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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랜드

[도서] 언더랜드

로버트 맥팔레인 저/조은영 역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몇 년 전 노르웨이 해안가의 빙하가 녹으면서 거대한 뼈가 드러났다. 이 뼈의 정체는 고래의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아마도 빙하가 녹지 않았다면 이것은 인간에게 결코 발견되지 않았을 것이다. 땅을 딛고 사는 인간의 시선은 땅 위로 향한다. 하늘과 우주, 그리고 그 물리적인 공간을 넘어서 천상이라는 시공을 초월한 공간까지. 반대로 땅 밑은 분명 존재하는 구역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있다. 높이에 대한 인간의 동경에 비하여 깊이는 지금까지 경멸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심지어 땅 밑(언더랜드)은 그 단어에도 이미 '혐오'의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언더랜드가 주로 먼지, 피할 수 없는 죽음, 가혹한 노동을 함축하고 있는 것이 그리 놀랍지 않다. 인간의 바램이 담겨 있는 신화와 전설에서도 언더랜드는 죽음의 공간으로 설정되어 있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강은 일말의 상식과 정신의 물매를 거스르는 반직관적 행동이다. 굳이 아래로 내려가 언더랜드에 무언가를 두는 행위는 대개 그것을 쉽게 들키지 않고 지키려는 생각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략) 접근하기가 힘들기 때문에 오랫동안 언더랜드는 쉽게 입 밖에 낼 수 없는 것이나 볼 수 없는 것,  상실, 슬픔, 모호한 속내, 그리고 일레인 스케리가 말한 육체적 고통의 '땅속 깊이 묻어둔 진실'을 상징하는 도구가 되었다.

 - p. 20 中에서 -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자연작가인 로버트 맥팔레인은 '지금 우리가 밝고 있는 땅 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라는 물음에 착안하여 6년 간의 땅 속 여정을 통하여 『언더랜드』를 썼다. '하강'과 '언더랜드'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이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일반인이 경험할 수 없는 '언더랜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는 점에서 기대를 갖게 된다.

 

 단순히 땅 아래의 공간으로 알고 있던 '언더랜드'는 로버트 맥팔레인의 장기간의 탐사와 집념을 통하여 동굴 속 무덤에서부터 핵 폐기물 저장소에 이르는 보다 구체적인 공간으로 우리에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렇게 드러난 '언더랜드'의 공간은 기억과 소중한 물건, 메시지, 연약한 생명의 은신처로, 정보와 부(富), 은유, 광물의 생산지로, 폐기물과 트라우마 독, 비밀의 처리 장소로 각각 묘사된다. 그동안 미지의 공간으로 남아있던 '언더랜드'의 이러한 다양한 의미로 인하여 우리는 갈라진 물푸레나무 밑, 미로 끝에 자리잡은 이 신비한 석실 벽을 따라 펼쳐지는 '심원의 시간 여행'에 기꺼이 동참하게 된다.

 

 일말의 상식과 정신의 물매를 거스르는 반직관적인 행동으로 하강을 정의하고 있지만, 지하 30m, 총길이 300km의 프랑스 파리의 '카타콤(catacomb)'은 오히려 인간의 필요에 의하며 만들어진 공간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끄는 공간이다. 고대 로마시대부터 채석장으로 이용되면서 이 공간은 '언더랜드'로 새롭게 태어나게 되었으며, 이후 프랑스 파리의 건축물이 하나씩 건설될 때마다 이 공간은 더욱 확장될 수밖에 없었다. 이 확장된 공간은 도시로 몰린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그들의 시신을 보관하는 장소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오늘날 '카타콤'으로 명명되고 있다. 로버트 맥팔레인은 관광이 허용된 2km 구간을 탐색하면서 '언더랜드'에 대한 기존의 관점과 생각을 불식시킨다. 지금은 유골의 보관함이지만, 지상의 건물을 건설하기 위하여 인간에 의하여 만들어진 이 공간은 부활을 맞이하기 위한 재생의 공간으로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이곳을 찾는 수많은 관광객과 공개되지 않은 구간에 대한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은 '언더랜드'에 대한 기존의 관점에 변화가 필요함 느낄 수 있게 된다.

