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하면 대부분 서양화가가 떠오르고 그동안 읽는 책 역시 그렇다. 작년 한국에 있는 미술관 관련 책을 읽으면서 국내에도 서양 못지 않게 천재 화가들이 존재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익히 들어온 인물도 있었지만 근대사는 거의 모른 거나 마찬가지여서 미술관 책을 보면서 국내 화가에 관심을 갖지 않은 것이 부끄러웠다. 한편으론 너무 유럽과 서양 화가와 작품에 익숙하다보니 때론 한국 작품이 쉽게 다가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보니 더 접근성이 떨어지는 거 같은데 미술 작품을 볼 때 그저 색채와 묘사가 아닌 왜 그 그림을 그리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고나면 작품을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오늘 만난 [살롱 드 경성]은 전체 작품을 다 이해했다기 보단 화가와 생애 그리고 그가 남긴 작품을 통해 무엇이 있고 느껴야 하는지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책은 화가들 뿐만 아니라 시인도 같이 소개를 하는 데 시인 '이상'은 이름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된 인물이다. 또한, 처음 듣는 화가들도 등장하는 데 안타까운 건 일제침략이 없었다면 국내 화가들이 흔적이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고, 6.25 전쟁이 아니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소문도 없이 생을 마치지 않을 수도 있는 화가들로 마음 한 구석이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해방 후 많은 지식인이 월북을 했고 남한에 남아있던 가족에게 유산을 남겨주어 그나마 화가의 유품이 남기도 했다. 사형과 숙청, 공장 노동자, 인쇄공, 고물상 등 정말 천재 화가들의 말년은 참혹했으며 문득 그들은 그 순간에 무엇을 생각했을까. 사람의 생명이 이렇게 한 순간에 흩어져 버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한국 화가 하면 이중섭을 익히 들었고 그가 그린 소 그림은 여전히 봐도 쉽게 다가오지 않지만 그의 생애와 가족 사랑은 작품보다 더 많이 들었다. 이중섭이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한 백남순과 임용련 부부는 1920년대 미국과 유럽에서 공부를 한 화가로 당시엔 화제였다. 나 역시 책을 통해 알게 되었고 유럽을 가는 것 조차 힘들었을 테니깐 말이다. 한국의 아픈 역사 속에 있던 사람들 누군가는 생의 마지막을 모르기도 하지만 어떤 이는 사는 동안 작품이 팔리고 이름을 남겨지기도 했다. 또한, 그의 자녀들이 화가의 기업(?)을 이어가듯 현재 관련 일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뿌듯하지 않을까 하다. 더 나아가 남성 화가 뿐만 아니라 여성 화가 역시 기록에 남겨져 있는 데 운보 김기창의 아내이면서 화가인 박래현의 삶은 당차다. 1946년에 김기창과 박래현은 결혼을 했는데 당시 김기창은 청각장애를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결혼을 선택한 것은 유학까지 다녀온 신여성으로 예술가와 결혼하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생각에 결혼했고 이 역시 조건에 걸었다. 이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화가로서 삶을 시작한 두 사람..여기서 주목할 것은 박래현은 확실히 남편 내조를 하면서 저녁엔 작품 활동을 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너무 열심히 살았던 것일까?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지만 결국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이다. 김기창에게 박래현은 단순히 아내가 아니었다. 자신의 목숨을 주면서까지 아내를 살리고 싶었던 그 마음이 책 속에서 간절하게 느껴지는 데 아내가 떠난 후 전시회를 열면서 그녀의 작품을 세상에 알리려고 노력했다. 책 속에서 소개된 작품은 한국적이면서도 아닌 듯해 독특하기만 하다. 어릴 적 부터 그림 재주가 뛰어났지만 화가의 길 대신 법대를 선택했던 이대원. 그가 열두 살 때 그린 유화 그림은 어린아이가 그린 것이라고 믿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세계대전이 극에 달할 때 학도병으로 끌려갔고 해방 후엔 6.25전쟁을 겪게 되면서 점점 황폐해지면 자살까지 갔었지만 '그림'으로 다시 힘을 얻어 84세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그림을 그렸다. 예술가로서 사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살롱 드 경성]을 읽으면서 미술이 무엇인가...곰곰히 생각하는 시간이 많았고 동시에 서양 못지 않게 국내에도 오랫동안 남겨질 미술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부분이 뿌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국내 미술 작품에 대해선 문외한인데 이건 관심이 차이다. 그동안 너무 국외 작품만(책을 통해) 접했는 데 이제는 국내 작품을 찾아서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방 제비는 그저 다방이 아니었다. 미술관도 음악당도 거의 없던 시절,
경성의 다방은 대로 음악회가 열리고 미술 전시회도 열리는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