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선조는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오는 일본군의 소식을 듣자마자 피란을 고민한다. 한양을 지킬 수 없을 것 같으니, 그 중요하다는 종묘사직을 다 두고 떠났다. 그러면서 나라를 지키고, 그 성을 지킬 책임을 다른 장수들에게 떠맡긴다. 왕이 짊어져야 할 책임감을 뜻하지 않게 짊어지게 된 이들은 그렇게도 쉽게 내팽개치고, 도망가고 말았다.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피란을 떠난 선조에게 있는가, 아니면 어쨌든 왕의 명령을 받은 장수들에게 있는가?
이 질문은 사실 이미 답이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자. 간단히 말해보자. 책임이 장수에게 있다 치자. 그럼 전쟁을 이긴 장수는 왕위를 차지해도 되는가? 어린이들 모래싸움인가? 땅따먹기 인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 문제는 사실 고민할 필요도 없는 문제라고 본다. 하지만 휘연이 이 질문을 굳이 한 이유가 있다고 보기에 성실히 응답하고자 한다.
사실 살면서 세상에 무릎 꿇을 일은 얼마든 있다. 하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무릎을 꿇는 순간보다는 꿇고 난 이후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다시 일어설 용기도 필요하고, 다시는 무릎 꿇지 않을 다짐도 필요하지 않은가. 그 점에서 내가 선조가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점을 찾을 수 있겠다. 선조는 다시는 일어날 생각이 없었다. 그대로 주저앉아 바보처럼 살았기 때문이다. 다시 일어날 모색조차 하지 않았다. 그것은 본인만을 포기한 게 아니다. 세상을, 나라를, 백성을, 신하를 다 포기했다. 그래서 그에게는 책임감이 없었을 뿐 아니라 자격 또한 없다.
2. 명의 ‘속국’이었던 조선. 그리고 왜가 쳐들어오자마자 명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명이 하는 대로 해야 했다. 그리고 어떠한 지휘권도 통치권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하고 명이 하자는 대로 따라야 했으며, 심지어 왜와 협상을 할 때도 조선은 배제시킨다. 크게 유린당한 왜에게도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렇게 주체성, 주도권은 타국에게 넘겨졌다. 그 나라에는 주체성이나 자주권이 있는가? 더 중요하게, 현재의 우리들은 자신의 주도권을 잘 지니고 있는가? 어느 순간 자신도 모르게 사라지지 않았는가?
이 질문은 마치 오늘의 나에게 휘연이 날카롭게 던지는 말 같다. 요즘 나는 나의 주도권을 잘 잡고 있냐 생각하면 아니라는 말이 더 먼저 떠오르기 때문이다. 요즘의 난 바람에도 흔들리고, 공기에도 흔들린다. 마치 뿌리가 없는 나무처럼 굴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아닌가. 흔들려도 제 자리에 돌아와야 할 나 아닌가.
휘연의 이 질문은 가슴에 품어두어야겠다. 그래서 내 뿌리가 흔들리는 또 어느 날에 꺼내어 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