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 귄의 해인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입니다. 헤인 시리즈의 각 작품은 세계관을 공유하며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지만 시간 갭은 수백년 수천년까지이며 우주의 여러 행성이 배경입니다. 게다가 지구에 사는 인간이 주인공인 것도 아닙니다. 시리즈의 전편인 로캐넌의 세계는 테라인(지구인)인 로캐넌이 연맹의 반란군으로부터 구했다고 해서 후에 로캐넌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행성을 배경으로 합니다. 연맹의 역할은 우주 곳곳을 누비며 지성 생물체를 발견하면, 그들에게 문명을 심어주고 연맹에 편입시킵니다. 하지만 연맹은 과거 서구 제국주의적인 방법으로 세계를 정복하거나 지배하지 않습니다. 처음 발견한 지성체들에게 진보된 기술을 무력으로 그들을 무릎 꿇리지 않습니다.
<로캐넌의 세계> 이전에 단편 <샘레이의 목걸이>에서의 설정과는 다소 다릅니다. 영주의 아내 셈레이는 우주 어딘가에서 전쟁을 한다며 세금을 걷어가는 연맹을 스타로드라고 불렀고, 그들의 지배하에서 궁핍한 모습을 보입니다. 훗날 진흙족을 만나 목걸이를 찾으러 왔던 셈레이를 만났던 박물관장 로캐넌은 외부 세계에 대한 무시한 연맹의 개입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알게 되고, 문명 전달은 좀 더 엄격한 룰을 갖게 되는 것 같습니다만, 로넌이 그렇게 개고생을 해서 반란군으로부터 행성을 지켰건만, 수많은 시간이 흐른 후, 유배 행성에서의 배경은 더 나빠진 듯 보입니다.
이 작품의 배경은 공전 궤도가 극단적으로 깁니다. 계절도 극단적으로 길지요. 한 사람이 삶을 살면서 네 번의 계절을 평균 한 번씩 경험합니다. 두 번의 계절을 나게 되면 장수하는 거지요. 그러다보니 이 세계에는 월기라는 낯선 개념이 있는데 그것은 달과 지구가 서로의 주위를 도는 데 걸리는 시간으로 약 400일입니다. 이 60번의 월기가 항성과의 공전주기에 해당되며, 이 1년은 거의 한 사람의 일생이라는 기간과 맞먹습니다. 총 2만 4천일입니다. 하루와 시간이라는 개념이 똑같다면 말이지요, 이들의 태양은 감마 드라코니스입니다.
긴 여름, 긴 봄, 긴 가을 모두 살만 합니다. 하지만 그 뒤에는 길고 긴 겨울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Winter is coming'. 겨울을 대비하는 것은 일생의 활동입니다. 르귄은 이렇게 색다른 세계의 문명을 매우 섬세하게 디자인했습니다. 천막같은 곳에 살며 혈족 중심의 공동체 생활을 하는 그곳 원주민인 월드 혈족의 문화는 혹독한 겨울을 대비한 계절 활동을 중심으로 같은 계절에, 봄과 가을에 아이를 낳습니다. 봄에 태어난 아이는 가을이 되면 가임기가 되어 아이들을 잔뜩 낳습니다. 그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겨울을 넘기고 봄에 가임기가 되어 아이들을 낳습니다. 시간 배경은 겨울을 앞둔 시기에서 시작하여 혹독한 겨울동안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간 배경상 월드 혈족에게 로맨스의 주인공이 될 만한 젊은 여성은 없습니다. 우리의 주인공 롤레리를 제외하고 말입니다.
