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클리가 보기에는 우리의 지각이 사물을 우리에게 '현실'로 보이도록 만든다. 식탁이나 의자는 지각될 수 있는 범위 내에서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이러한 물질은 오로지 우리 마음속에만 존재한다는 뜻이다. (중략) 우리가 마음속에 존재하는 세상만 알 수 있다면, 물질의 세상이 정말로 저기 존재한다고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
- p. 67 中에서 -
작년 가을에 읽었던 [더 클럽]이라는 책은 18세기 영국 지식인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었는데, 이 책 [리얼리티 버블]에서도 그 책에 등장했던 새뮤얼 존슨과 제임스 보스웰, 조지 버틀리의 일화가 나와서 무척 반가웠다. 그런데, 저명한 아일랜드 출신의 철학자 조지 버틀리의 견해는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눈으로 보는 것, 즉 지각이 존재하는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현실'로 보이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듣고 있던 제임스 보스웰은 거대한 돌을 발로 걷어차며 "나는 이렇게 반박하네."라고 말했다고 한다. 실제로 돌이 존재하고 그것을 신체의 일부인 발로 차서 고통을 느끼는데 이것이 '현실'이 아니고 어떻게 '허상'일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이다.
18세기의 이러한 논쟁을 보면서 지식인들의 쓸데없는 지적 유희라고 지나칠 수 있지만, 전자 현미경에 비한다면 너무나 보잘 것 없는 시력을 지닌 인간들이 바라보는 것들이 모두 현실일 수 있을까라는 저자의 물음에 우리는 쉽게 대답할 수 없을 것이다. 분명 눈에 보이는 것이 '현실'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한 우리지만, 역사는 물론 과학에서도 인류의 '맹점'은 언제나 존재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우리가 그토록 얽매어 있는 '현실 세계'가 사실 현실이 아니라면 어떨까?'라는 물음과 함께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는 우리 눈을 가리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을 걷어 내고 '현실'이라는 거품 너머에 있는 것을 보다 명료하게 볼 필요성을 강조한다. "진정한 발견의 여정은 새로운 풍광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다."라는 프루스트의 말을 인용하면서 저자는 과학으로 무장된 새로운 눈을 통하여 우리를 둘러싼 현실의 거품 이면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도대체 우리는 그동안 어떤 맹점을 지닌 채 살아온 것일까?
( 여기에서 '맹점'의 의미는 눈의 망각에 존재하는 한 점에서 출발한다. 종이에 약간의 간격을 두고 커다란 점과 X표를 그린 이후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의 커다란 점을 응시하다가 점점 종이와 거리를 떨어뜨린다. 그렇게 된다면 어느 순간에 종이의 오른쪽에 그려져 있던 X표가 보이지 않는다. 분명 종이 위에 존재함에도 말이다.)
1부.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것들
2부. 우리 삶을 떠받치는 것들
3부. 우리를 통제하는 것들
이 책에서 다루려는 대상을 크게 위와 같이 세 부분으로 나누고 있다. 1부에서는 우리가 개인으로서 타고나는 맹점들을 언급하며 과학과 기술이 어떻게 우리의 생물학적 한계 너머를 볼 수 있는지를 통하여 왜 우리가 과학으로 그동안 '현실'이라 믿고 있던 그 거품의 실체를 바라봐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2부에서는 개인이 아닌 집단적인 맹점으로서 우리가 하나의 사회로서 어떻게 고집스러운 맹목에 갇혀 있는지를, 3부에서는 세대를 거듭하며 형성된 맹점들을 다루고 있다. 다소 어렵고 조금은 무겁게 느껴질 수 있는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리얼리티 버블]은 흥미로운 소재를 통하여 차근차근 그 맹점의 실체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리 딱딱한 책은 아니다.
'마음의 폭탄'이라는 1부 2장의 제목만 보면 과연 어떤 내용일지 쉽게 짐작할 수 없지만, 그 내용의 시작은 1992년 빈 에서 발견된 자매의 미라화된 시신에 대한 분석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누구라도 충분히 흥미를 가질 수 있다. 분명 타인에 의하여 죽은 것이 아님에도 이들이 누가 먼저 죽었는지를 밝히는 것이 초유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왜냐하면 보험사에서는 자매 중 누가 죽었느냐에 따라 막대한 보상금을 지불하지 않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과 교류가 없던 자매들의 죽음 순서를 과연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법을 먼저 떠올릴 수 있지만, 반감기가 5,730년인 탄소를 통한 이 측정법은 오차 범위가 수백 년에 이르기 때문에 큰 시간차를 두지 않고 사망한 자매의 죽음의 순서를 밝히기에는 적당한 측정 방법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알아내야 할까?
