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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과학책

[도서]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저/이지연 역/이명현 감수

내용 평점 4점

구성 평점 4점

과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그저 조금 아는 것 뿐인 과학적 지식은 세상을 이해하기에 도움이 별로 안된다. 우리가 궁금해하는 것들은 무한하게 많은 데 비해, 우리가 배운 과학적 지식은 아주아주 적을 뿐이며, 그나마도 인류 문명이 정상 과학의 범주 속에 편입시켜 놓은, 증명된 '확실한' 과학의 양은 전체 우주의 원리(가 있다면)에 비해 얼만큼인지도 알 길이 없다. 사실 그 절대적 최대값이 얼마인지 모르므로, 우리 인류가 뭘 얼마나 알고 있는지 조차 가늠할 방법이 없다. 그 중에서도 일반 개인이 배웠는데 이해 못했거나 잊었거나 한 것을 제외하고 완전히 이해하고 있는 지식의 양은 그야말로 보잘것이 없다. 그런 점을 생각한다면, 과학 관련 책을 찾아 읽는 행위조차 무기력하게 느껴질 때가 많다. 


무식이 용기라고, 우리가 아는 그 작은 양의 과학적 추론을 바탕으로, 우리는 만약에라는 날개를 달고 우리 인류가 정복한 과학의 힘으로 대답할 수 있는 질문을 퍼부어 대는 것까지는 허용된다. 이 책은 어찌보면 '대체 그런게 왜 궁금해!'라고 할 수 있는 정말로 쓸데 없이 무료한 질문에 대해, 끝장을 보겠다는 신념으로 대답하는 과학 책이다. 저자가 운영하는 블로그(http://what-if.xkcd.com/) 에 올라오는 질문과 대답, 그리고 그 대답에 대한 코믹 삽화로 구성되어 있다. 


블로그 사이트의 주소에서도 짐작할 수 있는 것처럼, 질문의 내용은 엉뚱 기발하다. '지구가 자전을 멈췄는데, 대기는 여전히 전과 같은 속도로 움직인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와 같은 한 번도 상상해 보지도 않았을 뿐더러,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는 엉뚱한 질문으로 시작되는 이 책은, 그 대답은 근거 있어 보이는 과학적 추론에 의지해서, 상상할 수 없었던 미지의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그려본다. 파도는 전체 지구를 휩쓸고, 사상 최대 규모의 해일을 맞닥뜨리고, 폭풍은 어마어마한 먼지와 쓰레기를 대기 속으로 빨아들이고, 밤낮의 주기는 사라져버리고, 해는 1년에 한 번 지고 뜨고, 달은 더이상 멀어지지 않고, 소리 없이 지구를 잡아당기게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견해이다. 


야구장의 투수가 진짜 광속구를 던진다면 어떤 일이 발생하게 될까.나노초 간격으로 묘사한 답변에 의하면, 야구공 앞에 있던 공기 분자 속의 원자들은 야구공 표면의 원자들과 융합, 충돌할 때마다 감마선이 터져 나오면서 입자들이 흩어질 것이고, 투수의 마운드를 중심으로 이 감마선 파편들이 밖으로 팽창하면서 커다란 버블을 형성하면서 공기중의 분자들을 찢어 놓을 것인데, 이것은 원자핵에서 전자들을 뜯어내면서 운동장에 팽창하는 플라스마 버블로 바꾸어 야구공보다 살짝 앞서서 빛의 속도로 타자를 향해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한다. 야구공 앞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융합작용은 결국 야구장에서 대략 수 마일 이내에 있는 모든 것을 날리고, 폭풍같은 불길로 주변도시를 집어 삼키고, 야구장은 커다란 분화구가 될 것이고, 타자는 1루까지 진루할 자격을 갖게 될 것이라고 답한다.    


질문은 너무나 엉뚱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질문들이지만, 만일이라는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물리, 화학, 우주, 통계, 수학 등 다방면의 이론들이 총동원되고, 때로 저자가 답변한 질문에 대해 전문가로부터 자문을 받은 결과를 함께 제시하기도 한다. 


가장 엉뚱하고 어리석어 보이는 질문으로, 스테이크용 고기를 얼마나 높은 곳에서 떨어뜨려야 땅에 떨어질 때쯤 익어 있을까요 라는 질문이 있는데, 물론 '고기가 익을만큼의 속도'라는 극단적인 조건을 시뮬레이션 하기 위해 저자는 기체역학에서부터 고기의 열흐름을 시물레이션한 논문 등을 검토하여 음속의 속도에서 초음속, 극초음속 등의 온도에 대해 조사하고,  떨어뜨릴 높이를 우주의 경계까지 올린다.  


