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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도서]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저/우석균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남미 문학을 그닥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한줌 손에 꼽히는 몇몇 유명한 책들을 읽은 경험으로 말하면 내 취향과 궁합이 잘 맞는다고나 할까. 언제나 실망시키는 법이 없다. 보르헤스가 그랬고, 마르케스가 그랬고 단편 파도와 나 영문 번역본으로 살짝 시식만 해본 옥타비오 파즈 등이 그랬고, 아직 접해 보지 못했으나 노벨상도 받고 국내에서도 널리 알려진 파블로 네루다, 한달여 전부터 읽기 시작한 책인 영혼의 집 저자 이사벨 아옌데도 이미 좋아하기 시작했다.

열린책들에서 볼라뇨의 작품을 거의 전집 수준으로 번역하고 있고, 국내에 매니아 층도 형성된 듯 하여 오래 전부터 관심이 있었으나 최근에 와서 야 살펴볼 수 있었다. 처음 읽은 책은 《야만스런 탐정들》 인데, (가뜩이나 낯선 이름의) 등장 인물만 대략 백명 정도로 느껴질 만큼 많고, 책도 두꺼워서 읽는데 진을 좀 뺐다. 이렇게 가독성이 안좋고, 인물도 많아 한참 동안 누가 주인공인지, 뭔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헷갈리지만 어느정도 약 절반 정도 지나면 제목에서 암시하듯  독자를 ,끝을 볼수 밖에 없는 탐정의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국내 작가들이 장난인지 진지인지 《후장 사실주의》 라는 패러디 문학 운동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그 소설 《야만스런 탐정들》의 주요 동력인 문학운동 로베르토 볼라뇨의 내장사실주의 에서 왔다. 젊은 내장 사실주의자 두 명이 내장 사실주의를 처음 선도했던, 그러나 지금(그때)는 잊혀진 한 여성 문인을 찾아 나선다. 세계 방방 곳곳에서 이 두 젊은 내장사실주의자를 스치고 지나간 목격자들의 단편적 삶의 편린을 통해 남미인들의 삶과 문화를 비추는《야만스런탐정들》은 스케일의 방대함 때문에 리뷰 쓰기가 엄두가 나지 않는데, 이렇게 좀 멀찍이 떨어져 접근하니 오히려 할 말이 많아지는구나. 지금 생각나는 말들은 아껴 뒀다가 그 책 리뷰쓸때 써야겠다. (그 때까지 할 말이 남아 있으면. )

1천 페이지 가까운 《야만스런탐정들》 과는 달리, 《칠레의 밤》은 훨씬 짧고, 내용 파악하기도 훨씬 수월하다. 앞서 언급한 《 야만스런 탐정들》에서 작가 의 페르소나 격인 두 인물의 성격과 사상을 통해 작가의 저항 정신을 엿보았던 덕에 이 책에서 언급되는 중남미 그 중에서도 칠레의 출간 당시 사정과 문학 의 위치 등에 대한 이해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정의와 

