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순조 임금때의 일입니다.
정승부인 윤씨는 당시 호조판서(지금의 재부무장관)로 있던 김재찬의 어머니로,
매우 어질고 지혜로운 부인이었습니다.
어느 날, 김재찬이 수심에 찬 얼굴을 하고 있자, 어머니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얘야,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니?"
"실은 이번에 청나라 사신이 왔는데, 저희 황제에게 바칠 백은(白銀) 오천냥을
내놓으라는 겁니다. 기한은 사흘인데 지금 궁궐 창고에는 그 절반이나 있을까 말까 합니다.
지방에 가서 가져온다고 해도 여러 날이 걸릴 겁니다.
나라의 체면도 그렇고 외교상 중대 문제인데, 여간 걱정이 아닙니다"
"호조판서가 그만한 융통도 못해서야 쓰나. 내가 마련해 줄테니 걱정 마라"
김재찬은 반갑기도 했지만 미심쩍기도 하여 물었습니다.
"어머님이 어떻게 그런 큰 돈을..."
윤씨 부인은 미소를 머금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우선 2년전에 판 집을 다시 사자고 하였습니다.
김재찬은 당시 집값의 두배나 더 주고 다시 사들였습니다.
집주인도 호조판서가 사겠다고 하고, 더구나 집값도 두배로 준다고 하니,그 날로 집을
내놓았습니다.
집을 옮기자 마자 어머니 윤씨는 하인들에게 명하였습니다.
"지금 당장 부엌 바닥을 파 노아라"
하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바닥을 파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한참을 파내려 갔을까? 바닥에서 커다란 독이 세 개나 나왔습니다.
독 안에는 백은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인들은 물론 김재찬도 깜짝 놀랐습니다.
"거기서 오천 냥을 꺼내 얼른 청나라 사신에게 갖다 주거라.
이것은 명나라 군대가 임진왜란 때 군용품으로 가져왔다가 두고 간 것이니,
결국 제 돈 제가 찾아가는 격이 되었구나"
"예, 그래서 항아리에 명나라 연호(年號)가 새겨져 있는 것이군요"
그런데 김재찬은 한 가지 궁금한 사실이 더 있었습니다.
"하온데 어머님, 왜 이런 사실을 그동안 아무에게도 말씀 안 하셨습니까?"
"그 은독은 예전에 우리가 이 집에서 살 때 부엌을 수리하다가 발견한 것이란다.
그 때야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지만 공짜로 생긴 걸 어찌 쓸 수가 있겠느냐.
혹 나중에 유용하게 쓰일지도 몰라 아무도 모르게 숨겨 둔 거란다.
지금 생각해 봐도 천만다행한 일이지 뭐냐.
만일 그 때 갑자기 부자가 되었다고 해봐라. 돈 쓰기에 급급해서 책을 멀리
했을 터이고, 그랬으면 네가 어찌 판서가 되었겠느냐?
이렇게 유용하게 쓰이게 되어 정말 잘 되었다"
김재찬은 그 백은을 청나라 사신에게 주었고,
임금도 그 이야기를 듣고는 윤씨 부인의 앞을 내다 볼 줄 아는 지혜를 크게
칭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