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작가의 프로필을 검색해 봤습니다. 첫 페이지부터, 의사와 환자는 물론이고 의료 행위와 의료 시스템 자체를 실랄하게 비판하고 조롱하는 소설의 과감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당연히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의사에게 냉소적인 시각을 가진 기자나 작가의 상상력이 지어낸 이야기일 거라고 추측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일반 독자로서는 알아먹기도 힘든 의료 용어와 여러가지 현란한 의료 행위들을 현미경을 들이댄듯 상세하게 묘사한 걸로 봐서 현직 혹은 과거의 의료 종사자가 쓴 책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 책이 1978년에 첫 출간되었다고 하는데, 작가 사뮤엘 셈이 후에 그의 동료들,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오는 여러 정신나간 인턴들의 모델이 된 사람들과 함께 인터뷰한 유튜브 화면이 제일 먼저 뜨더라구요. 병원 이름과 등장인물들의 이름만 바뀌었을 뿐 거의 사실에 기반한 내용이었습니다.
실제로 소설의 주 무대가 되는 병원인 하우스 오브 갓과 BMS(Best Medical School)은 하버드 의료 대학(HMS)과 연계하고 있는 실제 병원을 모델로 합니다. 작가인 사뮤엘 셈이 공부하고 인턴쉽을 했던 병원이기도 하지요. 주인공이자 화자인 로이 바슈는 사뮤엘 셈의 진정한 페르소나입니다. 그는 자신의 이상적 의료 시스템과는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이 병원의 온당하지 않은 의료 행위와 그 시스템, 만연한 죽음, 의료서비스의 붕괴, 학살적인 업무량 등에서 오는 스트레스을 돌파하기 위해 점점 냉소적이 되어 갑니다. 방금전 자신의 방을 방문했던 동료가 방금 콘크리트 바닥에 떨어져 처참한 시체가 되었는데도, 차들이 피로 물든 주차장의 구역을 피해 다니는 모습을 관찰할 뿐 슬픔도 분노노 느끼지 못하는 상태가 되어버렸습니다.
이 책에서 의사들의 흰 가운, 생명을 구하는 고귀한 정신, 이런 건 다 헛소리입니다. 하우스 오브 갓은 의료 시스템의 현장에 첫 발을 내 디딘 인턴의 시각으로 본 대학 병원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입니다. 생전 처음 듣는 환자를 조롱하고 멸시하는 온갖 종류의 용어들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고머와, 터프 버프라는 말이 가장 많이 나옵니다. 터프와 버프는 그 중에서도 병동의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주로 하는 업무입니다. 그렇다면 터프와 버프는 무엇일까요. 의사들이 가장 많이 하는 일입니다. turf는 무슨 명목이든 씌워서 다른 병동이나 병원 혹은 요양원 같은 데로 보내버리는 업무입니다. 돈이 안되는 환자, 골치 덩어리인 환자, 오랫동안 병실만 차지하고 있는 죽지도 낫지도 않는 환자들 말입니다.
오랫동안 병상을 차지하면서 특별히 무슨 병이 있는 지도 모르고, 낫지도 죽지도 않는 환자들을 고머('get out of my immergency room')라 부릅니다.. 로이 바슈가 인턴이 되어 처음 만난 상급자이자, 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상급자 레지던트가 하나 있습니다. 팻맨이라고 불리우는 그 뚱뚱한 남자는 미친 남자입니다. 다들 미쳤다고 합니다. 하지만 로이 바슈는 그가 유일하게 진실을 알려주는 닥터라고 생각하지요. 팻맨에게는 여러가지 규칙 혹은 법칙이 있는데 팻맨의 법칙이라고 불립니다. 그 법칙중 하나가 '고머는 죽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줌과 똥을 싸고, 저마다 자신이 하는헛소리들을 반복하면서 자신에 대한 자각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늙고 병들고 치매인 환자들, 그 고머들은 죽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처치가 잘못되어 자신의 환자가 죽었는 줄 알았던 로이 바슈는 팻맨의 '고머들은 죽지 않는다' 법칙을 청진기를 거꾸로대고 환자의 귀에 소리지름으로써 확인합니다.
