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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

[도서]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

김홍표 저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5점

 신호 대기 중인 차 안에 홀로 있는 남성은 주로 코를 파면서 짧은 시간을 요긴하게 보낸다고 한다. 여기서 방점은 아무래도 '홀로 있는''남성'에 찍힐 것 같다. 혼자 있을 때 코를 파는 일이 흔하고 그런 행위가 성별에 따라 다소 차이가 난다는 연구 결과는 이미 알려져 있다. (중략) 들켰을 때 창피할 수도 있는 코파는 행위가 사라지지 않고 인간 사회에 만연하게 된 까닭은 무엇일가?

 - p. 110 中에서 -

 뜨끔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필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지 궁금해진다. 실제 여러 국가의 과학자들이 모여 코 파기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코 파기와 관련된 인간의 유전자가 있는 것이 아니냐라는 것에서부터 콧구멍을 청결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연 선택된' 행동으로 보는 주장, 심지어 콧구멍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일이 뇌에 즐거움을 선사하는 일이라는 주장도 있다. 여기에 나아가서 저자는 상상조차 하기 싫은 행위, 즉 코딱지를 먹는 것이 건강에 좋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언급한다. 코딱지에 사는 미생물이 항생 물질을 만들기 때문에...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은 이처럼 일상에서 볼 수 있는 작고 사소한 것을 통해 생명의 원리는 물론 지구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다루고 있다. 일전에 읽었던 『우주를 만지다』와 형식적인 면에서는 상당히 유사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종래의 과학 서적들은 이러한 주제를 다루기 위하여 심오한 과학 이론을 동원하였다면, 이 책은 귀지, 춘곤증, 코딱지, 피부의 점, 땀, 손가락 지문, 바이러스 등을 대상으로 한 사소한 의문과 질문으로부터 출발하여 자연과 생명의 법칙에 이르고 있으니 한층 더 이해하기 쉽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1부. 아름답고 귀한 : 원소의 삶

 2부. 세상을 아우르며 보기 : 동물살이의 곤고함

 3부. 닫힌 지구, 열린 지구 : 식물, 하늘을 향해 대기 속으로

 4부. 인간과 함께할 미시의 세상 : 작은 것들을 위한 생물학

 이 책의 각 파트의 제목을 들여다보면 저자가 표방하고 있는 '경계 없는 질문을 하기 위한 과학'의 면면이 느껴진다. 눈에 보이지 않는 미시의 세계가 지구와 우주에 이르는 거시의 세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과학은 물론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풀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러한 과정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소한 질문으로부터 시작되고 있기 때문에 저자의 이야기에 자연스레 귀를 기울이게 된다.

 

 굶주림의 시기를 거치면서 인간은 음식이 넘쳐나는 시기에는 배불리 먹고 그것을 지방의 형태로 저장했다. 이런 방식이 우리 조상의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운동을 열심히 해도 쉽게 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가 인류의 이런 대물림과 관련이 있다고 보는 과학자들도 적지 않다.

 - p. 51 中에서 -

 '다이어트'에 대한 필요성을 누구나 공감하면서도 살을 빼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적게 먹고 운동을 많이 하면 빠진다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실천으로 옮기기가 쉽지 않다보니 비만이 왠지 죄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인류가 하루에 세 끼로 고정하여 밥을 먹게 된 것은 미국의 경제 성장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 이전에는 하루에 한 끼 또는 두 끼를 먹는 경우도 있었으며 전반적으로 특정 계층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인간이 그리 넉넉한 식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유전자와 세포는 오랜 굶주림 속에서 단련되었으니 적은 양의 식사에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단련된 상태에서 세 끼로 고정된 식사는 물론 간식과 소화하기 쉽게 가공된 음식을 손쉽게 섭취할 수 있으니 우리의 신체는 그것을 에너지가 아닌 지방으로 저장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간헐적 단식과 하루의 끼니를 줄인다는 것은 오히려 인체에 더 유익한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인간의 유전자와 세포 역시 그러한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바뀌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이 떠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하루에 세 끼를 고정한 시점은 기껏해야 200년 정도이다. 인류의 장구한 역사를 떠올린다면 그리고 인간의 진화를 생각해보면 이 200년은 그 변화를 가져오기에는 너무나 짧은 시간이라 할 수 있기 때문에 적어도 우리 세대에는 풍족하게 먹는 것에 대하여 그것을 몸이 정상적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으니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것이 유일한 대안일 것이다.