이러한 의문의 증폭과 함께 저자는 자매의 죽음에 대한 조사 내용을 잠시 접어두고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원자 단위로 현재의 세계를 거슬러 올라가서 생명 탄생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를 언급한다. 식물은 공기에서 직접 탄소를 흡입하고 동물은 식물을 먹음으로써 탄소를 흡수하며 인간 역시 그렇게 섭취하는 탄소를 우리 몸을 만드는 데 활용한다는 이야기는 자매의 죽음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먹이 사슬과 탄소의 흡수 과정은 핵폭탄이 개발된 이후 무분별하게 자행된 핵실험으로 탄소-14가 급증하게 되었으며, 이것이 그대로 위의 먹이 사슬을 통하여 인간에게도 흡수되었음을 통하여 결국 자매의 몸에서 가장 나중에 만들어진 세포인 피부와 머리카락 표본을 검사하여 그 안의 탄소-14의 양을 파악하여 자매 중 하나가 먼저 죽고 1년 뒤에 또 다른 하나가 죽었음을 밝혀낸다. 그 의문의 사건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자연적인 맹점 하나를 알게 된다.
우리가 차지하는 규모에서 우리가 고체로 지각하는 것은 사실 구멍이 숭숭 뚫려 있으며, 우리 몸과는 별개로 보이는 것은 원자와 아원자 수준에서 보자면 만물과 깊게 연관되어 있다.
- p. 92 中에서 -
이러한 맹점을 통하여 우리를 원자 단위로 생각해 본다면 그동안 시적인 표현으로 알고 있던 '우리는 별에서 왔고, 죽어서는 별로 되돌아간다.'라는 것이 지극히 과학적인 것임을 깨달을 수도 있다. 탄소는 물론이고 우리 몸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원소는 원래 우주에는 존재하지 않던 것이다. 수소가 대부분이었던 초기 우주의 상태에서 별들이 생겨나고 이들이 팽창을 반복하다가 폭발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원소들이 생겨났고, 이 원소들은 우주의 곳곳으로 퍼지면서 지구에도 전해졌던 것이다. 이러한 원소들의 조합으로 생명체가 탄생되었으니 인간은 원자와 아원자 수준으로 본다면 지구의 모든 것들과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수긍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뇌(우리의 마음)가 이제 우리가 관측하는 바로 그 원초적인 원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의 두 번째 맹점은 우리가 주위의 우주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문학자 미셸 탈러가 말했듯이 사실 "우리는 하늘 위에 올려다 보이는 죽은 별들이다."
- p. 93 ~ 94 中에서 -
2부의 '우리의 삶을 떠받치는 것들'을 통한 맹점은 1부의 과학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 보면 누구라도 충분히 알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고 싶은 인류가 만들어 낸 맹점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자주 먹는 치킨 너겟을 분석하면 주로 지방과 뼈, 상피조직, 신경과 결합 조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나머지는 골격근이 차지하고 있다. 닭고기를 갈아서 만들었겠거니 생각했지만, 순수 고기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심지어 유통 기한을 훌쩍 넘긴 '좀비 고기'라든지 우리가 '신선하다'고 여기는 고기 역시 상대적이다. 식품 과학자들이 고기를 항생제에 담그기 시작했던 1950년대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면 식품 산업에서 신선함을 가장한 역사의 기원을 찾을 수 있다. 항생제 또는 염소를 통한 식품 보존 방식은 식품 유통에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왔지만, 이로 인하여 '신선함'의 정의는 모호해졌다는 것이다. 즉, 먹는 것에 관한 한 우리의 눈은 우리를 속일 때가 많다는 것이다. 우리가 요즈음 즐겨 먹는 연어의 70퍼센트는 양식 연어이며, 우리가 신선한 연어라 생각하는 그 빛깔을 유지하기 위하여 연어에게 석유 화학 물질로 만든 합성 카로티노이드인 칸타잔틴과 아스타잔틴을 사용하여 인위적으로 착색을 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애써 그것을 무시하고 계속 우리는 연어를 먹을 수 있을까?
'신선함'을 이유로 우리가 외면하고 있는 사실은 '혐오감'에 비한다면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잠재적으로 혐오감을 일으킬 수도 있는 많은 것들은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대량으로 닭을 도축하여 철저하게 부위별로 분리하는 과정을 구체적으로 알고 있다면 우리 식탁에 오르는 닭을 예전과 같이 바라볼 수는 없을 것이다. 베이컨은 가스실에서 도축한 돼지에서 얻어진다는 사실, 슈퍼마켓 육류 코너에 진열된 스테이크가 산 채로 가죽을 벗긴 거세 수소에서 얻어진다는 사실 역시 잘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맹점들은 바로 사람들의 외면 또는 인지부조화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삶의 주위에 존재하고 또 삶을 떠받치는 것들에 대한 맹점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지부조화는 우리가 알면서도 안다는 것을 회피하고자 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가리키는 이름일 뿐이다. 고기가 어디에서 오는가 하는 문제의 경우, 이러한 의도적 눈감기는 지구의 모습을 이미 몰라보게 바꿔버린 소름끼치고 오싹하고 거대한 죽음의 행력을 보지 못하도록 우리의 눈을 가린다. 우리가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도 그런 엄청난 죽음들을 외면할 수 있다면,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빤히 보이는 곳에 감춰져 있을까?
