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은 쉬운 게 아니다. 쉬워서 하는 게 아니라 어렵지만 그 어려움을 극복하고 깨달을 때 그리고 뭔가 새로운 것을 알아내고 만들었을 때 재미가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다. - 내가 꿈꾸는 과학관
예전에 <진화.멸종.공생>라는 책으로 먼저 만나본 저자인데, 그걸 읽으면서 우리나라 대중적 과학책이 이런 마인드와 이런 포맷을 지향하면 좋을텐데 라는 생각을 했었다. 일단 수준이 대중성을 지향하면서도 하나의 주제를 차근차근 설명하는 게, 때때로 다른 과학서적을 읽을 때 느끼는, '아 이런 건 일반 대중들은 이해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어'라는 식으로 앞뒤 설명을 아예 뭉텅이로 빼버리거나(번역시 빠졌을 수도), 대중서를 지향하면서도 '아니 이렇게 전문적인 용어들로만 가득차서야 어디 알아먹을 수가 있나' 싶게 현학적인 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다정함과 친절함이 묻어나오는 책이었다. 그 책은 한 권의 책이 멸종이라는 범 지구적 생명의 역사에 집중하고 있으므로 수다스럽지는 않았지만, 우주와 생명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들을 제시한다.
이 책은 그 책과는 달리 몇년 동안 신문이나 잡지 같은 곳에 게재한 글들을 모아 엮은 글이다. 보다 최신의 글은 한국일보같은 컬럼을 치고 들어가면 더 업데이트된 정보로 엮은 생각들을 만날 수 있다. 이런 짧은 글들이 좋은 것은 그때 그때 사회 전반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들을 과학적 사고 혹은 한 사람의 과학자로서의 위치에서 견해를 피력하기에 지금 NOW의 현실을 이해하거나 혹은 해석하는 데 참조가 될 수 있다는 점인데, 바로 그 점 때문에 이 책의 가치가 따끈따끈하게 바로 올라온 인터넷 상의 컬럼보다 생생한 현재성이 주는 가치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2년 전의 촛불 정국을 전후해서 흔들리던 우리를 되돌아본다. 그의 글들이 촛불 혁명이 이룩한 정권 교체 이전의 암울한 현실을 타겟으로 하기 때문에 그렇다. 과학과 정치가 무슨 관계냐고? 물론 불확정성의 원리가 정치의 불확정성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고, 우주 탄생의 비밀이 출산율과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한 사람의 과학자가 사고하고 실험하고 과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지고 한 사람의 가장으로 살아나가는 환경을 지배하는 정치는 정서적으로 삶의 질과 깊이에 큰 영향을 준다.
신문에 실릴만한 짧은 글들에게서 그닥 깊이 있는 과학 정보를 기대하지는 않는 것이 좋겠으나, 흥미로운 최신의 짦막한 정보들은 모든 꼭지들마다 하나씩 들어있다. 그런 짦막한 과학적 사실들과 현실적인 이슈 혹은 현대사의 수치스런 당시의 정치 현실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는 방식도 무리 없이 물 흐르듯 흐른다. 정치적 견해를 너무 드러내서 불편하다는 독자의 평도 있다. 그럴 수 있다.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생긴 과학관의 관장인 그는, 과학이 쉽고 재미있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날 과학강연에 다녀온 아이가 아르키메데스가 목욕탕에서 벌떡 일어나 유레카라고 외치던 스토리가 재미있다고 호들갑을 떠는데, 이런 과학자 아버지는 되묻는다. 그래서 부력이 뭔지 알았냐고 물어본다. 그건 얘기 안해주더란다. 아마도 내 생각에는 그걸 얘기 안해주지는 않았고 대충 대충 얘기해서 기억에 남지 않았을 거다. 대충대충 얘기하면 그러니까 납득이 갈만큼 제대로 알려주지 않으면 본질은 까먹고 껍데기만 기억하게 된다. 그래서, 그렇지만, 과학은 어렵지만, 과학은 어려운 것이므로, 그 어려운 것의 본질은 쏙 빼놓고 쉽고 재미있는 파트만 골라 내서 하는 일화 위주의 과학 강연에는 반대하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고개를 끄덕거린다. 어떤 과학자들의 사생활이나 위인전 식의 일생을 알았다고 해서 과학을 알게 되는 건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