평등과 자유의 물결을 군화발로 짓밟고 구테타로 일어선 군부가 통치하게 된 무수히 많은 나라들 중 하나였을 뿐이라고, 그 때는 공산주의 아니면 군부가 유일한 선택지였다고 주장하는 우리 역사의 비극과 맞닿아 있다. 그래서 살인적 노동과 저임금으로 몰아낸 가난을 군부의 영광으로 돌리고, 어린 공장 노동자들의 젊음과 건강과 피와 땀과 희생과 맞바꾼 정경유착의 순환고리 속에서 왕처럼 군림하며 영원히 국민을 군화밑바닥 밑에 두고 통치하려 했던 독재 시대가 생각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랜 시간 후 독재에 대한 향수로 딸을 뽑아 한 국가의 정치를 무지렁이 개인에게 맡기고 타락시켰던 일과 함께. 지금의 '민주주의'는 그 때 그 독재자가 죽어 봄을 열망했던 시민들을 짓밟고 학살하고 군부의 야만성을 확실히 각인시켰던 그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다.  프랑스 왕당파가 사라지기까지 100년이 걸렸듯,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세력으로 하지만 너무나도 진부한 가치로 보수라는 이름을 더럽히는 독재시대의 잔당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적어도 우리 국민의 반 정도는 안다. 절대 정당화되지 않을 그 야만적 군부를 정당화시킨 건 아이러닉하게도 공산주의였다. 공산주의라는 공포를 공산주의라는 핑계를 자유와 대치하는 프레임으로 만들고, 진정한 민주와 정의에는 공산주의라는 딱지를 붙여 학살하고 권력을 잡은 군부에게 공산주의는 군부를 유지시키는 엔진이자 동력이었다. 그 허구는 아직도 수구 보수 세력의 한결같은 지지대이다. 공산주의를 혐오하는 기득보수들에게 공산주의가 없으면 동력을 잃는다. 혐오의 동력을, 억압할 수 있는 출처와 권리를.

1970 년대 칠레에서는 민주적 절차로 이루어진 합법적 선거로 당선된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가 서구 유럽과 미국, 그리고 자국내 기득권 세력을 불안하게 했다. 바로 사회주의 정당 연합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정권 탈취를 위해서라면 한 도시의 무고한 시민들을 빨갱이라고 뒤집어 씌워 대량 학살을 하고도 그 학살의 정당성을 구데타의 정당성을 (미국 및 서구로으로부터) 인정받는 게 가능한 세상이었는데, 대천조국의 가까이에서 사회주의 정당이 승리했으니, 굶주리는 아이들을 먹이고 학교에 보내는 사회복지제도 등 민중의 지지를 받는 정책들이 결과적으로는 구데타의 빌미가 될 수 밖에. 냉전의 70년대 미국과 서유럽 주도한 이념 전쟁의 맥락에서 헤아려 보면 남미의 쿠테타와 전두환의 쿠데타나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민주적 선거로 당선된 아예대 정권을 무너뜨리고 산티아고를 피바다로 만들어 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피노체트 시대 문학의 타락을 보여준다. 작가의 눈에 비친 칠레 작가들은 저항 문학 조차도 하나의 문학적 쟝르일 뿐이다. 책 속의 문인들은 저항적 정신을 갖지 못했고, 사치스럽고 나른한 문학 모임의 사교계에서 말뿐인 시와 말뿐인 비평으로 뿌리깊은 엘리트 계급의 우월성만을 드러낸다. 더욱이 문학의 가치는 비평가와 문인 사이의 상호 사교적 관계 망을 근간으로 평가되고, 문학 모임은 나른하고 사치스런 사교의 장일 뿐이다. 

우리의 주인공, 가정이 어려워 신부가 되었는데, 문학에 재주가 있어 시와 비평을 끄적거리던 중, 페어웰이라이라는 필명의 비평가와 알게 된다. 칠레 문학 전반에 걸처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비평가와 그는 모종의 딜을 통해 서로의 욕망을 교환하는 듯하지만, 뚜렷이 드러나지는 않는다. 페어웰은 이 젊은 신학도에게 성적으로 매력을 느껴 그의 엉덩이를 더듬는 등의 행동을 표출하는데, 이를 뿌리치지 않는 대가로 데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우연히 알게 된 페어웰에게 자신이 시를 쓴다고 말하자 대농장주인 비평가는 젊은 신부를 자신의 문학 모임에 초대한다. 페어웰의 지지로 이 신부는 하루 아침에 파블로 네루다는 물론 많은 영향력 있는 문인들과 교류하면서 문학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다. 그의 문학은 이들과의 교류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고 필명으로 자신의 시를 찬양하는 비평을 하는 자작극으로 더욱 유명세를 탄다. 

