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세기 이전까지의 전통적인 사회에서는 아기를 낳으면 아기를 다루는 경험이 있는 가족과 이웃 혹은 사회 공동체에 의해 자연스럽게 육아를 습득했다. 오늘날 육아는 정보에 의존한다. 예비 엄마들은 임신 초기 혹은 임신 이전부터 임신과 함께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 대해 숙지하고 있으며, 무엇이 아기들에게 해로운지, 무엇을 먹지 말아야 하며, 어떤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특히 첫 임신은 누구에게나 생자 초보의 경험이다. 애 생초자의 초보 맘들에게 하나의 생명은 우주적 규모의 대 사건이다.
국내에서는 조산원을 중심으로 같은 기간 동안 아기를 낳은 엄마들끼리의 모임이 활발한 걸로 알고 있다. 맘카페를 통해서도 육아 커뮤니티는 사회 전반에 걸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처음 겪는 육아에 필요한 모든 정보는 이제까지 20~30년간 살아오는 동안 쌓아온 생의 노하우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겨우 출산의 기회 만큼동안만 쌓이고 써먹게 되는 이런 육아 노하우를 나이가 많다고 얻게 되었을 리가 없다. 모유 수유 방법에서 비롯하여 모든 육아 지식은 책과, 의사, 인터넷, 비디오에서 얻지만, 가장 생생한 살아있는 정보는 이렇게 출산시기의 우연성에서 맺어진 엄마 그룹이라는 커뮤니티에서 얻는다. 미국에서도 지역기반의 온/오프 커뮤니티가 활발해서, 이 소설도 맘동네라는 브루클린 지역 최대 육아 카페에서 만난 엄마들을 중심으로 사건이 벌어진다. 5월맘의 회원들은 같은 달 아이를 출산한 엄마들의 소모임으로서 맘동네에서 수시로 메일을 받고, 자주 모임에서 만나 이런 저런 아기와 관련된 얘기들을 하며 친하게 지낸다.
아기를 낳아본 사람은 누구나 알겠지만, 일단 아기가 생겨나면 모든 것은 아기를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다. 초보 아기 엄마라는 사실 앞에서 그 엄마의 배경이며 지식이며 화려한 직장 등 모든 것은 거의 사라지며, 대부분의 주제는 아기에게로 한정되어 있다. 때문에 서너달 자주 만나 잘 알고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아기가 없었던 각 엄마들의 개인적 삶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는 상태이며, 관심도 없다. 한 회원의 아기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심리 스릴러들은 술술 잘 읽히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소재의 익숙성이다. 유사한 패턴의 사적이고 비중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이 도입부에서 배경을 설명해주고, 이어서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찾는 단계에서 숨겨진 개인의 삶들이 하나 둘 씩 파헤쳐지고, 이 과정에서 하하 이 사람이 범인이네 싶게 여기 저기서 확신할 수 있는 떡밥들이 나타나다가, 막판 반전이 등장한다. 심리 스릴러가 나의 취향저격은 아니지만, 그래도 쉬운 가독성과, 시중의 인기에 편입한 궁금증 때문에 다른 분야에 비해 다독을 하는 편임에도, 나는 이 반전에 늘 당한다. 식스 센스를 처음 봤을 때만큼 새롭고 짜릿한 반전이 아니라면, 반전은 이제 하나의 규칙이 되었다. 결말에 놀라움을 주는 거야 서사적 당위성에 당연히 필요한 것이지만, 범죄자를 찾는 스릴러의 경우 이 사람이 범인이야 범인이야 범인이야 하다가, 엉뚱한 사람이 범인으로 나오는 것이 하나의 규칙처럼 되어 버리면, 독자에게 반전의 짜릿함이 반감된다. 때로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닐까 싶게 이미 잘 마무리되고 완결된 상태에서 또다시 무리하게 반전이 나타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무리수야 하고 웃으면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반전 없이 끝나는 스릴러를 스릴러라고 할 수 있을까도 의문이다.
반전에 대해 말하는 이유는, 이 소설이 스릴러의 구조와 외피를 지니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의 '82년생 김지영'들이기 때문이다. 아니 이 소설을 읽으면서 스치고 지나가는 여러 생각들 중 하나는 이 소설의 5월맘들 뿐만 아니라, 모든 아기 엄마들이 모두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사실이었다. 82년생 보다 한참 윗세대인 내가 82년생 김지영을 읽으면서 들었던 생각은, 내가 젊었을 때에 비해 훨씬 자유분방하고, 민주화되었고, 정의로와졌다고 자부심을 가져도 될만한 한국 사회에서 남녀의 근본적인 인식은 어찌도 이렇게 제자리걸음일까 라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은 국적을 불문한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른다. 아기는 전적으로 엄마의 책임하에 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다. 아무 힘도 없고 연약한 아기는 단지 울음으로서만 사진의 불충분한 상태를 전달할 수 있으며, 완전히 무능한 상태다. 생물학적으로 유전적으로, 사회적으로 전통적으로, 그리고 한 페이지 전부를 수식할 수 있는 여러 이유로, 엄마는 아기에게 가장 필요한 존재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아기를 낳는 여성들이 한 생명에 대한 그토록 막중한 책임을 한 페이지가 넘을 만큼의 형용사로도 모자랄 만큼 지고 있는 동안, 그 맘 이라는 여성들의 고유한 자아, 사회적 욕구, 경제적 책임 등의 엄마 이전에 가지고 있던 인간의 조건을 상실하거나 폐기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5월맘들의 고충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임신 전부터 알기 시작해서 일부는 일주일에 두 세번씩 만나는 사이지만, 그들이 만나면 늘 하는 얘기는 모유 수유와 아기의 발달, 그리고 사소한 이야기들일 뿐이어서, 막상 사건이 일어났을 때에야 그들의 숨겨진 정체(?)가 조금씩 드러난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만난 아기 엄마들이 서로를 알아가던 중 어느 날, 우리도 아기 보는 일에서 벗어나서 하루 쯤 질펀하게 놀아보자고 누군가가 제안을 한다. 이 때 자리에 없던 싱글맘 위니를 걱정하는 척하며 뒷담화를 하는데, 누군가(스칼렛) 그녀는 산후우울증에 걸린듯하다는 말을 흘린고, 더욱 더 그녀를 즐겁게 하기 위해 넬이 자신이 고용한 유모를 붙여주기로 한다. 그런 위니의 아기가 이 술자리 모임에 나왔던 날 아기가 사라진 것이다. 전체적으로는 이 사라진 아기를 데려간 범인을 찾는 것 같지만, 소설이 주목하는 것은 위니의 사라진 아기라는 사건 앞에 처한 맘들의 상황이다.
