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잠시 고개를 드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무한'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밤하늘은 어느덧 우주로 확장되면서 그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존재는 그저 '무한'으로 표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주를 바라보는 그 순간 우리의 머릿속은 수많은 생각과 의문으로 가득차게 된다. 하지만 그러한 의문에 대한 대답을 홀로 찾기란 힘들면서도 여간 골치가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여행 작가'라는 별명을 지닌 빌 브라이슨 역시 거의 50년간 고민하다가 스스로 답을 찾아보기로 결정하여 그 결과물을 우리와 공유하게 되었으니 그 공유물이 바로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이다.
빌 브라이슨은 직설적이면서도 괴짜를 연상케 하는 글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지구와 우주는 물론 생명과 인간의 미래를 주제로 하는 과학을, 그것도 그림과 함께 글로 쓰려고 한 것일까? 그 시작은 그가 초등학교 4~5학년 때에 가지고 있던 과학 책의 첫 부분의 그림 때문이었다. 거대한 칼로 지구를 잘라서 지구의 내부를 볼 수 있도록 그린 단면도였는데, 그는 이러한 그림 하나만으로도 따분하게 느껴진 과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또한 그림이 나타내는 사실을 과연 어떻게 알아냈을까라는 호기심이 생겼다고 한다. 하지만 그가 그림으로 본 내용을 글로 마주하는 순간 그는 그가 처한 문제를 단번에 파악했다. 교과서가 전혀 재미있지 않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그 시절에 교과서를 받으면 가장 먼저 책장을 넘겨보며 오로지 그림과 사진으로 된 부분만을 찾았으니 빌 브라이슨의 그러한 심경을 충분히 공감하게 된다. 결국 빌 브라이슨은 자신이 감명깊게 본 과학과 관련된 그림을 자신만의 글로 보다 재미있게 만들고자 한 것이고 그로 인하여 이 책이 탄생된 것이다.
만약 지구의 무게를 측정해야 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분명 우리는 과학 시간에 지구의 무게에 대해서 배운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지구의 무게는 OOOO톤과 같은 수치로 배운 것이 전부이다. 우리는 과연 그러한 지구의 무게가 어떻게 측정이 된 것인지 궁금해 한 적이 있었던가? 그나마 지구의 둘레는 에라토스테네스의 막대기의 그림자 기울기와 측정 지점의 거리를 통하여 계산하는 과정은 배웠지만, 확실히 지구의 무게를 측정했는지는 배운 기억이 없다. 빌 브라이슨은 산 부근에 무거운 추를 매달아두면 지구의 중력과 함께 산의 중력 질량이 작용하기 때문에 추가 산 쪽으로 기운다는 뉴턴의 주장에 근거하여 이후 사람들이 산 근처에서 지구의 무게를 측정하는 과정을 그림과 함께 설명하면서 결국 등고선을 활용하여 지구의 질량이 4,536조 톤을 계산하였음을 보여준다.
