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플까봐 귀도 못뚫고 평생을 변변히 귀걸이도 못하고 살아온 나는 타투를 하는 행위는 일종의 경외의 대상이다. 피부에 지울 수 없는 무언가를 새긴다는 건 변치 않을 무언가를 가슴에 새기는 것과 같은 행위일까. 사랑했던 두 사람이 서로의 몸에 타투로 서로의 이름이나 표식을 새겨놓을 땐 , 그 사랑이 영원토록 변치 않을 거라는 걸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어서일 거라는 것만큼은 알겠다. 한 때 조폭들이 표식으로 서 뱀이나 호랑이 같은 자기들 표식을 나타내는 문신을 몸에 깊게 패어 새길 때 내가 이 길이 삶의 길이다, 이렇게 폭력과 불의로 생계와 (나름 그쪽에서의 )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 게 내가 갈 길이고 다른 삶은 없을 것이라는 것에 대한 의지인 것인지는 알 길이 없다.
구병모 소설을 좋아한다. 그의 소설은 삶의 비루함과 치열함을 견뎌내고 살아가는 심리와 일상을 현미경처럼 지극히 현실적이게 그려내면서도 그 속에 마법적이고 환상적인 스토리를 결합한다. 내가 무슨사조 이런 걸 모르지만 남미의 마술적 사실주의를 떠올리게 한다. 이 소설책을 받아보고서 손에 쏙 들어오는 작은 사이즈에 놀랐는데, 이렇게 작은 중편들이 아르테에서 내는 시리즈였다. 작은 사이즈인만큼 중편 정도의 분량인데, 구병모 소설이 대개 사이즈와 상관없이 스토리가 다이나믹하다.
기이한 살인사건이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미스터리 장르와 주인공이 회사에서 겪는 소소한 일상이 교차되어 가면서 이야기를 전달한다. 주인공의 회사생활은 경력 단절을 겪다가 복귀하여 상대적으로 낮은 직급과 높은 연령 때문에 회사에서 겪는 잘잘한 에피소드들을 통해 복귀 여성의 사회적 위치에 대한 실상을 전달하고 있지만, 주인공과는 전혀 관련있을 것 같지 않은 엽기적 살인사건들이 교차로 벌어지면서 독자는 궁금증을 헤어나올 수 없다.
그런데 하나씩 둘씩 벗겨지는 살인 사건의 비밀 속에서, 피해자는 죽어 마땅할 수도 있는 가해자였음이 드러나고, 실제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추정되지만, 그 어떤 증거도 존재하지 않을 뿐더러 살인 자체가 불가능한 상태로 발견되는 용의자들은 살인의 피해자에게 피해를 입어왔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러니까 용의자인 이유도 그동안 죽은 사람에게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왔다거나 어떤 원한을 가지고 있을 여러 피해를 당했기 때문인 것인데, 단지 이 사람이 죽은 사람에게 그동안 피해를 많이 당했다고 해서, 증거도 없이 함께 있었다는 이유로 기소할 수는 없는 것인데, 그렇다면 누가 죽였단 말인가라고 질문한다면, 어찌되었건 용의자 밖에는 누구도 접근 불가능한 상태에서 죽었기 때문에 더더욱 용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목 뒤에 타투를 한, 신입이라기엔 나이가 많으나 경력이라기엔 어디서 차분히 몇년 일하며 쌓은 경력이 없기에 그냥 신입인 화인과 마찬가지로 나이는 들었지만 경력단절로 인해 아무 직책도 갖지 못한 주인공이자 화자인 시미는 상무라는 아주 지극히도 상사의 언어 폭력과 맞닥뜨리는데, 도디체 이 나이대의 이런 직급의 사람들에게는 개인의 사생활이라던가 하는 남녀 평등이라든가 하는 개념이 없다. 목에 살짝 살짝 보이는 화인의 타투를 보며, 노골적으로 지적질을 하니 선배로서 시미는 화인을 지켜주고파 한 마디 거들었다가, 그나마 본전도 못찾을만큼 된통 언어 폭력을 당하게 된다. 이 일을 계기로 화인과 가까워진 틈을 타, 타투에 관심을 갖게 되고, 그 타투 집에 방문하게 되면서 소설은 시작하는데.
어느날 화인은 앞에서 벌어졌던 이상한 살인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집에 불이나고 아버지가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죽고, 화인은 심하게 맞은 상처로 발견되었지만 화상은 입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화인은 이제껏 발생한 미스터리 살인 사건들과 타투와의 관계를 서서히 파악해나가기 시작한다.
옛부터 사람들은 부적을 지니고 있곤 했다. 어떤 그림이나 글씨들을 지니고 있으면 액운을 막아준다고 믿었다. 타투도 그런 의미로 새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를 지켜준다는 어떤 상징, 그것을 몸에 새김으로써, 위안을 삼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남편의 폭력 때문에 일찌감치 이혼을 했던 시미의 삶은 상처와 상실로 가득하다. 이 때 전남편이 두고 온 아들과의 만남을 막아, 어릴 때에도 커서도 점점 더 만나기 어려워지고, 어렵게 성사시킨 처음이자 만남 때에는 다시 연락하지 말아달라는 혹독한 소리를 듣고서야 폭력적 아버지를 두고 어미가 떠난 삶을 살아야 했던 아들의 삶에 자기가 끼여들 여지가 조금도 없다는 것을 시인한다.
짧으면서, 술술 잘 읽히면서도 구병모 소설에서 기대하는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는 작품.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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