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소설을 쓰고 싶어 소설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글을 쓰고 있는지 궁금해 찾아보았다.
그들이 글을 쓰는 방법은 다 달랐다. 5분을 쓰고 30분을 구상하는 사람이 있으면, 30분을 쓰고 5분을 쉬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아침 일찍 일어나 글을 쓰고, 누군가는 새벽 시간에 글을 썼다.
중요한 것은 나에게 맞는 루틴이다.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망에 언제, 어떻게 써야 맞는 것인지 고민하던 나에게 아주 좋은 해답이 되었다. 내가 아침에 글을 잘 써지면 아침에 글을 쓰고, 오후나 저녁에 글이 잘 써지면 그 때 쓰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꾸준해야 한다. 글을 쓰는 시간과 루틴은 모두 달랐지만 모두가 꾸준함을 강조하였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한 기억이 난다. 작가라고 하면 보통 천재적으로 아이디어가 떠올라 미친 듯이 쓰는 걸 상상하지만, 창의적이기 위해서 꾸준한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글 쓰는 것이 습관이 되어야 무엇이든 쓰게 된다고.
언제나 이상과 현실은 거리가 멀 듯이 내가 상상한 작가와의 삶과는 다른 부분이 있었다. 전업 작가로 수입을 유지하기 어려워 행사에 나가는 것이 필수불가결적인 요소가 되며, 프리랜서기에 안정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읽고 쓰는 것이 즐거워 그 행위를 오랜 시간 하기 위해 생활에 녹여 지속하고 있는 그들이 멋있으면서도 부러웠다.
나도 언젠가 그들처럼 멋진 글을 쓸 수 있을까. 창작하지만 누군가가 알아주기 전까지는 눈에 보이는 성과(수입과 같은)가 없기에 불안함을 느낀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그들 또한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다는 것. 그래서 위로를 받고, 희망을 얻었다.
또 공통적인 것은 모두가 걷는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몽상과 산책은 어떠한 관계성을 갖고 있는지 궁금했다. 나 또한 산책을 즐긴다. 실외배변하는 강아지를 키우기에 하루 3번에서 4번 정도 틈틈이 걷는 편이다. 생각에 골똘히 빠지기도 하고, 냄새를 킁킁 맡는 강아지를 바라보며 천천히 걷기도 하는 시간이다.
나를 위한 자발적 산책이 아닌 강아지를 위한 강제성 산책에 더 가깝기에 가끔은 걷기 싫은 날도 어쩔 수 없이 걸어야 해서 터덜터덜 걷는 시간도 많았지만, 구상을 위해 걷는다고 생각하니 그 시간마저 글 쓰기의 하나의 작업이 되었다.
맨 땅에 헤딩 하듯 막연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 꾸기에 부족한 부분이 훨씬 많다. 하지만 나 또한 그들과 같이 읽고 쓰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니까. 잘 쓰려고 욕심 내지 말고 먼저 꾸준함을 갖고 시작해보려 한다.
“그냥 내키는 대로 사세요.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고, 하기 싫은 걸 하지 않으면서 살아 보세요.”
하나밖에 없는 짧은 인생인데 좋아하는 거 좋아하고, 하기 싫은 거 하지 않는 게 뭐 이리 어려운 일인지 모르겠다. 부양할 가족도, 빚도 없는데 걱정과 고민만 많다. 지금 당장이 그렇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기 위해 떠나고 싶은데 현실이라는 벽을 넘기가 참 어렵다. 이럴 땐 미래의 내가 영화 ‘인터스텔라’처럼 어떠한 신호를 주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가, 지금 안 가면 너 후회해.’ 하며 내 이북 리더기를 툭 건드려주면 지금 당장 짐을 싸서 떠날 텐데. 내가 선택한 대로 미래가 만들어지는 것이 어떨 때는 희망적이지만 지금 같은 때는 막막하기만 하다.
“생각하고 계획한 대로 해 나가면 좋겠지만 그게 늘 생각처럼 되는 것도 아니고 초조해한다고 원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시간이 지나며 점점 더 느끼게 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맞다. 당장 해결될 수 없는 문제로 생각하고 초조해봐도 달라지는 건 없다. 내 마음만 불안해질 뿐이다. 나는 그저 묵묵히 내가 해야할 일을 하면 되는 걸 알면서도 잘 안 된다.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는 것도 아닌데, 늘 걱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