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빌 맥키번은 당시 획기적인 내용이었던 『자연의 종말』에서 기후 변화의 위험성을 알렸다. 당시 한국은 경제 성장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었던 시기였기에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에 따른 문제점은 그리 부각되지 않았으니 빌 맥키번의 지적이 얼마나 탁월하였는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음이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이제 맥키번은 『폴터(FALTER)』를 통하여 자신이 지적한 기후 변화의 위험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점을 재차 설명하면서 '휴먼 게임'이 끝나간다고 경고하고 있다.
우선 저자는 '휴먼 게임'을 '인류가 경험하는 모든 것의 합'이라고 정의한다. 그렇다면 인류의 입장에서 '휴먼 게임'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어 왔으며, 또한 지속되어야 한다. 하지만 저자가 이것을 게임으로 부르는 것은 분명한 결과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부연한 점을 떠올린다면 '휴먼 게임'이 어떻게 흘러갈지를 예측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휴먼 게임을 위협하고 그 위험을 가속하는 것들을 통하여 휴먼 게임이 종결될 수 있다는 점을 주장한다. 게임의 종결은 곧 인류의 종말을 의미하는 것이니 우리는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게 된다.
30년 전에는 지구 온난화가 어느 정도 자정 능력이 있어 기온이 상승하면 그만큼 지구를 식힐 다른 변화가 촉발될 것이라는 희망이 있엇다. 구름의 경우는 늘어나는 수분 증발로 대기가 더 촉촉해지면서 더 많은 구름이 생겨 태양 빛 일부도 차단할 것으로 보았다.
- p. 49 中에서 -
이미 30년 전에 지구 온난화를 경고했던 그는 최근 지구 온난화가 가속화되면서 인류를 압박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 시기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지구 온난화에 대한 대책이 생길 것이라고 낙관하였지만, 그 예상 중 하나인 구름은 거꾸로 더 많은 열을 가둬 지구를 보다 뜨겁게 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니 이제는 지구 온난화에 따른 문제점을 더이상 회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이미 기후 변화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였기 때문에 이 책의 초반부에는 주로 현실로 나타난 문제점들에 대한 지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북극권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이 녹으면 해수면 상승이라는 문제와 함께 그 안에 갇혀 있던 탄저균을 비롯한 다양한 박테리아에 인류가 노출될 수 있으며, 온도의 상승으로 곡물 수확량이 감소하고,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짐에 따라 쌀과 같은 곡물에 포함된 단백질이 줄어드는 문제는 우리 스스로 인류의 식량 시스템을 지탱하고 있는 생물물리학적 환경을 완전히 바꾸고 있다라는 점에서 '휴먼 게임'에 큰 위협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구 온난화로, 이 확장은 이제 끝나가고 있다. 수축의 시기가 시작되고 있다. 거주하기 위한 새로운 대륙이 아니라 인간의 자리가 줄어들기 시작했다. 지구는 크지만 유한하다. 우리는 지구의 일부를 잃기 시작했다.
- p. 90 中에서 -
기후 변화의 최근 상황을 세계 곳곳의 가뭄과 홍수, 폭염, 해수면 상승 등 과학적 데이터를 들어 경고하는 저자는 기후 변화에 가장 책임 있는 세력들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기후 변화에 대처하지 못하도록 지난 30년간 방해 공작을 일삼은 세계적인 화석 연료 산업의 횡포와 이들과 결탁하거나 묵인하는 권력자들까지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환경 작가 알렉스 스테픈이 말하는 '약탈적 지연', 즉 지속 불가능한 부당한 시스템에서 돈을 벌기 위해 그 사이에 필요한 변화를 막거나 지연시키는 일들을 자행하게 된다. 이미 수십년 전부터 석탄 및 석유 회사들은 자체적인 연구를 통하여 화석 연료의 사용과 개발로 인하여 거기에서 배출되는 가스의 성분들이 지구의 온난화를 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숨기는 데 급급했으며, 심지어 그것을 캐내려는 시민단체와 학자들을 막기 위하여 정부를 상대로 공작과 로비를 벌였다.
미국은 파리기후협정에서 빠져나왔다. 이것은 지구의 대기 속에 가장 많은 탄소를 쏟아 붓고 있는 나라가 이제는 위기를 막기 위한 행동조차 하지 않는 유일한 국가가 됐다는 의미다.