고스트 라이터인 콜레트는 자신의 책을 몇 권 썼지만, 첫 권이 팔리지 않자, 두번째 세번째 책은 출간도 불가능 했고, 겨우 소개를 받아 시장의 이름으로 대신 쓴 책은 날개 돌리듯 팔려, 이제 두 번째 시장의 책을 쓰고 있는 중이다. 시장의 첫번째 책이 워낙 성공을 해서 시장 선거에도 도움이 되었고, 두번째 책을 부탁했는데, 육아를 동시에 하고 있으니 뜻대로 잘 되지 않는다. 자신이 읽어봐도 글은 너무 엉망이고, 재깍재깍 데드라인은 코앞으로 다가오고 있지만 점점 더 일은 뜻대로 되어 가지 않는다. 설상가상으로 아기를 공동 육아하기로 한 남편은 베스트셀러 작가라서 그의 수입에 가정 경제의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는 만큼, 아기 양육은 공평하게 돌아가지 못한다. 이를 불평하자, 남편은 위니의 아기가 사라진 이 마당에. 유모를 고용하자고 말하여 다투게 된다. 육아를 둘러싼 부부간의 갈등은 한 사람이 자신의 일을 완전히 포기하고 아이 양육에만 모든 걸, 그러니까 인생 전체를, 헌신하겠다고 선언하지 않는 한, 공통적인 현상일 것이다. 이 때 엄마라는 것의 성과 위치는 사회적 욕구와 경제적 책임에서 영원히 벗어날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장 강한 압박이 된다.
아기를 키우면, 아기를 키우는 동안 가장 소중한 시간을 얻고, 아이를 가장 행복하고 건강하게 키울 수 있고, 그러한 아이를 길러내는 것은 여성의 의무이자 권리이다. 그러면 아기가 자라는 동안 엄마는 건강하게 자라는 아기 말고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아기가 다 커서 성인이 되고, 이제 더는 아이에 대해 아무 책임도 없을 때 남은 인생에는 다른 모든 것에 대한 면책이 생기나. 이런 가정은 극단적인 것이지만, 어쨌든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는 여성에게도 똑같은 고민이 있다. 여유 있는 남의 자식은 엄마가 알뜰 살뜰 자식의 모유 수유에서부터 학업에까지 완벽하게 키워내는데, 시간이 없어 쩔쩔매는 직장맘들은 자신의 아이에 대한 헌신 부족이 아이에게 불이익을 줄까 노심초사한다.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넬, 한 때 배우였던 매력적인 위니, 책임감 강한 전업맘 프랜시 등 여기 나오는 모든 여성이 강한 자아와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은 커리어 등 나름대로의 자아를 실현하며 살고 있는데, 육아로 인해 모든 것이 바뀌고, 육아에서 생기는 불리함을 경험하과 위니의 아기가 사라질 때 함께 있었던 멤버였다는 사실로 인해 불이익에 부딪친다. 그러는 와중에서 아기 실종 사건은 점점 아기 엄마인 위니에게로 향하고, 5월맘들은 각자 자신의 위치에서 서로에 대한 정보를 알아나가기 시작하는데. 불편한 진실은 또하나 있다. 자극적인 내용으로 시청자를 꾀는 한 텔레비전 방송에서 계속해서 위니를 사건의 범인으로 몰아가고, 아기를 키우는 엄마들이 그 시간에 술을 마셨다는 사실을 과장되게 보도하며, 그들 모두가 사회적 지탄이 되어버린다. 한국식으로 말하면 애엄마들이 애는 안중에도 없이 밤에 술집에서 술마시다가 일어난 사건이라며, 요즘 맘들 쯧쯧 하는 세태로 만들어가는 중. 하지만 프랜시는 위니의 아기가 살아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우스꽝스러우리만큼 스스로 파헤쳐나가기 시작하고, 주변에서까지 위니를 의심하며 프랜시가 미쳤다고 하는 동안 위니의 아기는 살아있다는 확신을 갖는다. 과연 위니는 산후우울증으로 자신의 아기를 스스로 해쳤을까. 아기는 살아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