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 자신을 빼닮은 자전적 주인공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주간지 기자로 다양한 기획 기사를 쓰다가 작가로 데뷔.
범죄학, 생물학, 심령술 등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졌고 어렸을 때부터 타고난 이야기꾼이었던 사람.
장르 문학을 하위 문학으로 취급하는 프랑스의 평론가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지만
매년 꾸준한 리듬으로 신간을 발표하여 대중 독자들의 지지를 받는 인기 작가.
이 설명은 『죽음』의 주인공인 가브리엘 웰즈에 대한 것이지만, 베르베르 본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자전적 요소가 강하다.
가브리엘 웰즈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가장 강력한 공통점은 바로 글쓰기를 진심으로 사랑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가브리엘은 <이제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에 안타까워한다.
다양한 인터뷰에서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라고 말해 왔던 베르베르는
가브리엘의 입을 통해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다시 한번 드러낸다.
글쓰기가 나를 구원한다. 이 순간이야말로 내가 진정한 나로서 존재하는 유일한 순간이다. 오직 이 공간에서만큼은 사건을 뒤따라가는 게 아니라,
내가, 그것들을 창조해 낸다.
― 『죽음』 중에서
또 소설 속 여러 등장인물들은 가브리엘의 작품이 지닌 단점을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하는데, 그러한 대목에서는 베르베르가 스스로의 장단점을 나름 객관적으로 파악하고 자조적인 유머로 승화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베르베르가 제시하는 순문학과 장르 문학의 관계
『죽음』의 흥미로운 요소 중 하나는 프랑스 문학계를 엿볼 수 있다는 점이다.
가브리엘에게 적대적인 평론가 장 무아지는 이 작품의 최고 악역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그는 <좋은 문학을 수호해야 한다>라면서 장르 문학 작가들을 배척한다.
<좋은 SF 작가는 죽은 작가>라는 막말까지 서슴지 않는다.
가브리엘을 이승에서 공격하는 장 무아지와 저승에서 공격하는 알랭 로트브리예는
각각 실존 인물인 얀 무아Yann Moix와 알랭 로브그리예Alain Robbe-Grillet를 패러디한 것으로 보인다.
베르베르는 허세 가득한 평론가와 순문학 작가들을 재치 있게 풍자했다.
장 무아지의 소설 『배꼽』은 베르베르의 지난 소설 『잠』에서 주인공 자크가 불면증을 이기기 위해 일부러 고른 지루하기 짝이 없는 소설로 나오기도 했다.
새벽 1시. 혹시 문학이 구세주가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그는 프랑스 문학 중에서 가장 지루한 작품을 고르던 중에 「배꼽」이라는 제목의 작품이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무려 1,500페이지에 이르는 책에서 작가는 자신의 삶이 독특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종종 한 페이지가 넘는 긴 문장을 쓰고 있다. 작가의 재주 덕에 눈이 따끔따끔하면서 잠시 비몽사몽의 상태를 헤맨다. 눈꺼풀이 내려 붙는 사이, 그는 완벽한 권태의 순간에 찾아오는 달콤한 현기증을 경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