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황당하고 분한 일을 겪은 오늘, 새벽 1시가 넘었는데도 뜨거워진 마음이 식지 않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머릿속으로 끊임없이 뒤통수를 친 H와, 나와 P는 인사 이야기를 꺼낼 급이 안 된다는 말을 자기 깜냥도 생각해보지 않은 채 내뱉은 S를 생각하게 되었다. 약도 오르고 화도 나고 속상하기도 했는데 문득 ‘심야식당’이 떠올랐다.
녹록치 않은 밥벌이로 부글부글 올라오는 화, 슬슬 엄마 속을 긁는 아이들에게 받은 스트레스, 근원을 모르는 우울에는 역시 ‘심야식당’이다.
이 만화 안에는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들이 흔히 볼 수 없는 인물들이 너무나 즐겁게, 또 불행하게, 서럽게, 안쓰럽게 그러나 행복하게 삶을 살아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복되는 패턴의 에피소드가 지겹지 않은 이유는 이 때문이고, 힘들 때 마다 이들을 생각하게 되는 까닭 역시 같은 이유이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 다른 층에서 일하지만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고 내쫓은 유즈키씨. 그녀는 아들이 연상의 여자와 동거하는 사실을 알고 몰래 집으로 찾아간다. 아들이 여자 친구의 속옷을 너는 모습을 목격한 후 못마땅해 하지만, 아들은 여자 친구에게 쫓겨나고 집으로 돌아온다. 아들의 여자친구를 만난 유즈키씨는 여자 친구로부터 다정하지만 좀 모자라고 편식도 심하고 물건도 늘어놓는다며. 게다가 술까지 마시지 못해 지루하다고.
유즈키씨는 아들의 여자 친구가 하는 말에 동의한다. 이런 일들이 지나가며 남편과 아들 모두 집으로 돌아와 세 식구가 한 집에서 살게 된다. (술도둑)
저자의 말마따나 이렇게 밍밍한 만화가 힘들 때마다 어찌나 마음의 위로가 되는지..
에필로그에는 이런 멘트들이 등장한다.
“ 곧 있으면 대만에서 대만판 드라마 심야식당이 방영되고 중국 본토에서도 영화화가 정해졌어요. ”
“왜 해외에서 먹히는 거지? 그것도 아시아에서. 이렇게 밍밍한 만화가.”
“인생이 잘 안 풀리는 사람들이 나오는데 나름 그럭저럭 살아가는 느낌이 위안이 된다네요.”
맞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이 말이었다. 그래서 오늘 같은 날 나는 심야식당을 꺼내들었다.
휴우~ 기분이 풀려서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