그녀는 잘못된 계절에 태어났습니다. 스무번의 월기를 지난 나이라고 나오는데, 지구나이로 계산하면 400*20/365 = 약 22세 정도이군요. 잘못된 계절에 태어난 남자 아이가 없다 보니, 또래의 남자는 만날 기회가 없습니다. 봄에 태어난 아이들은 이미 모두 혼인하여 가을에 아이들을 잔뜩 낳았습니다. 가을에 태어난 아이들은 아직 너무 어립니다. 봄에 태어난 늙은 남자의 두번째나 세번째 아내가 될 가능성만 남아 있는 여자 아이입니다. 제가 말씀 드리지 않았군요. 이 소설은 대단한 러브 스토리이기도 합니다. 롤레리에게는 어떤 로맨스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이 월드 족의 생활 구역 경계 너머 해안 도시 랜딘에는 원주민들이 '외인'이라 부르는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이들은 연맹의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연맹으로부터 잊혀진 사람들입니다. 랜딘은 연맹이 이 땅에 첫 발을 내딛었던 이래 옛중심지이자 첫번째 거류지입니다. 오래 전 10지역년 전, 이 행성에 뿌리를 내린 이후 한 때 랜딘은 강하고 부유한 나라의 수도였습니다. 이들은 한 때 많은 큰 번성을 주렸지만, 어떤 이유로 그들은 점차로 고립되어 갔습니다. 땅을 지배하려던 오래 전의 꿈은 잊혀지고, 힐프들에게 무너지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길고 혹독한 겨울과 적대적인 힐프를 피해 랜딘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인구는 열 세대에 걸쳐 점점 줄어들었고, 인간의 복잡하고 미묘한 기술과 영혼을 지지해줄 에너지와 영혼은 없어진 지 오래입니다. 그들의 문명은 점차로 퇴보합니다. 아이들에게 알테라들의 옛 지식과 옛 관습 그러니까 문명을 가르쳤지만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세대가 거듭되며 더 적은 아이들이 태어나고 점차 초라해졌고, 간소해졌고, 평온에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합니다.
연맹의 책이라 해서 모든 지혜가 다 실려 있는 것은 아니었고, 날이 가고 해가 갈수록 그 지식도 조금씩 소실되어, 지금 이곳의 일상 생활에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지식들로 대체되었다. 그리고 마침내는 책이 이야기하는 내용을 대부분 이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어떤 유산이 지금까지 남아 있겠는가? 오랜 희망과 전설 속에 나온 대로, 별들 사이로 불을 내뿜으며 배가 내려앉아 그 속에서 사람들이 걸어 나온다면 그들을 같은 사람으로 알아줄까?
배는 오지 않았고,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죽어 없어질 것이다. 이곳에서의 삶, 이 세계에서의 긴 유배와 투쟁도 사기 조각처럼 깨어져 사라질 것이다.
퇴보하고 쇠락해가고 있지만 우주선과 같은 모든 현대적인 과학지식이 있고 텔레파시 능력까지 있는 외인들과 수적으로 우세하지만 서구 침략 당시 인디안들의 수준에 불과한 저수준의 문명을 가진 월드 혈족 간의 만남은 롤레리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앞서 말씀드렸다 시피, 또래가 전혀 없어 평생 외톨이인 롤레리는 혼자서 다닙니다. 그녀는 알테라 구역의 해안, 모래톱, 바다, 그리고 '검은 바위'를 보고싶습니다. 롤레리가 말하는 검은 바위는 높은 성, 요새입니다. 하지만 해일처럼 빠른 밀물에 대해 무지한 롤레리는 위험을 알리는 텔레파시를 감지하고, 가까스로 구출됩니다. 롤레리를 구출한 사람은 아가트, 외인들의 대표 알테라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연맹은 규칙상 그들에게 진보된 기술의 사용이 금지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외인과 힐프들은 서로가 서로를 부르는 이름입니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을 인간이라고 부릅니다. 랜딘인들과 월드 혈족들은 서로에게 무심한듯 적대적이지만, 지역을 맞대고 있으므로 공동의 관심사가 생기게 됩니다. 북쪽에 가알이라는 아주 적대적이고 야만적인 종족이 있는데, 그들이 이제껏 겨울을 준비해온 월드족을 침략하고 약탈할 거라는 소식입니다. 가알이 침략한다면 랜딘도 무사하지 않을 것입니다. 20세대간의 투쟁의 역사가 막을 내릴 위기입니다. 두 이질적인 집단은 서로 협력해서 가알을 막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가트는 무지하고 편협한 월드 종족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월드 혈족의 딸 롤레리는 자크 아가트와 썸을 타고 있거든요. 월드의 사내들은 이 사실을 아주 불쾌해합니다.