회고록 형식의 소설의 본문 중간중간에 늙다리 청년이라는 환영이 등장하는데, 이 늙다리 청년은 말하자면 시간이 파괴하고 있는 한 떼거리의 칠레 민중 문학을 의미하는 것 같다. 동시에 가난하고 짓밟힌 자들, 군부의 서슬퍼런 칼날에 저항했고, 자신이 피했던 민중의 숨결을 의미하는 거 같기도 하다. 자신이 문학 모임을 하고, 칠레 문학의 영향력 있는 그룹에서 문학적 행위들을 할 때 이 늙다리 청년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말을 걸고, 소리지른다. 이 늙다리 청년은 자신이 국민의 추앙을 받는 위대한 시인 파블로 네루다의 시낭송을 음미할 기회도 없었고, 품격있는 모임에 초대되지도 못했고, 유명한 작가들에 대해서 알지도 못한다. 늙다리 청년의 환영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그것은 일종의 자책감에서 비롯된 것 같기도 하다. 문학계에서 큰 영향력 있는 비평가의 위치에서 자신이 외면한 목소리들에 대한 환영일 수도 있다. 그 늙다리 청년에게 하는 항변들이 이를 시사한다. 

그에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이렇게는 어디에도 다다르지 못한다고. 그에게 말해 주었으면 좋겠어, 공산당 시인들도 내가 우호적인 글을 써주기를 목매고 고대했다고. 나는 우호적인 글을 써주었어. 내가 속삭여 보지, 문명인이 되자고. 하지만 그에게는 들리지 않아


특히 그는 늙다리 청년이 자신을 오프스데이라고 질책하자, 자신이 오프스데이임을 숨기지 않았다고 항변한다. 행동하지 않고 자신의 내면에 천착하는 지식인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시간이 흐르고 아예데가 정권을 잡고 권태에 빠져 있던 어느날, 길거리의 오데임씨와 오이데씨로부터 제안을 받는데, 대교구 연구원이 성당 보존 연구를 위해 유럽의 고성당을 답사하고 성당 보존 방법을 배워올 사람을 찾는데, 그에 대한 적합자를 찾았다는 거다. 오이데와 오데임은 수출입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인데, 이렇게 사람을 소개해주는 에이전시도 겸하고 있다는 거다. 오이데와 오데임은 의뭉스럽고 수상한 인물들로 보인다.


유럽의 유서깊은 성당들을 다니며 비둘기 쫓는 방법 등을 전수받고 연구하고 돌아온 신부는 아예데를 지지한 군장성이 암살당하면서 일련의 쿠테타가 진행되는 상황을 목격한다.


정부는 처음에는 구리를, 그 후에는 초석과 철을 국유화하고, 파블로 네루다는 노벨상을 받고, 디아스 카사누에바는 칠레 문학상을 받고, 피델 카스트로가 칠레를 방문해서 많은 사람들이 그가 이곳에 영원히 눌러앉을 거라고 믿고, 기독교민주당 전 정권에서 장관을 지낸 페레스 수코비치가 암살되고,..

물자 부족, 인플레, 암시장, 음식을 구하기 위한 기나긴 행렬이 발생하고, 농지 개혁으로 페어웰의 농장을 비롯한 수많은 농장이 수용되고, 정부에 여성청이 생기고, 아옌데가 멕시코를 방문하고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 참석하고, 칠레에 테러가 이어지고,....그 후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고, 모네다를 폭격하고, 폭격이 그친 후 대통령이 자살하고, 모든 것이 끝났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당시 미국과 서방에서는 아옌데가 두번째로 집권하며 토지 개혁 등의 개혁을 단행하고 칠레의 단물을 쪽쪽 빨아먹던 다국적 기업들을 몰아내고 구리 광산 등을 국영화하자, 치밀한 방법으로 칠레의 경제를 마비시켰다고 한다. 주요 구리 수출국인 칠레의 경제를 마비시키기 위한 작전으로 미국에 남아있던 재고를 털어 국제구리 가격을 폭락시키고, 계좌 동결로 대외 차관을 막았으며 생필품과 의료품의 수출을 통제했다.(나무위키 참조)


