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단 죄송하다는 말로 시작해야 할 듯. 당연히 작가님이 여자분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런 정보가 없었던 터라, 엄마의 글쓰기를 쓸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엄마일 거라 생각했다. 책을 펼치자마자 아빠라고?! 놀라면서 호기심에 책을 읽기 시작했다. 어떤 아빠이기에 엄마의 글쓰기를 이끌 수 있을까? 작가라는 직업적 여유(?)로 다른 아빠들에 비해 많은 시간을 육아에 할당하시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아예 전업주부를 자청한 육아빠였다. 이해가 된다. 엄마들에게 이런 저런 조언을 해줄 수 있는 같은 상황이다. 그래서 책 구석 구석에서 엄마든 아빠든 상관없이 육아 담당자라면 이해할만한 많은 이야기들이 있었다.
요즘 조금씩 내 글을 쓰겠다고 끄적이고 있는 시기라, 도움을 좀 받아볼까 싶은 생각에 신청했다. 사실 한동안 글쓰기 책이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아서 멀리했다. 그러다 힘이 좀 필요한 것 같아 신청했는데, 뜻밖의 방향으로 많은 도움을 얻었다. 각 장은 <글선생의 수다>, <글쓰기 특강>과 부록처럼 <글쓰기 처방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글선생의 수다> 부분은 저자의 에세이 형식의 이야기이다. 글쓰기를 전공하신 것도 아닌데 글을 이렇게 구구절절 마음을 저릿저릿하게 쓸 수 있다니. 역시 글이란 재능인가?! 배운다고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연한가 싶기도 하고. 책을 읽기 시작하니, 나의 처량한 모습이 안타깝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했다. 우리의 모습을 이리도 잘 알며 구절 구절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니. 동질감이라기 보다는 한 발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봐주는 듯한 그 느낌에 더 마음이 저렸다.
어쩌면 이 책을 읽으면서 많은 엄마들이 공감 받는 기분을 느낀다면, 마음이 따뜻해진다면 그건 대리만족일지도 모른다. 많은 엄마들이 이리 고민하며, 열심히 하루 하루를 살아내고 있음을 알아줬으면 하는 주체는 주로 신랑이다. 신랑에게서 직접 인정과 공감을 받을 수 있다면 가장 좋겠지만, 받을 수 없는 인정을 저자가 해주는 느낌이다. 대리 만족이다. 자신이 임신과 출산을 하지 않아서 완벽하게 엄마를 이해할 순 없지만, 아이 셋을 돌보면서 고군분투하는 시간 동안 자신도 이런데 엄마들은 더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이 책을 썼다. 저자의 그런 마음이 전해졌다. 그 마음과 나의 마음이 이 책을 매개로 이어진다. 나 또한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했다.
글쓰기 특강에서는 글을 쓸 수 있는, 아니 단지 끄적일 수 있는 여러 시도들을 제공한다. 단 5분이라도 자신의 손을 움직여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일상들을 끄집어 낼 수 있도록 도와준다. 하나 하나가 유용하고 재밌다. 특히 여기서 저자가 제시한 글쓰기 방식이 일상에서, 흔히 엄마들이 일상적으로 반복되는 모습이라 별로 감흥이 없는데 그 안에서 어떻게 멋진 글을 빼낼 수 있는지 그 면모를 보여주었다. 저자의 글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읽으면서 잘 쓴다는 건 이런 거구나, 감탄했다. 읽으면서 내가 쓴 글은 글이 아니구나 싶어서 의기소침하다가 좌절까지. 글은 이런 사람들이 쓰는 거구나... 너무 글을 잘 쓰는 분들이 쓴 글쓰기 책의 부작용 ㅋㅋㅋㅋ
- 욕심을 버리자 : 자신이 소비하는 글과 생산하는 글의 괴리를 인정하라. 책을 즐기는 사람일수록 글을 쓰지 못하는데 이는 눈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글은 고뇌의 결과이지만 책은 자본이 투입된 상품이다. (56)
- 공식이나 요령은 없다. “이 글이 흥미롭고 다음 내용이 궁금한가?” 끝없이 자문하라. (103)
글 쓸 때 내가 좀 더 신경 써야 할 부분들이었다. 욕심을 버리라 한다. 본인의 글에 좌절하고 있는 내게,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욕심을 버리는 일이었다. 내가 단번에 저자의 글만큼 잘 쓸 수는 없다. 저자가 강조하는 글을 쓰기 위한 감수성도, 일상을 관찰하는 힘도, 내 생각을 바로 바로 메모하여 풀어 내는 힘도 아직 내게는 없다. 그러니 마음을 비워야 한다. 그저 저자가 제시한 질문을 지속적으로 염두하는 수 밖에. ‘이 글이 흥미롭고 사람들이 궁금해할까?’ 솔직히 이게 나에게 가장 큰 부담이다. 글을 썼다 하면 너무 진지하고, 어둡게 쓰는 지라 사람들이 읽다가 지치지 않을까 걱정한다. 모든 글이 유쾌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무겁더라도 그 맥락은 같으리라.
