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환영의 도시

[도서] 환영의 도시

어슐러 K. 르 귄 저/이수현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이 땅에 최초의 종족이 있었고…… 두 번째로 정복자들이 왔다. 정복된 이들과 정복한 이들 모두, 수백만의 생명이 지난 시간의 흐릿한 지평선 아래로 끌려 내려갔다. 별들이 모였다가 다시 길을 잃었다. 여전히 세월은 계속 가고, 수많은 세월이 흘러 인간이 역사를 일구고 유지하던 시대에 완전히 파괴되었던 고대의 숲은 다시 자랐다. 


르 귄의 헤인 시리즈에는 항상 연맹이 있습니다. 이 연맹은 모든 세계의 연맹으로, 우주 개척 시대에 보이지 않는 어떤 적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거의 모든 헤인 시리즈에서 연맹의 실제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연맹에서 파견되었거나, 연맹을 전설로 여기고 있거나, 보이지 않는 어떤 가느다란 줄을 통해 연맹의 일을 수행하고 있거나 그렇습니다. 환영의 도시에서 연맹은 몰락한 듯 보입니다. 이 책은 앞서 리뷰한 유배행성 다음에 출간되었습니다. 유배행성에서는 연맹에서 잊혀지고 몰락해가는 인간의 후예들이 공전주기가 엄청나게 긴 행성에서 분투하는 모습을 그렸지요. 그곳에서 테라인의 눈동자는 기이합니다. 하얀색 바탕에 검은 눈동자가 그곳에서 원래부터 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매우 기이하게 보입니다. 애초 먼 먼 초기에 헤인인들이 씨를 뿌렸다는 전설에 따르면 그들의 원래 조상은 헤인인들로 같습니다. 행성의 환경과 진화 과정에서 눈동자가 변했을 겁니다. 


이 곳의 공간적 배경은 지구입니다. 먼 미래의 지구. 몰락하고 무너져 폐허가 된 지구입니다.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져 씨족 공동체 같은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과학기술의 혜택도 이상합니다. 썰매라고 불리는 후버크래프트 같이 지상에서 약간 띄어져서 날아다니는 개인 탈것이 있고, 레이저총 같은 살상 무기도 있지만, 생활은 영 원시인같습니다. 그들은 두렵습니다. 싱이라는 존재가 있는데, 싱이 두려운 존재입니다. 은유가 넘실대는 르귄의 책에서 싱이란 어쩌면 인간의 원초적 두려움을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싱의 정체는 마지막에 가서야 드러납니다. 


헤인 시리즈를 비롯한 르귄 소설의 특징중 하나가 로드 무비를 연상시킨다는 점입니다. 길을 떠나고 길 위에서 온갖 시련을 겪습니다. 헤인 시리즈의 첫번째 작품이었던 <로캐넌의 세계>에서 로캐넌은 행성을 구하기 위해 행성 반대편에 있는 적을 찾아 길을 떠납니다. 하늘을 나는 말을 타고 말이죠. 말할 수 없는 고초를 겼습니다. <빼앗긴 자들>에서는, 주인공 완전히 새로운 무정부주의적인 체계  그들이 스스로 낙원이라 일컷는 오도니즘을 실현시킨 아나레스 행성에서 아나레스에서도 주인공은 고향행성을 떠나 우라스로 가서 말할 수 없는 개고생을 하며 계속해서 어디론가 이동합니다.  <어둠의 왼손> 역시 전형적인 로드무비입니다. 어떤 행성을 연맹에 편입시키려고 대사의 역할을 하러 갔는데, 그들의 정치적 상황 때문에 망명자가 되어 반대쪽 나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옵니다. 어둠의 왼손은 거의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이 혹독한 추위 속을 걷는 중에 마치 남극 탐험기 같은 배경 속에서 일어납니다. <환영의 도시> 도 전형적인 여행담입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 팔크는 어떤 마을에서 발견되어 보살핌을 받습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 생각도 없는 그야말로 빈 서판과 같은 아기와 같은 상태에서 과거는 없이 새로운 삶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그는 생김새가 특이합니다. 눈이 일반인들과 다릅니다.  흰자위가 없이 노란색의 고양이 눈입니다. 가족처럼 보호해주던 마을의 가정에서 눈동자의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으니까요. 모든 것을 빠르게 배운 팔크는 어느날 길을 떠나게 됩니다. 자아를 찾아 떠나는 것이죠. 그 집 딸래미랑 사랑에 빠졌던 팔크 스스로 떠난 건 아니고, 떠밀려서 떠나게 됩니다. 


그는 여정에서 자신의 눈이, 그 차이가 다른 사람에게 괴물로 비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싱이라고 오해받기도 합니다. 스스로도 자신이 싱일까. 싱이 보낸 자일까 의심합니다. 그가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모두가 두려워하고 있는 도시 입니다. 그곳에 싱이 있습니다. 거기서 자신이 무엇인지 어디에서 왔는지 왜 왔는지 그 모든 것을 밝혀줄 것이라 생각한 거죠. 그는 무사히 도착할 수 있을까요?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까요.


앞의 리뷰 <유배행성>의 내용을 읽으셨다면 고양이 눈을 한 사람들이 흰자위를 가진 사람들을 외인이라 부르며 괴상하게 취급했던 걸 기억하셨을 겁니다. 그곳에서 두 개의 이질적인 세계가 로맨스로 연결되지요. 거듭되는 유산과 불임으로 쇠퇴해가던 테라인의 후예들은 그곳에서 그곳 세계와 화해하고 결합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건설했을 겁니다. 고양이눈을 했던 부족 수준의 원주민들에게도 우주를 날아다니는 과학기술이 생겼다는 거지요. 그 어떤 쓰이지 않는 우여곡절이 롤레리의 후손들을 연맹에 편입시켰던 거죠. 그래서 날아왔는데, 어찌된 일인지, 그는 우주선도 없고, 홀로이고, 발가벗겨지고, 기억이 지워져 있었던 겁니다. 그 모든 것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이 소설의 내용입니다. 

 
취소

댓글쓰기

저장
덧글 작성
0/1,000

댓글 수 5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시골아낙

    길을 떠나고 온갖 어려움을 겪고, 성장담이라고 할 수도 있을까요?

    2020.02.26 18:4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게스

      그렇지요. 세상을 배우게 되니까요

      2020.02.27 09:06
  • 파워블로그 나난

    눈의 색깔이 그들을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도 있겠군요. 눈이라는 인체의 부분이 그렇게 중요한 기준점으로 쓰이다니. 먼 미래의 지구가 배경이 된다는데 이것이 실제로 일어날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연맹이나 종족들은 등장하지 않더라도 배경만큼은요. 지금의 사태를 볼때 그렇게도 될수도 있을 것 같다는 무서움이 드네요.

    2020.02.26 20: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게스

      상호간의 다름과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배웠다고나 할까요. 한쪽에서는 이게 정상이고 다른쪽에서는 저게 정상이고.. 우리가 소수자에게 대한 왜곡된 시각이나 편견 같은 것도 생각해볼 문제같구요

      2020.02.27 09:08
  • 파워블로그 모모

    내용이 독특하면서도 다름이 참으로 여러 생각을 갖게 하네요..
    건강 조심하시고요~~

    2020.02.27 11:48 댓글쓰기

PYBLOGWEB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