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 만 100세의 철학자 김형석 어르신의 에세이집이다.
철학자의 에세이라길래 철학적이고 조금은 난해한 내용일거라 예상했는데
정말 한없이 담백하고 쉽게 읽히는 수필이었다. 에세이가 수필이고 수필이 에세이겠지만 왠지 수필이란 단어가 어울렸다.
요즘 에세이집들이라면 보통은 재밌고 위트있으면서도 힙한 문장에 밑줄치고 책장을 접어놓고 싶게 쓰는게 공식이고, 힘든 일상에 앓는 소리와 그 고단함에 맞서는 정신승리를 독려하기도 하는데….
이 책은 100년을 오로지 소박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분의 충만함으로 가득차 있다. 다른 이였으면 자랑하고도 남을 만한 그의 삶에 대한 철학과 학문적 성과에 대한 플렉스도 거의 없다.
그야말로 잔잔하다.
하지만 너무 부럽다. 나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 저런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수십개의 챕터마다 반복된다.
최근 일이년 간의 일상글로 시작해서 일제시대와 이승만, 군부독재시대 등을 온몸으로 겪어온 격랑의 지난날에 대한 이야기도 있지만 신비롭게도 그 텐션이 일상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최근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집콕생활에 대한 단상까지 이어진다.
그는 매일 아침 6시 반, 토스트 반 조각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놀랍게도 하루 30분 주 3회씩 수영을 하기도 하고 창문 밖으로 넘실대는 구름을 보며 소박한 즐거움을 느낀다. 20년간 연희동 숲길을 산책하며 산지기가 다 되었다. 먼저 떠나보낸 강아지 또순이의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고유명사부터 잊기 시작하는 건망증, 용돈과 생활비 문제, 건강관리 등 노년의 일상도 읽을 수 있다.
내 선배인 C교수는 아들에게 연세대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자기가 어느 교수의 아들이라는 말은 절대 안 하기로 약속을 받았다. C교수는 아들이 사사로운 대우를 받지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나도 아들딸이 연세대학교를 다녔다. C교수와 같이 두애에게 아버지가 누구라는 것은 말하지 않도록 했다. 후배교수나 조교들에게 수강생 중에 우리 애가 끼어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학생들은 실력을 공정히 평가받고 자기 위상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또 그런 자세가 젊은이다운 기상이 된다.
너 늙어봤냐, 난 젊어봤다는 노래가 있듯이 너 100세까지 살아봤냐, 난 100세까지 경험했다는 생각을 해본다. 30대까지는 건전한 교육을 받는 기간이다. 60대 중반까지는 직장과 더불어 일하는 기간이다. 60대 중반부터 90까지는 열매를 맺어 사회에 혜택을 주는 더 소중한 기간이다. 누구나 그렇게 살아야 할 것이라고 믿는다.
사실 이 책의 글들이 조선일보의 주말섹션에 연재되었던 글이라고 해서 멈칫하기도 했지만 진영논리는 거의 없었고 그래도 보수적인 내용이 있다고 한다면 아주 모범적인 보수주의자의 전형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