단순하게 본다면 로맨스와 전쟁이 적절하게 배치된 액션 스토리지만, 르 귄 여사는 인류학자인 부모님의 영향과, 박물관 살아있는 전시품이 되었던 마지막 인디안 혈족과의 관계 등에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서로 다른 아주 이질적인 두 문명의 충돌과 융화 과정을 이러한 고스란히 담아내었습니다. 게다가 선진적 문명의 침투 과정은 서구인들의 제국주의 시절과는 매우 다릅니다. 진보된 기술의 사용이 금기되었기에, 전멸적인 상황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도 파괴력 뿜는 무기 사용 금지 사항을 지킵니다. 그들과는 이미 연락도 안되는 연맹인데도 말이죠. 어디서 어떻게 망했는지도 모르는 연맹인데도 말이지요. 가알을 막기 위한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자 큰 위기에 빠지지만, 롤레리와 자카드와의 사랑은 그 큰 혼란 속에서도 훈훈하게 진행됩니다.
여기에 두 문명의 충돌, 결합, 그리고 그 결실이라는 카드가 있습니다. 지구에서 진화한 인간이 이 이상한 행성에서 세대가 진행할 수록 서서히 불임과 유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지요. 두 외계인은 생김새도 제법 다릅니다. 특히 눈동자는 서로가 서소를 이질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르 등장합니다. 이러한 생김새의 이질성은 후속편 <환영의 도시>에서도 연결됩니다.
월드는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아가트와 정면으로 눈을 마주쳤다. 월드의 눈은 겨울 태양처럼 흐릿한 노란빛을 띠었고, 비스듬한 눈꺼풀 아래에 흰빛이라고는 보이지 않았다. 검은 얼굴에 보이는 아가트의 눈은 홍채나 눈동자나 할 것 없이 검었고 한쪽 구석이 희었다. 지상의 것이라 할 수 없는 이상한 눈이었다.
자크 아가트의 눈동자는 지구의 다른 동물들과도 크게 차이나는 흰자위가 드러나는 눈동자를 가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의 주인공은 흑인입니다. 이 작품이 1960년대 혹은 70년대쯤 쓰여진 것을 생각하면 영화판이나 드라마 시리즈에서 전형적인 화이트 와시 현상이 근절되지 않고 있는 점을 볼 때 르귄 다운 과감한 시도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마도 그의 작품이 영화화되거나 시리즈로 제작되지 않은 이유는 이러한 백인 위주의 영화/드라마 판에서 인종적인 구성을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전쟁의 와중에, 어쩔 수 없이 서로 협력하게 된 두 인종은 이종 교배 즉 두 인종 사이의 생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은 서로에게 재앙일 수도, 구원일 수도 있습니다. 일부는 분노합니다.
“제대로 아이를 낳는 한 우린 인간이었어요. 유배자이고, 알테라이며, 제대로 된 인간이었단 말입니다. 지식과 인간의 법에 충실한. 이제 우리가 힐프와 더불어 아이를 낳을 수 있다면 일 년도 채 지나기 전에 인간의 피는 잃어버리고 말겠죠. 묽어지고 엷어져서 아무것도 아니게 될 거란 말입니다. 이 기구들을 사용할 수 있는 이도, 이 책들을 읽을 수 있는 이도 남지 않겠죠. 자콥 아가트의 손자들은 돌을 두 개씩 들고 둘러앉아 시간이 끝날 때까지 함성이나 질러대겠지요……. 망할 놈의 머저리 야만인들
하지만 외인과 결혼한 롤레리, 두 사람 사이에 생식은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던 롤레리는 '죽음으로 가득한 폐허의 도시 아래, 잠든 부상자들 사이에 앉아서 말없이 생명의 기회를 곱씹어' 봅니다. 폐허 속에서의 유일한 희망, 그것은 새 생명입니다.
장엄한 마지막 구절을 올립니다.
겨울이었다.
5000번의 밤과 5000번의 낮, 그들의 남은 젊음은 물론이고 어쩌면 남은 생애 전부를 보내게 될 겨울.
... 비탄도 자부심도 하늘과 바다 사이에서 찬 바람을 맞아 흔들리며 불꽃처럼 밝고 짧게 타오르는 기쁨만큼 진실하지는 못했다. 이곳은 그의 요새였고, 그의 도시요, 그의 세계였다. 이들은 그의 동족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더 이상 유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불길이 사그라져 잿더미로 변하자 롤레리에게 말했다.
“자, 집에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