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이 산채로 날 잡아먹는구나(p18)
우울로 가득찬 하루하루를 쓰지도 않을 자잘한 물건들을 숍에서 훔쳐내는 걸로 풀고 풀며 지내던 어느날 헐렁하고 늘러진 바지와 낡은 부츠 헝킬어진 미리를 하고 애들과 씨름을 하던 거로에서 옛 동료를 만난다. 자기 소유의 로펌을 차린 파스칼은 빈말이라도 애들이 이쁘다는 말 한마디 않기 함께 걷다가 헤어지는데 파스칼의 다리를 잡고 나를 데려가 달라고 빌기라도 하고 싶던 심정이었던 그녀의 마음은 와르르 무너져 버렸으나 잠시후 스카웃 제의 문자를 받는다.
한 번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꼼꼼하게 면접을 보고 깐깐하개 고른 보모 루이즈는 그들에게 세상에 다시없을 구세주다.아이들 둘과 완벽하게 소통하고 아이처럼 즐겁게 놀아주면서도 마치 없는 듯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가사일까지 이중 삼중의 일을 맡아 하는 것이다. 서구 유럽에비하면 그닥 니 일 내 일 구분이 분명치 않은 우리나라에서조차 보모에게 빨래나 청소같은 가사일을 맡기는 건 염치없는 짓이고 시켜봐야 아기가 노는 방 정돈이나 아이 먹을 음식 정도를 만드는 것 정도인데 아무로 루이즈가 스스로 알아서 일을 찾아내어 한다고 하더라도 속옥을 손빨래한다거나 단추가 떨어잔 옷들을 찾아 꿰매고 헤어단 옷들을 수리하고 1주일에 한번씩 침대 시트를 갈아 호텔처럼 뽀송뽀송한 상태를 유지하고 그것도 모자라 허구헌 날 사람들 불러 파티를 하도록 음식 준비를 하게 하는 건 본인이 아무리 원한다고 해도 그러면 안되는 거였다. 세상에 공짜가 어딨나.
보모 비용이 변호사 초임과 크게 다르지 않아 고민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렇다면 프랑스에선 변호사 월급이 짠 건가 아니면 보모 월급이 많은건가. 변호사가 되기 위해 특별한 전문 지식과 경험이 필요하지만 보모야 그닥 높은 수준의 전문 지식이 없어도 누구에게나 열려있으므로 이언주 같은 인간이라면 ˚보모라는 게 별 게 아니다. 그 아줌마들 그냥 동네 아줌마들이다. 옛날 같으면 그냥 조금만 교육시켜서 시키면 되는 거다. 애보는 아줌마가 왜 공부 많이한 변호사만큼 월급을 받아야 하냐”고 펄펄 뛰겠지만 수백년간 혁명을 거듭하면서 쌓아온 사회 시스템이 낳은 순결한 공정함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루이즈 혼자서 월급 받아서 싫컷 잘먹고 잘살수 있을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빚에 시달려 백인이라고는 하얀개미조차 안보이는 난민 수용 시설처럼 낡고 보잘것 없는 집에서 샤워부스는 고장나 목욕도 못하고 제때 월세도 못내고 살아가는데 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루이즈는 교양있는 중산층처럼 늘 옷매무새며 치장을 잘했고 교야있게 말하고 교양 있겨 행동하며 절대 눈에 띄지 않게 없는듯 하지만 정돈된 집안, 맛난 음식, 수선되어 짐점 새것처럼 변해가는 집안 살림들, 통제되는 아이들의 모습..이 것들로 자신의 존재를 알릴 뿐이다.
속에 사이코패스가 들어앉아있는걸까. 루이즈의 시점에서 쓰인 부분에서도 아무런 단서가 없다. 가장 신경쓰인 부분은 저렇게 노동력을 착취해도 되는건가. 그리고 애 둘을 돌보면서 저렇게 슈퍼우먼같은 가사노동이 가능하기나 한걸까 하는 부분이었는데 루이즈는 한 마디로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다. 왜. 왜서인지는 책을 덮고 나서야 천천히 추론해 볼 수 있다. 책을 읽는 동안은 루이즈가 사심없이 착해보이기만 해서 심지어 어떤 누군가의 음모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했다. 우리 주번에서 늘 일어나는 일은 아니지만, 끔찍한 사건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전파를 탄다. 왜 도대체 그 미친놈이 친구 딸을 유괴해서 약을 먹이고 성폭행을 하고 그것도 모자라 살해까지 했을까. 그 깊은 최초의 단서를 우리는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알고 있는 건 단지 피상적인 것들 뿐. 뭐라고? 심신미약이라고 ? 헐 할말을 잃게 만드는 정신이 나갔었다는 만병통치의 심신미약. 보모가 아이들을 죽인 이유도 그렇게 쉽게 둘러댈 수 있겠다.
심신미약이라면 왜 그녀를 애초에 그 단계로 접어들게 했는지 이해하는게 바람직하다. 그것의 시작은 그 젊은 부부 아이들이 자기를 산 채로 잡아먹고 있다는 생각이 들만큼 힘든 육아를 책임진 사람이 그것 이상 수 배의 일을 할 때 루이즈 자신도 모르게 바란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한다면 심플하다. 빚만 남기고 죽은 못된 남편 엄마의 지시에 따라 없는 듯 존재해야 했던 그래서 스스로 사라져 버리기로 작정하고 가출한 딸 뒤에 남아 남은 빚에 쫒기며 그토록 남의 가정에 헌신했던 이유는 그 가정을 자기의 의도대로 예쁘고 행복하게 가꾸는 게 낙이고, 그 낙이 위협을 받으면 자신의 존재 가치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즉 미리암 부부는 그들이 루이즈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음을 알았을 그 순간부터 가정에 대한 통제를 잃고 있음을 알았어야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누가 뭘 잘해줄 때 정말로 사심없이 잘해줄때 똑같이 잘해줄 자신이 없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조 못할 때 그에게 자신의 통제력의 일부를 대가로 돌려주고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