여느 글쓰기 책들과 다른 점이라면 우리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몹시 구체적이다. 그 이유들이 다 너무 와 닿으면서도 ‘그래, 글 쓰기란 이런 거지’ 하며 감탄하게 만들었다.
- 글쓰기를 통해 내가 어떤 존재인지, 나와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쓰지 않고는 분명하게 알지 못합니다. 정확한 단어를 고른 뒤 뜻이 통하도록 문장을 빚어내야만 비로소 생각과 감정이 명쾌해지니까요. 무엇이든 글로 써야 오롯이 내 것이 됩니다. 일주일, 한 달, 일 년, 십 년, 심지어 인생을 두고도 마찬가지입니다. 글에 녹여두지 못한다면 한순간도 내 것이 되지 않습니다. (6)
글을 쓴다는 건 나를 알아 가는 것. 사실 글쓰기를 강조하는 책들은 보통 다 이 논점에서 설명한다. 자아실현을 위한 글쓰기와 책쓰기. 이는 너무 마르고 닳도록 들어서 크게 감흥이 없다. 이런 논지로 글을 계속 썼으면 아마 실망했을 것이다. 이전의 책들과 다를 게 없으니까.
- 사소했던 일들이 이제는 전혀 다른 의미를 안겨 줍니다. 덮어두고 살았다면 아까웠을 소중한 경험들이 지금의 나를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이처럼 꾸밈없이 자신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하다 보면 결국 우리는 자신을 사랑하게 됩니다. 가진 것이 모자라고 재주가 못마땅해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지요. (69)
우리는 글을 쓰며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그게 나라는 걸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이래도 나고, 저래도 나다. 글을 쓰면서 담담히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글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인정하는 과정이니까.
- 시시때때로 달라지는 생각과 감정을 아까워하세요. 문장에 담아 인생의 한 조각으로 새기세요. 바로 거기에 내 삶이 있습니다. (76)
순간 순간 느낀 내 감정과 생각을 귀하게 여길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사람들도 떠올릴 수 있는 생각인지 몰라도, 그걸 내 것으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순간 이미 그 사항들이 내 안에서 큰 역할을 한다. 그리고 표면화 시키는 과정인 글쓰기를 통해 나를 귀하게 여길 수 있게 된다. 스쳐 지나가는 감정과 찰나의 깨달음을 온전히 쌓고 쌓아 그 어떤 고전 문학보다 멋진 나만의 대서사를 쓸 수 있게 된다.
- 왜 글을 쓰시려 하나요? 놓쳐왔던 일상의 행복을 되찾기 위해서 아닌가요? 나를 둘러싼 수많은 관계와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나만의 철학과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서 아닌가요? 내 삶의 주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깨닫기 위해서 아닌가요? 그러니 내 이야기, 내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이 글감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삶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172-173)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어떤 이유에서든, 그 결론은 결국 행복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나 자신의 행복, 내 주변인 가정의 행복, 궁극적으로는 모두의 행복. 그 기준점이 나다. 내가 잘 살아야 주변을 돌볼 수 있다. 내가 나를 알아야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그렇기에 내 주변이 글감이 되고, 내 삶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충분하다. 우리 모두가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 세상 모든 것들은 연결되어 있습니다. 글 속에서 인연을 맺어주세요. (139)
-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 그것이 바로 글쓰기이고 그래야 내 삶이 됩니다. (19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http://blog.yes24.com/blog/blogMain.aspx?blogid=reviewer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