솔직히 내용만 보면 그리 쉽다고는 할 수 없다. 자세한 계산 과정은 거의 생략하였지만, 산의 중력 질량을 모두 등고선으로 계산하여 총 질량을 산출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나마 빌 브라이슨이 강조하는 것처럼 그림이 있었기에 왜 산 주위에서 지구의 질량을 측정하는 시도가 이루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재에는 서로 떨어져 있는 대륙에서 동일한 화석이 발견되고 있는 것은 '대륙이동설'을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이다. 지금에야 당연한 이론으로 받아들이고 있지만, 그 거대한 대륙이 분리되어 이동한다는 사실을 쉽게 납득할 수 있을까? 빌 브라이슨은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고 현재의 대륙이 예전에도 그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는 예전의 이론을 그림과 함께 설명한다. 바로 '구운 사과 이론'과 '육교 이론'이다. 이 책의 그림만 보면 곧바로 '육교 이론'이 무엇인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는 해수면이 한때는 훨씬 낮아져서 대륙들 사이에 육교가 존재한 시기가 있어서 이 육교를 통하여 동물들의 이동이 있었다는 점이다. 이 이론을 적용한다면 오늘날 오대양 육대주가 과거와 동일한 상태를 유지하면서도 왜 서로 다른 대륙에 같은 종류의 화석들이 발견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다. 물론 곧바로 '대륙이동설'을 배운 우리로서는 그러한 이론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알지만, 이러한 시행착오를 거쳐 '대륙이동설'이 등장하였음을 잊지 말라는 빌 브라이슨의 의도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지구의 나이 역시 앞서 언급한 지구의 무게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 수치를 이미 알고 있다. 하지만 빌 브라이슨은 그러한 지구의 구체적인 나이의 계산을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그 과정은 그림보다는 측정값과 그것을 계산하는 식으로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빠를 것이다. 빌 브라이슨은 지구의 나이를 알기 위한 지구의 생성 시점의 환경을 그림과 글로 설명한다. 물과 폭발하는 화산의 그림은 분명 지구의 탄생에 물 또는 화산 폭발로 대변되는 지구 내부의 열이 큰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빌 브라이슨은 '수성론(水成論)'과 '화성론(火成論)'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수성론(水成論)'
☞ 지구상의 모든 것을 해수면의 상승과 하강으로 설명하는 이론으로서 산과 언덕과 모든 것들이 세계적인 홍수로 물이 출렁거릴 때 생겨난 변화라 주장한다.
'화성론(火成論)'
☞ 지구의 표면이 화산이나 지진 때문에 끊임없이 바뀌었을 뿐, 물과는 상관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초창기의 그 많은 물들이 지금은 어디에 있느냐며 '수성론(水成論)'을 반박한다.
현재에는 '화성론(火成論)'이 거의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빌 브라이슨의 그림에 추가하여 초창기 지구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림으로 그려볼 수 있게 된다. 지구 내부의 열이 화산으로 분출되면서 이러한 환경의 변화를 통하여 생명체가 만들어지고 지형의 변화가 생겨난 것을 말이다.
보통 그림이 포함된 책이라면 다소 쉽다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내용은 마냥 쉽다고는 할 수 없다. 아마 이 책에서 그림을 제거해버린다면 딱딱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그러니 이 책에서 그림의 역할은 빌 브라이슨이 어렸을 때 경험한 그림의 위력(?)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셈이다. 따분하게 생각되던 과학을 꼭 그렇게 바라볼 필요가 없음을 그림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따라서 우리가 이 책을 선택하여 읽고자 한다면 빌 브라이슨이 이 책을 쓰면서 얻게 된 두 가지 특별한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첫째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단하고 재미있지 않은 것이 없다는 사실.
둘째는, 우리가 엄청나게 운이 좋았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에 여기에 있게 되었다는 사실.
빌 브라이슨은 이 두 가지 사실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원자와 전자 단위로 들여다 본다면, 그리고 생명의 탄생과 유전 과정을 과학적으로 바라보게 된다면 두 가지 사실은 신비롭고 재미있다기보다는 어렵고 딱딱하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빌 브라이슨은 이러한 점들을 염두에 두고 그러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하여 그림과 함께 과학을 다루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그림으로 보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타임스』의 "재치있고, 매력적이고, 지식이 가득한 안내서"라는 평에 잘 어울리는 책이라 생각한다. 제목에 '그림'이 있다고 해서 마냥 쉬운 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처음에는 딸과 함께 읽어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내 내가 먼저 읽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딸이 홀로 책장을 넘기는 이유는 책의 내용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요즈음 제법 아는 글자가 많아서 자기가 아는 글자를 찾는 것일 뿐이다.) 따라서 이 책은 우리를 둘러싼 세계에 대하여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할 수 있다. 또한 빌 브라이슨이 어렸을 때 과학 교과서에서 본 그림에 충격을 받았던 것처럼 이 책의 그림을 아이들의 과학에 대한 호기심을 유도하는 차원으로 활용해본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