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이 지고 초록이 무성해지면,
다시 아이들은 그만큼 자라나 있겠지
아이들의 땀 내음과 하얗게 자라나는 손톱과
낮잠 후의 칭얼거림과 작은 신발들.
그 시간들은 모두 어떻게 기억될까?
기억하면 그 일상들을 온전히 간직할 수 있는 것일까?
(본문 중에서)
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읽을 책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는, 특히 소설을 고르는데 있어서는 굉장히 보수적이고 편협적인 시각을 가진 나쁜 독자(?)라서 무턱대고 읽지 않는다.
지금보다는 훨씬 더 자유롭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었던 이십대 까지만 해도 서점이나 도서관에 가서 책장을 열어보고 자유롭게 책을 골랐었는데, 책 읽을 시간은커녕 잠자는 시간 확보하기도 어려운 지금은 나름의 기준을 정하고 심사숙고 하는 수밖에 없다
요즘은 보통 전작주의의 대상이 되는 작가들이 추천했다든지 아니면 그들의 그에 등장했을 경우 찾아 읽는다.
이기호 작가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기호’라는 이름도 낯설었고 그가 어떤 스타일의 소설가인지도 전혀 몰라 선뜻 고르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낯선 이기호 작가의 ‘세 살 버릇 여름까지 간다’를 골랐던 이유는 ‘벚꽃이 지고’로 시작하는 저 위의 몇 문장 때문이었다. 이 문장을 읽을 때만해도 가족 소설임을 몰랐었는데 알고 보니 자전적인 성향의 가족 이야기였다. 마지막 까지 모두 읽고 나니 저 문장들을 쓴 작가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 또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으니까. 아이들의 ‘자람’으로 시간의 흐름을 확인하고 있으니까.
이 책은 월간 샘터에 35년간 가족 이야기를 연재했던 소설가 故최인호씨의 ‘가족’시리즈처럼 자신의 가족 이야기를 월간지에 삼십년을 연재 시한으로 삼고 시작했던 가족소설이다. 원래 는 삼십 년을 연재하겠다고 시작했지만, 2014년 4월16일 이후 좀처럼 힘을 내지 못하고 끝을 냈다고 한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작가의 큰 아이가 다섯 살일 때부터, 막내가 일곱 살이 될 때까지의 순간들이 44편의 에피소드로 활자화되었다. 그 시간들은 흘러 지나갔지만 쑥쑥 자란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이, 씩씩한 날갯죽지가, 반짝이는 눈빛이 이 글들과 함께 남았다. 그 어떤 가족사진보다, 동영상보다 더 생생하게..
나도 덩달아 싱싱해진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