흥미로운 감기 전멸시키기 질문은 만약 지구 상 모든 사람이 몇 주동안 서로 떨어져 지낸다면 일반 감기가 완전히 사라져 버릴까 라는 궁금증이다. 수학적으로 감기는 평균 1명의 다른 사람에게 감기를 옮겨주기 때문에 멸종하지도, 모든 사람이 동시에 감기를 앓고 있지도 않게 만든다. 그러므로 인류의 모든 사람들이 모두 격리된다면 감기 바이러스는 새 숙주를 찾지 못해 멸종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이 가상의 격리 시나리오를 직접 계산한다. 세상은 넓지만 사람도 많기에 전세계 육지를 균등하게 나눠 갖는다면 우리는 각자 2헥타르 약간 넘은 땅을 가질 수 있고, 가장 가까이 있는 사라과는 77미터 정도 떨어지게 된다. 전세계 육지의 대부분은 거주에 적합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바이러스가 모두 죽는데 까지 걸리는 5주 동안 사하라 사막이나 남극 가운데서 버텨야 하는 일까지 상상한다. 


대개 과학적 상식을 넓혀주는데 큰 도움이 되기 보다는 이런 기발한 상상력을 죽자 살자 과학적으로 설명하는 저자의 센스가 재미있게 읽혔는데, 그중, 인간이 자가수정을 한다는 시나리오, 즉 여성이 자신의 줄기세포로 만든 정자로 임신을 한다면 이라는 시나리오는 염색체와 유전법칙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지구와 비슷하지만 사람이 살지 않는 행성에서 영원히 죽지 않는 두 사람이 서로 반대편에 놓여 있다면 서로를 찾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릴까? 물리학자들이 쉽게 쓰는 방식으로 답은 3천년이다. 이것은 두 사람이 하루에 12시간씩 무작위로 지구 위를 돌아다니고 최소 1킬로미터 이내로 접근해야 서로를 볼 수 있다는 가정에서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가시 거리라는 문제와 산 언덕 숲 같은 가시 공간의 문제가 얽혀있고, 두사람의 심리적 문제도 고려해볼 수 있다.  이 때 만일 두 사람이 계획을 세울 수 있다면, 예를 들어 지상에서 가장 높은 곳이나 제일 긴 강 어귀 같은 곳에서 만나자 라고 약속을 정해 놓는다면 상황은 나아질 수도 있다. 두 사람 모두 반시계 방향으로 돈다면 영원히 만나지 못할 수도 있다. 저자라면, 아무 정보가 없는 상황이라면 돌멩이 같은 걸로 어떤 표식을 남겨둘 거라고...어찌보면 철학적일 수도 있는 질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매일매일 지구를 돌아다니며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고 또 우연히 스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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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워블로그 후안

    정말로 웃자고 하는질문에 죽자고 달라드네요. 하지만 저런 질문들이 지금의 세상을 만들었지 않나 생각합니다. 저런 질문이 있어야 세상이 발전하겠지요. 당연한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의문을 가지는데서 말입니다.

    2015.05.27 00:37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게스

      네 맞아요. 마지막 질문 지구상에 사람과 사람이 만날 확률에 대한 질문은 인연에 대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질문이고, 또한 훌륭한 답변이었습니다. 철학 역시 알게 모르게 과학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이루어진다는 생각도 들구요

      2015.05.27 15:03
  • 스타블로거 ne518


    알고 싶다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고, 거기에 답해주려고 애쓰는 사람도 있다니 재미있네요 고기를 얼마나 높은 데서 떨어뜨려야 익는지... 우주에서 떨어뜨리면 다 타 버릴 것 같은데... 영원히 죽지 않는 두 사람, 그곳에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까요 사람이 어딘가에 혼자 떨어지면 그곳에 누가 있는지 찾아보러 다니기는 하겠네요


    희선

    2015.05.28 00:01 댓글쓰기
    • 파워블로그 게스

      우리가 책을 읽고 리뷰를 쓰고 서로 잘 모르는 사람들끼리 교감을 하는 것처럼, 그 사람도 블로그를 만들어 기상천외한 질문들을 받고, 그것에 대해 졸라맨같은 만화를 그려서 답을 해주고 그런 일을 하면서 서로 소통하는 것 같았어요. 그렇게 아는 것이 많다면 정말 재미있을 거 같아요

      2015.05.28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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