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고십 휘연님의 질문
1. 완벽한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단체 안에서 나 자신이 되어 개인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가?
2. 깨달음과 성찰을 위해 고통이나 고독은 필수적인 요소인가?
1. 완벽한 개인의 자유를 위해서라면 무조건 단체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인가?
단체 안에서 나 자신이 되어 개인으로 존재할 수는 없는가?
책에서도 말한다. "우리는 자신을 찾는데에 있어서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고립시키지않는다." (p.32) 고.
그뿐아니라 엄연히 말하자면 우리를 단체에서 배제하고는 사실 생활이 영위되지않는다.
우리가 말하는 자유가 무엇일까? 정말 내가 하고 싶은데로 하고, 먹고, 싸고.. 그것만이 자유일까?
가장 중요한 자유는 나의 의지에서 온다.
이 말 자체에 정답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나의 의지에 따라 단체 안에서든 밖에서든 나의 자유는 내가 만드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때로는 단체이기도 하고, 때로는 개인이기도 하다고.
회사라는 단체 안에서 나는 종종 환멸을 느끼기도 하고, 타인과의 이상적인 관계라는 생각도 해본다.
쉽게 말하자면 이거다.
이해관계자 집단으로 이루어진 회사에서는 "나와의 관계"보다는 "이익관계"가 우선된다.
그런 점은 환멸이 되기도 하고 이상적이라는 느낌이 되기도 한다.
이 부분을 잘 생각하면 자유와도 밀접히 연관지을 수 있다.
어느 점에서는 단체에 속에서의 제약이 있겠지만
그 안에서 의지를, 나의 생각을 펼치고 말고는 나에게 달려있다는 것이다.
비록 단체안에서 나는 몸의 자유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생각하기에 따라 생각의 자유를 얻을 수는 있을 것이다.
이 간단한 이론을 왜 이렇게 대답할까.
이제야 해골물의 지혜를 깨달았던 부족함을 마음껏 뽑낸다.
2. 깨달음과 성찰을 위해 고통이나 고독은 필수적인 요소인가?
솔직하게 이야기하자면 나는 짤막한 고독의 시간을 갈망한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나는 사실 한순간도 혼자있기 어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도 내내 누군가와 붙어 일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등에 매달려 행복해하는 어린아이가 있다.
그래서 가끔 혼자 있게 되는 짧은 순간이 오면 그렇게 좋더라.
종종 회사에서 밥을 먹은 후 혼자 공원을 한바퀴돈다.
그 시간동안 나는 머리와 입과 표정과 마음과 기타등등을 쉬고
머릿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하고 정리하게 된다.
결국 고독이 없이는 쉬이 생각하고 정리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선조들이 화장실을 "해우소"라고 부른 까닭도 거기서 오는 것 아니겠는가.
철저히 혼자있는 곳이기에 근심을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고통 역시 필요한가?
사실 가급적이면 고통이 없으면 좋으련만,
고통을 통해 깨달음과 성찰을 얻는다는 것에 동의하는 바다.
지난해, 나는 생각지도 않았던 스트레스 상황을 겪게 되었고
그 순간엔 미칠거 같은 시간이었으나
지나고보니 나를 한층 깊게하는, 나로하여금 생각하고 현실을 파악하게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 일을 겪지않았더라면 나는 여전히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있었을테다.
결과적으로 고통도 고독도 필요하다. 분명.
사실 이 책을 읽으며, 일부러 질문을 보지 않으려 애썼다.
질문을 보고나면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 책을 읽게 될까봐 겁이 나서.
책을 읽은 후, 질문을 미리보지 않았음을 다행이라 생각했다.
어쩜 이렇게 고민한 부분을 딱 찝어낸다는 말인가.
정말이지 휘연님의 냉철함은 나를 매번 놀랍게 한다.
종종 일고십에 대해 감사함을 느끼고 표현하고는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며 다시한번 일고십의, 회원님들의 대단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아마 일고십이 아니었다면 이 좋은 책을 읽어내지 못했을테니.
그 점에 대해 깊은 감사와 사랑과, 감동과 기타등등 세상의 모든 좋은 감정을 담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