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변화]는 오랜만에 읽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이다. 출간은 2019년에 되었지만, 원래 이 작품은 일본에서 1991년에 출간되었으니 이 작품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한국에서의 인기에 편승하여 뒤늦게 그의 예전 작품이 출간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여기에서 이 작품이 원래 1991년에 출간되었음을 밝히는 이유는 이 작품이 다루는 소재가 바로 '뇌이식'과 관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뇌이식이 실용화되지는 않았지만, 현재의 기술력으로는 가능하지 않을까라는 생각 덕분에 그리 신선한 소재라 할 수 없지만, 이 작품이 쓰여진 시기가 1991년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그 당시에는 꽤 참신한 소재가 아닐까 생각된다.(다만 이 작품은 예전에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이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이미 출간되었다. 판권 계약이 바뀌어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출판사와 책의 제목이 모두 바뀌어 출간되었으니 혹시나 히가시노 게이고의 [변신]을 읽었다면 이 책을 선택할 때 참고하길 바랍니다.)
이야기는 준이라 불리우던 청년 나루세가 뜻밖의 권총강도 사건에 휘말리면서 비롯된다. 집을 알아보려던 나루세가 부동산 회사에서 상담을 받다가 그곳에 권총강도가 난입하면서 한 소녀를 보호하기 위하여 몸을 날린 순간 나루세는 머리에 범인의 총을 맞고 쓰러지게 된다. 사경을 헤매던 나루세는 당시 최신기술이라 할 수 있는 '뇌이식' 수술 덕분에 깨어날 수 있었다. 머리에 총을 맞았으니 살 수 있을 거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는데, 신기술로 인하여 목숨을 구하였으니 나루세가 기뻐한 것은 당연했다. 더구나 연인인 메구미와 다시 재회할 수 있게 되었으니 그의 기쁨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이 지점에서 살펴봐야 할 점은 바로 '뇌이식'에 관한 것이다. 장기를 이식받는 수술은 보편적인 것이어서 낯설지 않지만, 뇌를 이식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예전에 심장을 이식받았을 때, 심장의 제공자의 감정과 기억을 느끼는 사례가 영화와 소설은 물론 현실에서도 있었다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접할 수 있었는데, 기억과 감정, 생각을 담당하는 뇌를 이식한다는 것은 그러한 사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물론 이 작품에서 등장하는 신기술로서의 '뇌이식'은 뇌를 통째로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손상된 뇌의 일부분을 이식하는 것이니 심장을 통째로 이식하는 것과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뇌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감안한다면 어떤 부작용이 뒤따를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나루세 준이치의 수술을 집도했던 도겐 박사의 개인적인 기록이 작품의 중요한 순간마다 따로 등장한다. 처음 적용된 기술이다보니 그 부작용을 관찰하기 위한 도겐 박사의 기록은 이 작품이 허구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인 사실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 단순히 이 작품을 가상의 이야기인 소설로만 볼 수 없음을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역할을 하게 된다. 도겐의 기록도 기록이지만, 준이치의 변화는 정말 뇌이식이 되었을 때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일 수도 있겠다는 공감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뇌의 작은 부분을 이식하였을 뿐인데, 그로 인하여 원래의 인격이 잠식당하게 된다면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퇴원한 이후 나루세 준이치는 우선 목숨을 건졌다는 사실에 큰 기쁨을 느끼지만, 이내 그에게 찾아온 변화로 인하여 무언가가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된다. 조용하면서도 다소 소심한 성격이었던 그는 산업기기 제조업체에서 다른 사람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그저 맡은 일에 충실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으며, 이 과정에서 만난 메구미와의 사랑 역시 소중히 여겼다. 하지만 퇴원한 이후 그의 변화를 예고한 부분은 바로 메구미에 대한 감정 변화였다. 그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소중히 생각하던 그가 자신을 그토록 챙겨주던 메구미를 귀찮아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아예 설레이던 사랑의 감정을 전혀 느낄 수 없었으며, 오히려 병원에서 자신을 담당하던 여의사에게 매력을 느끼게 된다. 또한 그가 좋아하던 그림 그리기도 더이상 진척되지 않았으며 뜻밖에도 절대음감이라는 새로운 능력에 눈을 뜨게 된다.
준이치의 이러한 변화를 준이치는 물론 독자 입장에서도 분명 '뇌이식' 수술의 부작용에 따른 것이라고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는 부작용이라기보다는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는 수긍으로도 볼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혈액을 온몸에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심장을 신체의 장기만이 아니라 마음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에 심장 이식이 단순한 장기 이식이 아니라 기증자의 마음까지 전달되지 않을까라는 확인되지 않은 추측과 또 그런 생각 때문인지 심장을 이식받은 사람이 기증자의 인격을 갖게 되는 사례도 있으니 뇌를 이식받은 준이치에게 나타난 새로운 인격과 능력도 바로 뇌를 기증한 도우너(기증자)의 것일 수 있다는 추리는 타당해 보인다. 실제 준이치 역시 그렇게 생각하면서 비밀로 되어 있던 도우너를 찾아 나서게 된다.
솔직히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소한 변화]는 추리소설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반전이라는 측면은 그리 부각되지 않는다. 작중 주인공인 준이치의 이야기는 읽는 우리의 입장에서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것이고 준이치에게 일어난 변화와 또 그토록 찾아 헤매던 도우너의 정체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충격적인 반전을 기대한다면 이 작품은 다소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는 보편화가 될지도 모르는 '뇌이식' 수술을 그 필요성과 효과 그리고 윤리적인 측면을 함께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는 매력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준이치가 경험하는 과정은 또 하나의 인격체를 갖게 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격체에 의하여 기존의 인격체가 잠식당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 기존의 뇌에 비한다면 이식된 뇌는 극히 일부에 해당되지만, 뇌가 담당하는 그 특별한 역할과 상징성을 감안한다면 인격 자체가 아예 잠식되어 원래의 인격이 사라지는 이 작품의 이야기의 전개는 충분히 해봄직한 설정으로 다가오게 된다.
이야기의 막판은 잠식당하던 준이치가 나름의 반격을 전개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솔직히 그 반격과 반격에 따른 결과도 직접 마주하기 전에 이미 예상할 수 있는 것이니 특별한 반전이라고는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결말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뇌이식'이라는 신기술에 대한 우려와 더불어 나루세 준이치로 대변되는 보통의 사람이 특정인 또는 특정세력의 이익을 위하여 희생양이 되는 부분도 함께 엿볼 수 있다는 점은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다. 일종의 음모론이라 치부할 수도 있지만, 이 세상에는 그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 희생양이 되는 사례가 과거는 물론 현재에도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진실이 한참 시간이 지난 뒤에 밝혀지거나 아예 비밀로 묻히기 때문에 제대로 인식할 수 없다는 점이다.(미국을 비롯한 강대국의 비밀문서 기록이 해제될 때마다 조금이나마 우리는 이러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비밀문서로 기록된 것도 극히 일부분이겠지만)
이런 점에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소한 변화]는 정통 추리물보다는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일본의 사회파 미스터리의 거장인 마쓰모토 세이초를 계승한 인물이 미야베 미유키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말이 있는데, 적어도 이 작품은 그 평가에 걸맞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신작은 아니지만, 이런 관점에서는 충분히 읽어볼만한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