 

 현재 암흑물질의 구성 요소로 가장 가능성이 높은 입자는 윔프(WIMP), 즉 약하게 상호 작용하는 무거운 입자이다. 우리가 윔프에 대해 아는 건 이 입자가 무겁다는 것, 그리고 잃어버린 질량을 설명할 만큼 많은 양이 우주 탄생 불과 몇 초 만에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 p. 68 中에서 -

 암흑물질은 우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우주의 기원은 물론 현재 진행중인 우주의 확장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것을 정확히 관찰할 수 있다면 그동안 우주에 대한 인류의 많은 궁금증이 풀릴 수 있다. 하지만 이 암흑물질을 우주 공간에서 관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윔프나 중성미자는 전자의 산란을 통하여 빛을 발하기 때문에 그것을 지하에서 관측할 수 있다는 사실에 착안하여 전 세계에 지하 연구소가 세우졌다는 점은 몹시 흥미롭다. 일본의 버려진 한 광산 속 지하 800미터 지점이 편마암 방, 미국 사우스다코다 주의 노천 폐금광 깊숙한 곳, 글고 영국 요크셔 해안이 작은 마을의 탄산칼슘 및 암염 광산의 작업장이 바로 그곳이다.

 

 그동안 '언더랜드'를 보이지 않는 공간으로 정의하였지만, 거꾸로 우주에서는 관측할 수 없는 암흑물질을 그 공간에서 관찰할 수 있다는 것은 앞서 언급한 '카타콤'과 마찬가지로 '언더랜드'가 현재에도 사람들에게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으로 그 인식을 바꿀 수 있음을 내비친다. 이곳 지하 연구소에서 암흑물질을 발견하려는 연구원의 대답은 단순히 그의 연구 사명에 머무르는 것이 아닌 '언더랜드'를 어떤 의미에서 바라봐야 하는지로 느껴지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식의 발전을 위해서지요. 그리고 생명에 의미를 부여하고 싶어서요. 탐구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그저 기다릴 뿐이에요."

 - p. 78 中에서 -

 

 서서히 변하는 '언더랜드'에 대한 관점은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이라는 표현으로 그 공간 속의 존재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으로 확장된다. 암흑, 죽음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그곳에 그러한 끈끈한 유기적인 관계를 상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나무가 더 크게 하기 위하여 주위의 자작나무를 뽑아버렸더니 오히려 전나무의 생장이 더뎌졌다는 사실은 거꾸로'언더랜드'라는 공간에서의 균류의 협동 과정이 지상에서 나무들이 숲을 이룰 수 있게 해주는 것임을 드러내면서 이 미지의 공간에 끈끈한 생명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오늘날 우리가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을 통하여 무수히 많은 정보를 공유하고 있는 것처럼 '언더랜드'의 '우드 와이드 웹(Wood Wide Web)'은 지상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한 네트워크로 동작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언더랜드'에 이러한 역동적인 움직임의 네트워크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스발바르의 국제 종자 저장고에는 인류의 멸망을 막기 위한 대책으로 수많은 식물 종자를 보관하고 있다. 마치 '노아의 방주'를 떠올리는 이 공간은 인류의 멸종을 막기 위한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데, 핀란드의 '온칼로' 역시 인류의 생존을 위한 또 하나의 공간이다. 지하 깊숙히 이 공간에서 보관하는 것은 핵 폐기물이라는 점에서 스발바르의 종자 저장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하지만 무려 10만년 동안 핵 폐기물을 보관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인류의 생존과 번영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폐기물 방식이 마치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를 묻는 방식을 연상케 할 정도로 조심스럽게 매장되고 있는 이 지역은 '언더랜드'가 죽음과 암흑의 공간이 아니라 인간의 번영을 위한 공간으로 대체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그동안 땅 속의 광물질과 같은 자원과 석재의 공급처였던 이곳은 이제 인간이 자신들을 위하여 쓰고 버려야 할 핵 폐기물마저 수용하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 것이다.

 

 섬뜩한 태양빛, 나무들이 구부러진 총천연색 손가락들, 빛나고 위험한 지하 세계를 내려다보는 감각에 놀랐고, 이내 이 그림을 내 책의 표지로 사용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중략) 실제로 'nether'라는 단어는 '아래', '아래로 향하는' 이라는 뜻이다.

 - p. 498 中에서 -

 이 책 『언더랜드』의 표지는 로버트 맥팔레인이 자신의 친구가 그린 『네더(Nether)』라는 제목의 야광 그림에서 가져왔다고 말하고 있다. 그가 처음 '언더랜드'를 '물푸레나무 아래'로 연결지었던 것도 결코 우연은 아닌 것 같다.

