 다른 해러스먼트를 양산하는 경우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2020.02.17 09:57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저희 부서 같은 경우 부서장이 쿨하신 성격에 직원들 복지에 신경 쓰시는 분이라 책에서 말하는 육아를 위한 단축근무제인 유연근무제를 적극 권장하시고 연가 쓰는 것도 별말씀 안 하셔서 사무실 분위기가 자유로운 편인데 타 부서는 아직 고리타분한 부서장들이 많아서 직원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더라구요.
    다양한 해러스먼트가 직장내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라 단지 소설이지만 현실감이 있는 것 같아요. 주인공 아키쓰 와타루가 처한 상황도 흥미를 끌구요. 그동안 직장생활을 해오면서 느꼈지만 인성과 도덕은 천차만별이라는 책찾사님 글을 적극 동의합니다.
    책찾사님~ 오늘 날씨가 제법 쌀쌀하네요. 건강 유의하시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020.02.17 09:3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요즈음은 많이 바뀌어서 대부분 쿨한 모습을 보이지만, 정신없이 바쁜 경우에는 또 달라지더라구요. 물론 그러한 상황에서는 예외가 될 수 있겠지만, 꾸준히 일관성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지금은 연차를 사용하거나 근무시간도 업무에 지장이 되지 않는다면 특별히 눈치를 볼 이유가 없기 때문에 많이 좋아지긴 한 것 같아요. 가끔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부조리나 괴롭힘은 아직 완전하게 사라졌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요. ^^;;

      회사 사고 사례를 접하면 확실히 비슷한 일을 하면서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하더라도 개인의 인성은 천차만별임을 느끼게 되는데, 추억책방님도 그렇게 느끼셨군요. 그래서, 솔직히 직장 동료와의 관계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도 하게 되는 것 같네요.

      날씨가 제법 쌀쌀해졌네요. 이곳에는 눈이 그리 많이 내리지 않았는데, 추억책방님이 계신 곳에는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 보내시고, 한주의 시작을 활기차게 하실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2020.02.17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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