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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건지 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메리 앤 섀퍼,애니 배로스 공저/신선해 역
이덴슬리벨(EAT&SLEEPWELL) | 2018년 07월

 

 

저에 대해 알고 싶다고 하셔서 서포크의 베리세인트에드먼즈 근처 세인트힐다 사이먼 심플리스 목사님께 추천서를 부탁해두었습니다. 제가 꼬마일 때부터 알던 분이고 절 좋아하세요. 레이디 벨라 톤턴에게도 추천서를 부탁했어요. 독일군 대공습 때 소방 감시원으로 같이 일한 동료인데, 진심으로 저를 싫어하죠. 이 두 분이 하는 말을 종합해보면 제가 어떤 사람인지 객관적인 그림을 그리실 수 있을 거에요.

제가 쓴 앤 브론테 전기를 함께 보냅니다. 제가 다른 종류의 글도 쓸 수 있다는 걸 보여드리고 싶어서요. 그리 잘 팔리진 않은 책입니다. 사실 전혀 안 팔렸죠. 그래도 저는 <<이지 비커스태프, 전장에 가다>>보다 이 책이 훨씬 자랑스러워요.

제 의도에 확신을 심어드리기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주저 말고 말씀해주세요.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64쪽, 줄리엣이 아멜리아에게)

 


 

줄리엣은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의 눈이 참새를 지키시네'라는 가사를 쓰지 말았어야 해요. 그게 무슨 소용이에요? 그래서 하느님은 새가 떨어져 죽는걸 막아주셨나요? 그냥 '아이쿠!'하고 놀라시고는 끝 아니에요? 가사를 보면 하느님은 참새를 보러 가고 없잖아요, 정작 사람들은 하느님을 찾고 있는데."

이 문제에선 저도 줄리엣의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 진작 그런 생각을 못했을까요? 그 후 성가대는 '그의 눈이 참새를 지키시네'를 부르지 않았습니다.

줄리엣의 부모는 그녀가 열두 살때 돌아가셨습니다.

(74쪽, 사이먼 심플리스 목사가 아멜리아에게)

 


 

우리 문학회 이름에 '감자껍질파이'가 들어간 건 윌 시스비 때문이에요. 그는 먹을게 없는 모임에는 결코 가지 않아요. 독일군이 오라고 해도 거절할걸요! 그래서 우리 모임에 다과가 추가 되었지요. 당시 건지섬에는 버터와 밀가루가 부족하고 설탕은 아예 없었기 때문에 윌이 감자껍질파이를 만들었어요.

(82쪽, 아멜리아가 줄리엣에게 )

 


 

어쨋든 책이 제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알고 싶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아까도 밝혔듯이 저에게 책은 단 한권입니다. 세네카 말입니다. 그를 아십니까? 가상의 친구들에게 편지를 써서 여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를 설파한 로마 시대의 철학자입니다. 역시 지루할 것 같지요? 하지만 그의 편지는 결코 지루하지 않습니다. 재기 발랄하지요. 글을 읽으며 웃을 수 있다면 더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139쪽, 존 부커가 줄리엣에게)

저는 문학회 모임을 무척 아낍니다. 점령기 시절을 견딜 힘을 그곳에서 얻었으니까요. 모임에서 안 몇몇 책도 괜찮은것 같았지만 저는 늘 세네카에게만 충실했습니다. 마치 그가 저에게 말을 거는 것 같았어요. 특유의 재치있고 신랄한 말투로요. 오직 저에게만 말하는 듯했지요. 세네카의 편지들 덕에 저는 훗날 겪어야 한 모든 일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요즘도 문학회 모임은 빠지지 않고 나갑니다. 모두 세네카라면 진저리를 치고 저더러 제발 다른 걸 읽으라고 애원하지만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저는 아마추어 극단에서 연기도 합니다. 토비어스 경 행세를 하면서 연기의 맛을 알았지요. (...) 전쟁이 끝나서 정말 행복합니다. 이제 저는 다시 존 부커로 돌아왔습니다. 

(144쪽, 존 부커가 줄리엣에게)

 


 

"그 사람은 어떻게 생겼죠?"

그 모습을 속으로 그려보고 싶어서 물어보긴 했지만 대답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어요. 남자들은 다른 남자를 묘사하는데 영 꽝이잖아요. 하지만 도시는 달랐어요.

"당신이 상상하는 독일인과 비슷할 거예요. 키가 크고 금발이고 눈동자는 푸른색인. 다만 그는 고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었지요."

(256쪽, 줄리엣이 시드니에게)

 

 


 

엘리자베스는 소년을 간호했어. 약을 구할 순 없었지만 대신 암시장에서 국거리용 뼈와 진짜 빵을 구해 왔어. 나에겐 달걀이 있었고. 매일매일 조금씩, 그 애는 기력을 회복했어. 잠을 많이 자더군. 가끔 엘리자베스가 밤에, 하지만 통금시간 전에 찾아왔어. 누그든 그녀가 우리 집에 너무 자주 들른다는 걸 눈치 채면 안되니까. 아무리 이웃이라도 밀고할 일이 있으면 밀고하던 시절이었어. 왜 있잖나, 독일군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아니면 먹을 것이라도 얻을까 싶어서.

그렇게 조심했는데도 누군가가 눈치를 챘고, 밀고도 했지. 누군지는 몰라.

(...) 우리는 재판도 없이 바로 다음 날 생말로로 향하는 배에 올라타야했어. 거기서 마지막으로 엘리자베스를 봤어. 간수 한명이 그녀를 끌고 배에 태우더라고. 엘리자베스는 몹시 추워 보였어. 프랑스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보이지 않았어. 어디로 보내졌는지도 알 수 없었지.

(332-333쪽, 줄리엣이 시드니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없었어요. 그저 속으로만 엘리자베스가 몇 주만 더 버텼더라면 이곳으로 돌아와 킷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했죠. 어째서, 도대체 어째서, 전쟁의 종말이 그토록 가까이 있었는데 왜 그때 감시관에게 덤볐을까요?

레미는 바다가 파도를 들이마시고 내쉬는 걸 바라보았어요. 그리고 말했어요.

"그런 용기가 없는 편이 엘리자베스에겐 더 나았을 텐데."

그래요, 하지만 우리 모두에겐 더 나쁜 일이었겠죠.

그때 파도가 밀려왔어요. 환호와 비명, 그리고 모래성은 사라졌어요.

(339쪽, 줄리엣이 시드니에게)

 


 

놀랐어요? 아마 아니겠죠. 하지만 나는 놀랐어요. 요즘은 끊임없는 놀라움의 연속이에요. 약혼한 지 딱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내 삶 전체가 그 스물네 시간 안에 녹아든 것 같아요. 생각해봐요! 우리는 서로를 원하면서도 '영원히' 서로 눈치 채지 못한 척 세월만 흘려보냈을지도 모르잖아요. 체면에 대한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다가는 인생을 망칠 수도 있다고요.

(426쪽, 줄리엣이 시드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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