 


 할 일이 줄어든 엽록소가 분해되기 시작하면 그동안 녹색에 가려졌던 나무 안의 색소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은행잎의 노란빛은 크산토필이라는 물질의 색이다. 광합성에 참여하던 카로틴도 주황색 색상을 뽑낸다. (중략) 붉은빛을 띠는 안토시아닌을 적극적으로 만들어내는 식물도 있다. 단풍이나 떡갈나무가 그런 나무들이다.

 - p. 166 中에서 -

 울긋불긋한 단풍과 샛노란 은행을 보면서 가을을 만끽한다. 초록색이었던 잎들이 어떻게 가을에 맞춰 색깔이 변하는 것인지 궁금했는데, 이 책은 그 과정이 바로 계절의 변화에 따라 햇볕이 줄면서 할 일이 줄어든 엽록소의 분해에 따른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조금 더 자세히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여름에는 식물들이 광합성에 주로 적색이나 청색 파장의 빛을 흡수하여 사용되기 때문에 초록색 파장의 빛을 반사시킨다고 한다. 빛의 반사는 결국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이니 결국 그 시기에 나무의 잎들이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은 이와 같은 이유이다. 그리고, 점점 광합성 작용이 시들해지면 굳이 초록색 빛을 반사할 필요가 없으니 잎의 원래 색깔이 드러나게 되고 우리는 이것을 단풍나무나 은행나무를 통하여 명확하게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인간은 평균 키보다 네다섯 배 정도 긴 구절양장의 소화기관을 갖고 있다. 이 또한 인간이 생존에 얼마나 최적화 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경우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인류의 역사 대부분은 그리 넉넉하게 먹을 수 없었으니 입으로 들어온 영양소를 최대한 흡수하려는 바램이 인간의 소화기관에도 깃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들 소화기관은 육안으로 식별 불가능한 우리 몸의 작은 세포를 먹여 살리기 위하여 그들이 먹을 수 있게 잘게 쪼개주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런데, 과연 과거 석탄 채굴장의 노동자들이 먹고 마셨던 석탄가루라든지 규산염 섬유 결정인 석면이 우리 몸 속에 들어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의 세포에게는 필요없는 것이니 소화기관의 입장에서는 이것을 잘개 쪼갤 수도 흡수할 수도 없다. 이러한 것들은 계속 인체에서 쌓이다가 나중에는 진폐증이나 암과 같은 치명적인 병을 유발하게 된다.

 

 이러한 위험성을 인지하는 상황 속에서 최근 새로운 위험 인자가 등장했다. 바로 미세플라스틱이다. 앞서 언급한 석탄 가루라든지 석면은 특정 지역 또는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한정하여 영향을 끼쳤지만, 미세플라스틱은 인류 모두 나아가서 지구의 모든 생물에게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이다. 플라스틱이 파도와 태양빛에 닳고 닳아 잘게 부서지다가 미세한 크기로 바뀌면서 시각적으로는 플라스틱이 사라졌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생태계 전반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덕분에 생선 요리라는 이름의 미세플라스틱 '요리'가 우리 식탁에 오르며 후식으로 마시는 커피에도 역시 미세플라스틱이 있으며, 이 가을의 단풍잎에도 역시 미세플라스틱이 포함되어 있다. 분명 이러한 미세플라스틱은 인간의 세포에게 위험 신호로 받아들이고 그에 따라 반응하고 있지만, 이 세포의 집합체인 인간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플라스틱을 편리하다는 이유로 대량으로 생산 및 사용하고 있으며, 그대로 버리고 있다. 특히 코로나 시대에 플라스틱의 사용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작고 거대한 것들의 과학』에서 다루는 내용들은 모두 우리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포와 바이러스와 같이 전자 현미경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에서부터 지구라는 거시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두 우리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심지어 눈에 보이지도 않는 세포가 수십 조의 단위로 모여서 이루어진 존재가 인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작고 거대한 것'은 곧 인간을 지칭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요즈음 트렌드인지는 몰라도 이 책에서 보여준 과학에 대한 색다른 접근이 무척 흥미롭다. 사소한 것에 대한 평범한 질문으로 출발하여 과학은 물론 인문과 철학마저도 아우르는 이 책의 흐름을 좇다보면 '생명의 역사를 읽는 넓고 깊은 시선'이라는 책의 부제에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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