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의 힘!
우리가 지켜줄게
『 꼬리와 파도 』
최근 드라마, 영화, 뉴스에서 학교폭력에 대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했다.
사건을 은폐와 축소로 답하는 어른들과 외면하는 어른들의 모습이 많이 묘사되었다.
이런 모습들은 어른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아이들에게서도 가해자는 두려움과 불안의 대상이다.
'도와주었다가 내가 당하면 어쩌지?'
외면이 그러하다.
『 꼬리와 파도 』는 다양한 폭력에 노출된 청소년들이 폭력을 당했음에도 오히려 2차, 3차 가해의 피해자가 되고 사회적 낙인으로 인해 더 큰 피해를 보며 자책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담았다. 아이들은 폭력에 저항했으나 좌절하는 모습, 현실적인 벽이 만들어 놓은 권력, 남성 위주의 사회적 틀, 대항조차 하지 못하는 아이들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들도 담았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상황에서도 아이들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권리를 찾기 위해 파란 꼬리 리본으로 파도의 물결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파장이 점점 커지는 것처럼 아이들의 꼬리가 파도가 되어 사회를 바꾸었으면 하는 마음에 절로 응원하게 된다.
『 꼬리와 파도 』는 우리 주변에서 쉬쉬하지만 자주 접하게 되는 다양한 형태의 폭력에 노출된 모습들을 담았다. 학교 폭력뿐만 아니라 사제 간 폭력, 데이트 폭력, 사이버 폭력 등 다양한 폭력을 다루고 있다. 자극적인 문장은 없음에도 현실을 적나라하게 표현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어두운 현실과 방관자적 선생님 모습과 사건을 축소시키거나 오히려 또 다른 가해자가 되어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모습에서 화가 났다. '어떻게 선생님이 저럴 수 있지?', '어른이 되어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축소하려는 어른에 비해 폭력에 대항해 문제를 해결하고 바로잡으려 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두 주먹을 쥐게 된다. 나도 아이들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작은 용기는 사회를 변화시키는 첫걸음이 되었다. 그들의 걸음으로 새로운 길이 열리게 된 것이다.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받은 언어적, 신체적, 정신적 폭력은 도움을 요청하는 어른으로부터 외면받거나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된 아이들의 행동은 오히려 반사회적 효과로 피해자를 더욱 괴롭히는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폭력에 대한 가해자들의 당당함과 무책임함에 오롯이 모든 것을 감당해야만 하는 피해자.
이럴 때 아이들은 누구를 믿어야 하는 걸까?
과연 믿을 수 있는 어른이 있을까 의문이 든다.
무책임한 어른들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가 아니라 나 또한 은연중에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었다.
주인공 무경이 학창 시절에 경험한 무기력함. 어른이 되어 도와주고 싶은 괜찮은 어른이 되고 싶은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이해해 주려고 하는 책임 있는 모습에 아직은 살만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을 자신의 잘못으로 돌리면, 그다음엔 자신을 용서하기만 하면 되니까. 잘못한 것도 나, 용서하는 것도 나, 용서받는 것도 나, 그것으로 끝. 그러나 지선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었다.
피해를 입은 지선이 결국 자신만을 탓하게 되는 현실에서 가슴이 아팠다.
'내가 ~을 하지 않았더라면'을 수업이 되뇌며 자책감으로 스스로를 원망하는 모습.
가해자에 대한 당당한 저항이 아닌 피해자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모든 책임을 자신에게 돌리는 모습.
문제가 빨리 해결되고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현실.
자신이 세상에서 없어지는 것이 깔끔하다는 결말을 도출하는 모습이 우리 아이들을 사지로 내보는 현실 같아 가슴이 아팠다.
연일 뉴스에서 떠들어대는 청소년 자살. 인기 그룹의 아이돌의 자살, 유튜버의 자살시도와 생중계 등.
소설 속 주제들이 현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더 무서웠다.
"이쯤 하자. 그렇게 매달려서 네가 얻는 건 또 뭐냐"
교사의 무기력하고 지친 목소리. 굳이 소란을 피우지 말고, 사건을 키우고 싶지 않다는 강한 의지.
모든 선생님들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단편적 모습들에서 회의적 모습이었다.
