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는 작가이자 탐정으로 활동하는 노리즈키 린타오와 경찰 출신인 그의 아버지 노리즈키 사다오 경시(한국으로 치면 경정 내지 총경에 해당하는 일본 경찰 계급)가 등장한다.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시리즈가 바로 엘러리 퀸에 대한 오마주임을 알 수 있다. 엘러리 퀸 역시 그의 이름과 동일한 인물을 탐정이자 작가로 설정하고 그의 아버지인 퀸 경감이 등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오마주 때문에 엘러리 퀸의 작품에 익숙한 독자라면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가 그리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엘러리 퀸의 작품은 대부분 작품 말미에 대놓고 독자에게 추리대결을 제시하고 있지만, 이 시리즈에서는 그런 장면은 없다. [요리코를 위해]는 '노리즈키 린타로' 시리즈의 세번째 작품이자 가족의 비극을 다룬 소재로서는 첫번째 작품이라고 한다.
'요리코가 죽었다'
[요리코를 위해]는 요리코의 아버지인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로 시작된다. 그의 딸 요리코(17세)가 공원에서 죽은 채 발견된다. 죽음의 원인은 교살이었고, 경찰은 그 공원에서 최근 주기적으로 살인 사건이 발생하였기 때문에 요리코 역시 연쇄 살인마에 의하여 살해당한 것으로 판단하여 연쇄 살인에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니시무라 유지는 경찰이 죽은 요리코가 임신한 상태였음을 자신에게 숨겼다는 점을 비롯하여 그들의 수사에 의문을 품고 단독으로 딸의 살해범을 찾아 나선다. 딸이 임신한 아이의 혈액형이 B형이라는 점과 시신이 발견된 장소, 그리고 학교에서의 생활을 통하여 유지는 논리적인 가설을 통하여 점점 범인의 실체에 다가갔고, 결국 범인이라 생각되는 인물을 찾게 된다. 외동딸인 요리코를 너무나도 사랑했기에 유지는 범인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범인의 집에 찾아가서 요리코의 임신을 증명하는 서류를 들이대며 그의 범행 일체를 자백받은 이후에 그는 범인을 죽인 다음에 집으로 돌아와서 음독 자살을 하게 된다.
80여 페이지에 달하는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만 놓고 보면 딸을 잃은 아버지의 절망과 범인에 대한 복수심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고, 그가 탐정 못지 않은 추리로 범인을 잡는 과정은 언뜻 흠잡을 데가 없는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이 작품이 애초에 추리소설임을 감안한다면 니시무라 유지의 복수 과정이 과연 진실인지 아니면 그 이면에 또 다른 진실이 있는지를 우리는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니시무라 유지가 간호사 출신의 가정부에게 우연히 발견되어 병원으로 이송되어 우선 목숨을 건진 상황에서 노리즈키 린타로가 이 사건을 다시 수사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은 수기의 내용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시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노리즈키 린타로는 '사이메이 여학원'의 압력으로 이 사건에 참여하게 된다. 이 학원은 요리코가 다니는 학교였는데, 학원의 이사장은 유지가 범인이라고 살해한 인물이 해당 학교의 교사였기 때문에 그 오명을 벗기 위하여 노리즈키 린타로를 고용한 것이었다. 여학원의 입장에서는 요리코를 죽인 진범은 따로 있다고 주장하면서 린타로를 고용하면서 힘을 이용해 경찰까지 압박하는 상황이었다. 이렇게 되면 니시무라 유지는 엉뚱한 인물을 죽이고 자살을 시도한 셈이 되니까 이로 인하여 과연 유지의 수기가 진실인지 아니면 또 다른 범인이 있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
이러한 설정은 독자를 점점 추리의 미궁으로 빠트리는 역할을 한다. 애초 처음 등장하는 니시무라 유지의 수기가 사실이라면 이후의 이야기는 필요가 없다. 그러니 수기 이후에 독자 입장에서는 수기가 오히려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니시무라 유지가 범인을 잘못 추리했거나 아니면 요리코의 살인 사건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면서 글을 읽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명문 여학원이라는 큰 힘을 지닌 존재가 등장하여 자신들이 수기와는 다르게 사건과 연관이 없음을 밝히기 위하여 압력을 가하는 부분은 오히려 돌고 돌아서 결국 수기가 진실이라는 점을 재확인하는 결말로 끝날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노리즈키 린타로는 수사의 가장 기본적인 방법인 니시무라 유지의 주변 인물에 대한 탐문 활동에 들어가게 된다. 일단 니시무라 유지는 목숨은 건졌지만, 아직 응급실에서 회복 단계이기 때문에 직접 접촉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요리코의 어머니이자 유지의 아내인 우미에는 14년 전 교통 사고로 인하여 하반신 마비로 집에서 침대 생활을 하는 동화 작가였다. 유지는 그러한 아내를 수기에서 범인을 죽이고 자살을 결심하면서 미안하다고 말할 정도로 무척 사랑했다. 하지만 우미에는 요리코의 살인, 그리고 유지의 범행에 관해서는 전혀 아는 바가 없다고 한다. 오로지 침대에서만 가정부에 의지하여 살아가는 상황이니 방 밖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 수 없는 것은 타당한 것처럼 보여진다. 더구나 유지가 죽인 범인은 이전에도 학교에서 학생에게 몹쓸 짓을 저지른 이력과 과거 그의 약혼녀에게 들은 범인의 부적절한 처신 등이 드러나면서 그가 요리코를 임신시키고 결국 살해했다는 유지의 추리에 더욱 심증을 갖게 된다. 이대로라면 결국 유지의 수기는 사실인 것처럼 보여진다.
하지만 노리즈키 린타로는 수기의 내용 중 몇 가지 오류에 주목하게 된다. 스포가 될 수 있기에 구체적으로 언급할 수 없지만, 사건의 흐름과는 크게 관련이 없는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들이기에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던 부분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러한 오류와 함께 죽기 전의 요리코의 행적과 이 사건과는 별개로 니시무라 일가에게 닥친 14년 전의 교통사고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나면서 이들 가족에 벌어진 비극의 실체가 점점 드러나게 된다. 린타로는 결국 사건의 진실을 파악하고 의식을 되찾은 니시무라 유지와의 대화를 통하여 그것이 사실임을 확인하게 된다.
앞서 [요리코를 위해]가 가족의 비극을 다뤘다고 했는데, 그 비극은 단순히 요리코의 죽음과 유지의 복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마지막에 등장하는 반전을 통하여 드러나게 된다. 처음에는 유지의 수기에 쓰여진 내용이 사실이냐 거짓이냐에 대한 진실게임이 주요 얼개라고 생각했기에 그것이 밝혀지며 이야기가 끝났구나라는 생각이 들 즈음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충격적인 반전이야말로 이들 일가의 진정한 비극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더구나 이들 가족의 비극은 솔직히 현실적으로 그럴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소 비정상적이라고 느껴지지만, 14년 전 교통사고로 인하여 이들 가족이 받은 충격을 감안한다면 작가의 그러한 설정도 어느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일반적인 정서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허를 찔렸다는 생각이 든다. 추리소설 작가가 점점 독자가 쉽게 예측할 수 없는 반전과 결말을 만드는 것에 몰두하고 있음을 감안한다면 독자 역시 상식을 뛰어넘는 추리를 할 수 있어야 그들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음을 이 작품이 다시 한 번 느끼게 해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