- p. 143 中에서 -
심지어 인간이 식량 관리를 위하여 식물과 동물의 종에 대한 철저한 관리는 너무나 이기적이다. 우리가 먹는 식량을 12종의 식물과 5종의 동물로 제한하여 이들 품종에만 의지한다는 것은 어느 순간 인류가 식량 공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음을 의미한다. 지구의 수많은 식물과 동물이 있음에도 인간은 그저 식량의 대상이 되는 종에 대한 철저한 관리와 통제를 하고 있는데, 이런 제한적인 종에 대한 관리는 예전 감자에만 의존하던 아일랜드에서 발생했던 '대기근'을 충분히 야기할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우리는 외면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점잖은 문명사회에서 우리는 짐승 수준의 야만성을 넘어섰다고 스스로 평가하고 있겠지만, 실상은 감정을 완전히 배제한 살상 방식을 도입함으로써 식량 생산의 공포를 못 본 척 외면했을 뿐이다. 이런 점을 보면 특정 민족 또는 국가가 타자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동물을 식량으로 하는 것에 대하여 비난한다는 것은 그들이 만들어 낸 맹점의 극치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화폐는 세대를 거듭하면서 인류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가축이나 조개껍데기, 금 또는 은과 같은 확실한 물질로 거래되었지만, 오늘날 돈은 추상적이며 우리의 신분에 부착되는 상징들의 연결망 그리고 신분증 번호에 더해지는 숫자인 것이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해본다. 전세계 모든 사람들이 합심하여 은행에 자신들의 예금을 당장 현금으로 찾는다면 어떠한 일이 벌어질지를. 물질적 수단으로서의 화폐를 떠올린다면 분명 아무런 일이 없어야 하겠지만, 아마 지폐를 지급하지 못하여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보면 물물 교환의 수단으로서의 화페는 이제는 그 본연의 가치보다는 유령과 같이 눈에 보이지 않으면서도 부의 극심한 불균형을 상징하는 것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세계 상위 42명의 부와 하위 37억 명의 부가 똑같다는 사실을 마주할 때, 이러한 믿기지 않는 사실을 당연시 하는 자본주의 그리고 돈으로 그 부를 평가받는 이 세계에 의문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기업에서 큰 실적을 내는 CEO 또는 소유주의 1년 급여(성과급 포함)가 같은 회사의 직원들의 1년 급여보다 수십 배 또는 수백 배의 차이가 나는 것을 보면 과연 그 사람이 우리와 같은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사람을 모은 것만큼 능력이 있는지를 따져보면 괜한 자괴감이 느껴지지 않았던가?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그 누군가는 또 빨갱이니 공산주의를 들먹이면서 그러한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하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부자들과 빈자들의 격차가 크게 벌어진 것은 사람들이 거래를 위해 사용하는 교환 체제인 돈에 얼마나 많이 접근할 수 있는가의 차이가 만들어 낸 것이니 이러한 맹점에 대하여 우리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맹점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 역시 더 나은 것, 더 많은 것의 소유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영혼을 저당잡히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니까.
문제의 근원은 존경받고 성공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물건들, 그러니까 좋은 차, 아름다운 집, 근사한 옷을 소요해야 한다는 우리의 믿음이다. 열심히 일하고 계속해서 물건을 취득하면 '멋진 인생'을 손에 넣을 수 있다는 믿음 말이다.
- p. 417 中에서 -
[리얼리티 버블]은 우리의 현실을 바꿀 보이지 않는 것들의 과학을 다루고 있지만, 읽으면서 맹점들로 인하여 삶에서 어떤 가치를 추구하고 또 그것을 위하여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생각에 이르는 기묘한 과정을 경험하게 해주는 책이다. 나 역시 눈에 보이는 것을 아무런 가감없이 그대로 현실로 수용하면서 그 체제에 순응하면서 살아왔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회가 말하는 그 목표에는 도달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마저 든다. 분명 예전에 목표한 것을 이루었다고 생각했는데, 주위와 비교해보면 부족하게 느껴지고 그 목표를 계속 상향하는 내 자신을 바라보게 된다. 혹자는 그것이 개인의 발전의 과정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내 스스로 그것을 납득하지 못하여 영원히 바위를 굴리는 시지푸스가 되는 것은 아닌가라는 불안마저 느껴진다. 이는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을 포함하여 그동안 딱히 생각해보지 않았던 맹점들에 대한 의식의 부재에서 기인한 것은 아닐까? 삶에 대한 돌아보기와 이러한 의문을 갖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은 나에게 의외로 꽤 많은 것을 전해준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