무마시키고자 하는 모습이 낯부끄러웠다.
오늘의 폭력이 내일 그리고 모래도 반복되는데, 제대로 저항 한 번 못하면 결국에는 누구든 '그래도 되는 애'가 될 것 같았다. 이제 곁에 아무도 없는데. 나를, 우리를, 우리의 마음을 지키려면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서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용기'가 아닐까
물론 용기만으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무엇인가를 시작한다는 것 자체가 변화를 시작할 수 있는 힘이 되리라고 믿어본다.
그들은 무경이 듣는데도, 아니 오히려 들으라고 더 그랬다. 그들은 여럿이었고 그래서 당당했다. 잘못된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은 서로에게 떠넘기고 죄책감은 뒤로 숨기면서 나쁜 짓거리가 주는 달콤함만 맛보았다.
집단의 무모함과 강력한 힘.
개인적인 판단이 아닌 무비판적 몰이 현상이 상황을 더욱 깊고 치밀하게 변화시킨다.
SNS 상에서 나타나는 폭력적 댓글들이 그렇다.
무비판적 참여와 무의식적 행동들은 상대에게 칼이 되어 돌아간다.
하지만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언제나 그 대상이 내가 될 수 있다.
왜 우리가 서로에게 미안해야 하는 거지? 대체 왜.
불편한 진실을 밝히고 사과를 받고자 했던 피해자는 무기력하게 당하기만 하는 자신들을 서로가 서로에게 고개 숙여 사과를 했다. 그들의 아픔과 미안함이 그대로 전해진다. 마음으로.
겪어 보니까 알겠니? 도와줄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런데 넌 그때 어디 있었니? 미란이에게 도움이 필요했을 때, 다들 방치했을 때, 너도 똑같았잖아. 무관심했잖아. 서연은 현정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까 봐 두려워졌다. 서연의 고개가 다시 떨어졌고 현정이 말했다.
"그럼 이제 뭐부터 할까?"
외면, 방치가 또 하나의 가해가 된다는 것.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주변인들 또한 마음은 불편했다는 것을.
그들이 다시 힘을 모으기까지 각자의 아픔과 사회적 벽을 극복하기에 많은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이제는 무엇인가를 시작해야 한다는 것.
그들의 용기를 응원한다.
최아라가 여전히, 안전하고 정의로운 어른이라는 확신이 이었다.
아이들에게 믿을만한 어른들이 있는가?
'나는 안전하고 정의로운 어른인가?'
질문을 던졌지만 정작 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나 역시 비겁해질 것 같아서였다.
'내 아이의 문제라면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양면적 모습에 '나 또한 정의로운 어른은 아니구나'
다만 전체에 포함되긴 하겠지만 정의라는 이름으로 단체에 힘은 실어줄 것이다. 마음으로 하는 응원을 듬뿍 담아서.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 같다.
"귀엽다. 우리 꼬리들!"
"꼭 파도 같네."
가을바람을 따라 나란히 흔들리는 수백의 파란 꼬리들이 달빛 아래 너울대는 파도처럼 보였다.
더 이상 아이들이 부담을 지는 일은 없었으면, 최아라는 바랐다. 오후 내내 미안하고 부끄러웠다. 어른으로서의 책임감 같은 거창한 말을 쓰고 싶진 않았지만, 사실 어른이 된다는 건 좋은 일이 아닌가 싶었고,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어른답게, 책임을 져 줄 작정이었다.
꼬리는 정말로 파도가 됐다.
최아라의 모습을 보면서 아직은 세상에 최아라와 같은 어른들도 있다는 생각에 감사했다.
'나도 지켜 줄게.!
라고 함께 응원하고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
꼬리는 정말로 파도가 됐다.
현실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사건들.
불확실한 소문 하나가 어느 날 날카로운 집속탄이 되어 돌아온다.
집속탄은 무방비 상태의 아이들에게 큰 폭탄이 되어 터져버린다.
너덜너덜해진 아이들을 방관하는 사람들.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도움이 아니었을까.
푸른 리본이 파도가 되어 확산되듯
우리이 관심과 참여가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아픔을 딛고 성장 중인 우리 아이들을 응원한다.
미약하지만 나도 지켜줄게!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고 쓴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