시대가 변하고, 그의 시도 변하고, 이제 그는 '여성을 무자비하게 까는 시, 성도착자에 대한 시, 방치된 기차역들의 비행 청소년에 대한 시들을 썼다.' 그런 자신에 대해 그는 죄책감이라도 있는 듯 끊임없는 자기합리화와 변명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그 불쌍한 성도착자들이 내게 무슨 짓을 했다고?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 아무 짓도. 여인들도 호모들도 아무 짓도 하지 않았다니까. 하물며 아이들이야, 오, 주님!, 말해 무엇하랴!'. 그는 교묘하게 시대가 아니 정권이 요구하는 시들로 갈아타고 있었던 것이다. 


그를 주목한 오데임과 오이데는 그를 불러, 칠레가 신세를 잔 자에게 마르크스주의자에 대한 강의를 요청한다. 학생은 바로 피노체트 장군과 그 수하의 몇몇 장군들이다. 공산주의 자들을 혐오하는 군부가 왜 마르크스를 공부할까. 공산주의를 박살내기 위해서다. 그들이(아옌데가) 어디까지 갈 작정인지 알기 위해서다.


칠레의 적들을 이해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그들이 어디까지 갈 작정인지 짐작하기 위해서요. 확실히 말하건대, 나는 내가 어디까지 갈 작정인지 알고 있소. 하지만 그들이 어디까지 갈 작정인지도 알고 싶소. 


9번의 강의로 마르크스주의를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도 그것이 인본주의인지 악마의 이론인지 알 수 없는 그 이론을 그들에게 강의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 자괴감을 느낀다. 페어웰에게 말하자, 이 사실, 이바카체 신부가 군사평의회를 상대로 마르크스주의 강의를 했다는 사실은 순식간에 칠레 전역에 퍼지고 그는 전율한다.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리라 생각하고 바깥 출입조차 두려워했던 그는 사람들이 더는 자신을 비난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더욱 활발한 활동을 한다. 


그 철권통치와 침묵의 시절 오히려 많은 사람이 서평과 평론을 끈질기게 계속 발표하는 나를 예찬했다. 많은 사람이 내 시를 칭송했고! 여러 사람이 내게 접근해 부탁을 했어! 나는 추천, 칠레식 호의, 소소한 경력 포장 등을 남발했고, 덕을 본 사람들은 내게 영원한 구원을 얻은 듯 감사했어! 


철권 통치 속에서도 칠레의 문인들과 예술가들은 '가능한 쾌적한 장소'에 모여 '똑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끼고,  10시 통금을 넘어 밤새 얘기할 장소에 목말라한다. 이 때 마리아라는 여성이 나타나 이들의 갈동을 해소시켜준다. 문학 모임에 나가고 사람들을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여기서 벌어진 일들에 대해서는 지나친 스포라 생략한다. 


수많은 생각들이 오고갔다. 무력으로 찬탈한 권력에 부역해서 얻은 문학적 예술적 영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 죄책감을 이기고, 자신을 합리화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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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모모

    서평을 읽는데도 쉽지 않았는데..번역 할 때는 어땠을까요...@@
    제목을 보고 한 나라의 여러 의미를 담은거 같아요.

    2019.10.14 17:1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모모

    서평을 읽는데도 쉽지 않았는데..번역 할 때는 어땠을까요...@@
    제목을 보고 한 나라의 여러 의미를 담은거 같아요.

    2019.10.14 17:19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게스

      번역도 어려웠을 것 같아요 한글로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지요 ^^

      2019.10.16 14:23
  • 파워블로그 나난

    남미문학. 저와는 전혀 상관없는 분야라고 생각하고 글을 읽어보는데 살짝 궁금증이 들기도 하지만 지금 읽기에는 너무 무리라는 생각에 살포시 덮어둡니다~~

    2019.10.14 22:20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게스

      야만스런 탐정들에 비해서 칠레의 밤은 쉽게 읽혀요. 내용도 그렇고.

      2019.10.16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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