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또한 그렇다.
‘고백으로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을 뜨겁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오히려 인간 혐오증이 있다고까지도 할 수 있다. 집단주의 성향이 강한 한국사회에서 투사가 되기 싫으면 연기자라도 되어야 하는 거다. 타인들이 원하는 연기를 잠시 해주면 내 자유가 더 확보 된다는 걸 일찍 영악하게 깨우친거다. 그리고 난 아마 그 연기를 꽤 잘해내는 쪽이었을 거다.’
(프로로그 중에서)
‘인간혐오’로 시작하는 프롤로그의 첫 문장을 읽으며 깜짝 놀랐다.
문유석 판사가 쓴 이전의 책들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또 이 분에 대해 아는바가 전혀 없어서 이렇다 저렇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개인주의자 선언』 만으로만 보면 문유석 판사는 나와 성향이 매우 비슷한 사람이다. 여러 차례 깜짝깜짝 놀라면서 글을 읽었다.
사실은, 대중이 읽는 책에 이렇게까지 솔직히 자신의 성향을 드러낼 필요가 있나 싶어서 조금 의아하기도 했는데, 나의 경우 성향을 감추기 위해 직장에서만큼은 철저히 가면을 쓰고 생활하는 타입이기 때문이다.
사람을 좋아하는 척, 상대방에게 관심이 많은 척. 가면을 쓰고 완벽히 연기 한 덕에 공황장애를 얻긴 했지만, 직장에서만큼은 두루 두루 대인관계가 원만한 분위기 메이커라며 인정받고 있다. 아마도 퇴직할 때까지 가면은 벗지 않을 것 같다. 그게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기도 하니까. 일단은 동료들의 안주거리가 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비로소 알 수 있었다.
1부에서 고스란히 드러난 그의 개인적인 성향과 나머지 2,3부에서 보이는 이 사회에 대한 문유석 판사의 냉철한 시각이 서로 어우러져 ‘문유석’이라는 사람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만약 3부에서처럼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회 전반의 이야기에 대해서만 썼다면, 지루하고 답답했을 거다. 하지만 1부에서 미리 자기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냈기에 글 사이의 균형이 잘 맞아 처음부터 끝까지 흥미를 놓치지 않고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쉽게 읽히지만 마냥 생각 없이 읽을 수 있는 것은 아니고, 가슴 한 쪽이 답답해지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울고불고 이 사회에 대한 한탄을 할 만한 정도는 아니다. 너무 짜지도 달지도 않게, 간이 딱 맞은 찌개 같아서 후루룩 한 권 뚝딱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이 글을 읽다가 깨달았다. 비루한 재능을 탓한 내 스스로가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가진 사람이었는지. 글 쓰는 게 좋다고 해서 모두 다 작가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글을 쓰기 위해 남들은 부러워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싫어하는, 나의 직업을 버리는 것이 꿈이었는데, 사실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직업은 직업일 뿐’.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반드시 백댄서가 되어 평생 춤만 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이 말이 내 가슴을 뒤흔들었다.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었지만 그렇게 살기엔 재능이 부족해서 자책만 하던 참이었는데.. 모처럼 마음이 편해졌다.
‘가성비 좋은 행복 전략이라는 관점으로 생각하면 직업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집착할 필요도 없다. 우선 자기 힘으로 생존하는 것이 생명체의 기본 사명이므로 냉정하게 현실적으로 자기가 선택 가능한 직업 중 최선을 선택하여 생계를 유지하되, 직업은 직업일 뿐 자신의 전부를 규정하는 것이 아니므로 취미활동, 봉사, 사회참여 등 다양한 행복 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것이다. 춤추는 것을 좋아한다고 반드시 백댄서가 되어 평생 춤만 춰야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재능과 열망의 크기에 따라 합리적으로 선택하면 그뿐이다.’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