 

 '심원의 시간 여행'이라는 이 책의 부제처럼 헤아릴 수 없이 깊은 '언더랜드'는 물리적인 공간으로서도 또한 보통의 사람들의 의식 속에서도 상당히 낯설 수밖에 없다. 그래서, 6년에 걸쳐 세계 곳곳의 땅 속 공간에 대한 저자의 탐사는 빛을 발할 수밖에 없다. 그러한 다양한 실제의 장소에 대한 묘사는 읽는 이로 하여금 '언더랜드'의 이미지를 보다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붉은 기운이 가득한 책의 표지와는 달리 책 속에는 '언더랜드'와 관련된 사진들이 모두 흑백이어서 이 낯선 곳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사람들에게 금기시되던 '언더랜드'에 관하여 이 책은 지질학과 같은 과학은 물론이고 모험처럼 느껴질 수 있는 탐사 과정, 신화와 문학, 전설 등과 같은 인문학적인 요소로 '언더랜드'를 확연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1분 1초로 다뤄지던 땅 위의 세상과는 달리 수 천년에서 수 만년이라는 오랜 간격의 시간 단위로 설명이 가능한 '언더랜드'는 그만큼 우리에게는 심원의 공간이었다. 『언더랜드』과학적인 증명과 함께 죽음과 생명의 순환과 자원, 에너지에서 폐기물이라는 전환 과정으로 이 공간을 재정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우리는 그간 별다른 관심이 없던 '언더랜드'와 유무형의 관계를 맺은 채 살아왔음을 깨닫게 된다. '언더랜드'에 대한 탐사를 마치고 지상으로 향하면서 마주하는 수많은 저자의 생각 역시 우리로 하여금 그간 암흑의 공간인 '언더랜드'를 새롭게 바라봐야 한다는 인식전환의 필요성을 이끌어낸다. 이 책을 통하여 지질학과 관련된 과학의 영역으로만 바라보던 '언더랜드'를  그 공간이 주는 겸허함과 나눔에 더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 아닐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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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나날이

    암흑의 공간, 그 공간이 가지는 겸허함과 나눔이란 말에 마음이 많이 움직이네요. 우리가 흔히 놓치고 있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생각이 행해 지면서요.

    2020.08.26 08:1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지질학적인 영역에 대한 책이지만, 그 탐사의 과정에서 느껴지는 부분은 나날이님의 말씀처럼 겸손과 배려를 통하여 지상과 언더랜드의 유기적인 관계에 더 마음이 가게 되는 것 같습니다.

      2020.08.28 08:17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우리가 모르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다른 생각을 갖게 만드는 것 그것이 책의 역할일 것 같은데 그 목적에 충실한 책이네요!

    2020.08.26 08:36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꾸준히 책을 읽어보려고 노력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랜만의 시골아낙님의 댓글이 너무나 반갑습니다. 바쁜 와중에도 꼭 여유를 되찾으시길 응원할께요. ^^

      2020.08.28 08:18
  • 스타블로거 추억책방

    언더랜드는 미지의 세계이면서 조금은 두려운 세계 같아요. 그만큼 잘 모르는 세계라 그렇겠죠... 언더랜드에 대한 탐사과정과 함께 신화와 문학 등 인문학적 요소도 들어있어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 같네요. '우드 와이드 웹'이라는 표현이 특히 흥미로운데 지하 세계에 끈끈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지상의 존재들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미처 깨닫지 못한체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책찾사님 리뷰를 통해 언더랜드에 관심을 갖게 해 주는 읽어볼만한 책 같습니다.
    책찾사님~ 벌써 목요일이네요. 태풍이 큰 피해 없이 잘 지나가길 바라며~ 남은 한주도 행복하게 보내세요.^^

    2020.08.27 04:4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책찾사

      네, 미지의 영역을 다룬 책이라서 사실 글로 이해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의 유일한 아쉬움은 탐사 공간에 대한 생생한 사진이 있었으면 어땠을까라는 것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지질학적인 내용은 물론 문학과 인문학적인 요소, 그리고 실제 탐험 과정을 꽤 상세히 적음으로써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
      태풍이 생각보다 큰 피해를 주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다만 또 태풍이 생겨나고, 무엇보다 코로나 19 사태가 더욱 확장되고 있다는 점이 참 걱정스러운 요즈음입니다.
      벌써 금요일이네요. 추억책방님, 오늘 하루 잘 보내시고, 다가오는 주말 평온한 시간 보내세요. 이번 주말도 설마 출근하시는 것은 아니겠죠? ^^;;

      2020.08.28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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