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 앞에서 개인의 존재감이 너무 미약해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어왔다. 특히 히틀러의 집권과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시기의 독일이 그 배경이라면 아마도 더욱 그러할 것이다. 독재자의 출현과 거대한 전쟁 속에서 생명은 물론이거니와 사랑, 우정과 같은 개인의 감정은 극도로 배제되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였다. 그러한 점에서 프레드 울만의 <동급생>은 이러한 편견을 극복하는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애초에 이 책이 이미 언급한 거대한 역사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개인의 우정을 다룬 작품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일반적인 전개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진행되어서 출간 이후 나중에 오히려 재평가가 이루어진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장편이 아니라는 분량적인 측면 때문이었을까? 이야기는 분명 히틀러의 집권과 더불어 점점 2차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시점을 배경으로 하고 있건만 이러한 배경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없이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에 대하여 이야기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한스가 다니던 학교로 전학을 온 콘라딘에 대한 한스의 경외감은 마치 <빨강머리 앤>의 앤 셜리가 다이애나 베리와 친구가 되기를 열망하던 분위기를 엿볼 수 있게 된다. 백작 가문 출신이면서 동시에 한스가 그토록 관심있어 하던 호엔펠스 집안 출신의 콘라딘에 대하여 한스는 어떻게든 그와 친구가 되기를 고대하면서 나름의 열병을 앓게 된다. 콘라딘이 한스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면서 학교에서 유일한 친구가 되는 순간은 앤 셜리와 다이애나가 흐르는 시냇물 앞에서 맹세를 했던 장면을 떠올릴 정도이다.
<동급생>은 제목처럼 한스와 콘라딘의 우정의 형성 과정을 주된 내용으로 삼고 있다. 하지만, <빨강머리 앤>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를 심어준다. 당시 시대를 감안하였을 때, 나중에 비극으로 흘러가리라 예상되는 장치가 이야기의 초반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한스는 동네에서 저명한 의사를 아버지로 두고 있는 유대인 출신이었고, 콘라딘은 독일의 명망있는 귀족 가문이었기 때문이다. 아마 역사적인 상황을 배경으로 직접 내세웠다면 이내 이 작품은 곧바로 두 소년의 우정이 아니라 시대의 비극을 먼저 떠올릴 수 있겠지만, 두 소년의 관점에 따라 진행되는 이야기는 밝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그들이 살고 있던 슈바벤 지방이 베를린에서 멀리 떨어져있던 지역이었기에 당시의 심각한 분위기가 곧바로 영향을 끼치고 있지 않음을 은연중에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인 프레드 울만이 마치 자신의 회고록인 것처럼 나치의 박해를 피하여 떠나온 슈투트가르트의 향수를 배경으로 삼고 있었기에 두 소년의 우정은 그러한 지역의 아름다움과 더불어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시를 통하여 아름답게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은 한스와 콘라딘 뿐만 아니라 읽는 이로 하여금 당시의 무거운 시대적 분위기를 전혀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시적으로 전개된다. 횔덜린이 슈바벤 지방의 튀링겐과 연관이 있는만큼 저자는 자신의 향수를 은연중 횔덜린의 시를 통하여 내비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역시 역사적인 소용돌이는 쉽게 비켜갈 수 없음이 이야기의 후반부에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유대인을 극도로 싫어하는 어머니의 존재로 인하여 콘라딘이 자신의 친구인 한스를 어머니에게 소개할 수 없는 상황은 둘의 관계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는 것을 암시하면서 프로이센 출신의 역사 교사의 등장으로 이야기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그의 등장은 그동안 나치의 정책에 노출되지 않았던 슈바벤 지방 역시 히틀러를 지도자로 숭배하기 시작하였음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결국 <동급생>의 마지막은 한스와 콘라딘의 아름다운 우정도 역사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질 수 밖에 없는 비극적인 상황을 잔잔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동급생>은 짧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비극적인 상황과 더불어 두 소년의 아름다운 우정을 극적으로 잘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라 생각이 든다. 처음 언급한 것처럼 시대적인 흐름을 오히려 나중에 배치함으로써 개인의 존재감이 결코 작은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과 더불어 저자의 고향에 대한 향수가 두 소년의 우정을 쌓는 과정 곳곳에서 느낄 수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 아닐까 생각된다. 또한 마지막에는 결국 상황에 굴복하여 우정이 산산조각난 것처럼 보이지만, 마지막의 단 한줄로 인하여 극적인 반전을 이끌어냈다는 점은 단편 소설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또한 좀더 들여다본다면 책 속의 인물들을 통하여 거꾸로 당시의 상황을 유추할 수 있는 부분이 다양하게 등장하고 있기 때문에 가볍게 읽을만한 책이 아님을 느끼게 된다.
근원 가까이에 깃들인 것은 그곳을 떠나길 꺼려하는 법이니
- p. 139 : 횔덜린의 시 [방랑]의 일부 -
실제 저자는 독일을 탈출하여 결국 영국에 정착하여 거기에서 삶을 마감하였다고 한다. 콘라딘이 떠나는 한스에게 보낸 편지 중 인용된 횔덜린의 시와 같이 고향에 대한 향수와 더불어 그가 떠날 수 밖에 없는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이 바로 프레드 울만으로 하여금 <동급생>을 쓸 수 있게 하였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아름다운 우정 이야기 너머에서 느낄 수 있는 저자의 향수와 역사의 거대한 소용돌이를 이상하리만큼 잔잔하게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바로 <동급생>의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