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아빠를 따라 이발소에 갈 때마다 피대에서 왔다갔다 하는 날카로운 칼이 무서웠던 기억이 난다. 이발이 끝나면 턱에 거품을 바르고 그 날카로운 칼로 면도를 시작하면 아빠 옆에서 긴장한 상태로 서 있었다. 혹시나 아빠 얼굴에 피가 나는건 아닌지 어린 마음에 칼이 얼굴에 닿는게 싫었다.
남자들도 대부분 미용실을 이용해서 그런지 요즘은 그런 이발소를 찾아보기 어렵다. 가끔 TV프로그램에서 삭발 벌칙을 받을 때 이발소를 찾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럴 때마다 아빠와의 추억이 몽글몽글 떠오른다.
한주리저자가 사라져가는 이발소를 그림으로 남긴 '만리동 이발소'는 리모델링 되기 전의 모습을 그대로 담고 있다. 이발사님의 루틴과 손님들, 이발소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들을 정겹게 만날 수 있다. 부모님 세대들이 읽으면 자녀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을 것 같다. 아이들이 읽으면 어른들에게 묻고 싶은 게 많을 것 같다. 책을 통해 다른 세대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책이라 더 좋다. 이발소 이야기에서 시작하지만 지금껏 살아온 삶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책이다. 그림이 따뜻하고,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어서 이발소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이발소를 찾는 사람들의 표정마저도 따뜻하다.
책을 읽고 있으니 이발소를 나올 때 아빠에게서 났던 식초 한방울의 시큼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안정성의 문제로 리모델링되었다고 하는데 지금의 모습이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하다. 100년을 넘어 앞으로도 쭉 많은 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직접 가보지 못하더라도 TV에서 만나면 너무 반가울 것 같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무상으로 제공받아 솔직하게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