네 고머들은 죽지 않습니다. 이렇게 슬픈 현실을 그들은 냉소적으로 현실을 받아들임으로써 극복합니다. 그들은 병들었는데, 의사도 환자도 병명을 모르고 죽지도 낫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골칫거리이고, 그런 환자들을 다른 병동으로 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제 그들은 버프를 합니다. 인위적인 의료행위를 통해 다른 병동에서 취급해야 할 새로운 병을 만들어내거나 진료차트를 조작합니다. 버프는 골치아픈 환자들을 터프하기 위해서만 사용되는 게 아닙니다. 잘못된 의료행위나 실수 등으로 사람을 죽게 만들었을 때, 상사의 명령을 따른 것처럼 보이기 위해 등등 의료차트를 조작하는 일은 가히 예술적 세계입니다. 팻맨의 영향으로 버프에 능한 로이 바슈는 전체 의료진 중 MVI(?)의 강력 후보가 되고, 훌륭한 의사로 인정받습니다.
생명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만연된 인간 경시의 풍경 속에서 매일매일 죽어가는 환자들을 대하는 것은 스트레스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랜 인턴을 거치고 레지던트인 팻맨의 규칙 중 하나는 치료하지 않는 것입니다. 치료하지 않음으로써 치료한다는 이 이상한 논리는, 팻맨의 대리 상급자 기간이 끝나고 유능하고 천재적인 여자 레지던트 조의 의료행위를 따르면서 목격하는 온갖 종류의 의료행위를 경험하고 나서야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 의사들에게 환자는 '병을 낫게'하거나 '목숨을 구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실험 대상일 뿐입니다. 말로는 무슨 방법을 다 써서라도 이 환자를 더 나은 상태로 만들라고 합니다. 그리고 처치가 거듭될 수록 환자들은 처치에 따른 후유증으로 하나씩 둘씩 장기들이 망가져갑니다.
팻맨과는 반대로 조는 의료 행위란 무언가를 하는 겁니다. 딱히 어떤 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인도 알지 못하는 고머들의 병, 어떻게 고칠까요. 팻맨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최소한 어떤 처치에 의해 발생하는 부작용은 막을 수 있다는 입장입니다. 입원한 그들은 실험실 쥐들처럼 온갖 종류의 검사와 처치와 실험을 통해 점점 더 몸이 망가져가고, 로이 바슈는 고뇌합니다. 멀쩡히 자신의 의식을 가지고 들어왔던 환자가 폐와, 심장과, 신장과 온갖 장기들이 점점 망가져가고 의식이 없어져가는 상황을 자신이 행해야 하니까요 조는 자신의 바로 위 상급자로서 그녀의 말은 무시할 수 없습니다. 팻맨에게는 간단한 해결책이 있습니다. 답은 역시나 아무것도 하지 말아라입니다. 그리고 버프하라.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무자비한 의료 처치로 인한 부작용에서 구해내고, 그 환자들을의 차트를 반짝반짝 윤이나도록 버프함으로써, 자신의 위치를 지킵니다.
이렇게 비인간적인 의료 시스템 현장에서 난잡한 섹스와 술과 조롱과 냉소로서 자신을 지키던 로이 바슈는 그의 몰락을 옆에서 묵묵히 지켜봐주던 여자친구의 헌신으로 결국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합니다. 그 길은 사뮤엘 셈이 훗날 걸어간 길과 같습니다. 물론 로이 바슈가 소설가가 되지는 않았지만 말이죠. 오구오구 페이백 대여로 읽었는데, 생각없이 대여하고 다운받아놓고는 만료일 전까지 못읽는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만. 이 책은 마지막 날까지 꽉채워 읽었습니다. 사서 두고 천천히 읽는 걸 추천합니다. 렌싯 이라는 아주 저명한 의료학술지가 있는데, 거기서 20세기 최고의 의료 소설로 꼽았다고 합니다. 의사들이 이 책을 세 번 읽는다고 합니다. 인턴들이 되기 전 의대생들은 이 책을 읽고는 과장이 심하다 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인턴 때 읽으면서 현실이 너무나도 똑같아서 공감한다고 해요. 그리고 의사가 되었을 때, 이 책을 읽으므로서 갑이 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고 해요. 읽었지만 종이책으로 소장하고 싶은 책입니다. 이렇게 슬픈 내용을 읽으면서 이렇게 피식피식 웃어도 되는 건지 그게 슬퍼서 다시 웃고 말게 되는 그런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