- p. 118 中에서 -
지구의 온난화를 방치하면서 이러한 짓을 벌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순히 이익 때문일까? 여기에서 저자는 '휴먼 게임'을 위협하며 동시에 그것을 무력화하려는 것들을 '레버리지'라고 칭하면서 화석 연료 산업을 이끄는 인물들과 그들과 결탁한 권력자들의 사상적인 배경도 함께 다룬다. 정부의 역할은 최소화하면서 자유 방임주의를 내세우는 것이 바로 그들의 사상적 배경이다. 에너지 회사는 이러한 사상을 신봉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정당화하면서 지구 온난화에 스스로 면죄부를 부여하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흐름은 실리콘 벨리의 사회진보를 이끄는 젊은층으로 구성된 기술 억만장자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언뜻 이들은 전기차를 개발하고 태양과 풍력 에너지를 활용한 기술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으니 기존의 화석 연료 산업과는 선을 긋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들이 추구하는 신기술 역시 '휴먼 게임'을 위협하는 레버리지라고 말하고 있다. 컴퓨터의 발달이 불러온 인공지능과 로봇, 배아복제와 같은 신기술이 바로 그것이다. 최근 인공지능과 로봇의 발달로 인하여 미래에 인류가 그것들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냐는 두려움이 일고 있는데, 저자 역시 그러한 흐름에 공감하며 그것들이 앞서 언급한 레버리지에 포함된다는 점을 언급한다. 기술과 정보의 발전이 가속화됨에 따라 그에 의한 변화를 쉽게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그것이 인류에게 커다란 위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신체 유전공학은 전통적인 의학을 확대하면서 이전에 치료할 수 없었거나 엄청난 양의 화학 물질과 방사선으로 투박하게 공략할 수밖에 없었던 일부 질병을 치료할 수 있게 해준다.
- p. 212 中에서 -
저자의 우려는 유전자 공학과 관련된 것에서 더욱 커지게 된다. 특히 '유전자 가위'라 불리우는 '크리스퍼'가 신체 유전공학과 같이 이미 문제를 가지고 있는 기존 인간을 고치는 데 활용된다면 '휴먼 게임'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생식세포계열'의 유전공학은 배아기의 DNA를 변형시켜 인간으로 태어나도 전에 바꾸는 것이기에 이는 '휴먼 게임'을 아예 끝낼 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휴먼 게임'은 우리가 인간적이어야 가능한 것인데, 태어나기 전부터 유전자를 편집하게 된다면 인간의 의미가 없는 세상이라고 저자는 단언한다.
이러한 다양한 레버리지들 중에서 저자는 아무래도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에 더욱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인공지능과 로봇은 인간에게 암울한 미래를 가져다 줄 수 있지만, 아직 그와 관련된 기술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황이며, 유전자 조작은 일단 윤리 문제에 직면하면서 공식적으로는 통제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구 온난화에 따른 기후 변화는 이미 100년 전부터 화석 연료를 사용하면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경제를 지배한 것이기에 기후 변화를 인공지능과 로봇, 유전자 조작과 같은 레버리지만큼 통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저자는 실낱같은 가능성을 지닌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바로 태양광 패널 사용과 비폭력 운동이다.
하드웨어적인 해결책으로서의 태양광 패널에 대한 언급은 우리도 어렵지 않게 공감하는 부분이다. 한국에서도 화력 발전소의 가동을 줄이면서 그 공백을 메꾸는 것으로 태양광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탈원전'과 맞물리면서 이상과 현실의 괴리 속에서 혼란을 겪는 우리의 상황에서 태양광 패널에 대한 저자의 조언과 또 실제 세계 곳곳에서 어떻게 활용되며 그와 관련된 다양한 기술들에 대한 언급은 유용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비폭력 운동은 시대정신과 이에 따른 역사 흐름을 바꿀 목적으로 대중운동 구축을 목표로 하는 조직화 전부를 의미하는 소프트웨어적인 개념이다. 휴먼 게임을 끝내기에 충분한 힘과 야만적인 레버리지를 소유하고 있는 이들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강대강의 물리적인 충돌이 아니라 그들의 실체를 정확히 인지한 상태에서 대중들의 관심을 토대로 합법적으로 저항하는 것이 필요하다.
『폴터(FALTER)』를 통하여 저자가 말하는 '휴먼 게임'을 위협하는 레버리지의 실체를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동시에 나는 이 게임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휴먼 게임'의 종료가 현재의 우리에게는 관련이 없을거라는 믿음이 더 큰 레버리지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삼십 년 안에 누군가 해결책을 찾을 거라 믿어요. 게다가 그때쯤이면 난 죽었을 텐데, 무슨 상관이죠?"라는 이 무책한 발언에 혹시 뜨끔했다면 이 책을 꼭 읽어보길 바란다. 기후 변화의 위기가 가장 취약하고 어려운 계층에 먼저 영향을 끼치더라도 결국 우리 모두에게 닥칠 것이기에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테니까.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