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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시는 불행의 장르, 어두운 기억의 장르’라고 말했지만 내게 있어 시는 생각의 창고, 감정의 그림자이다. 내가 속한 조직에서 타인과 내가 차별화됨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까닭은 ‘시’에 있다. 시집을 사고, 시집을 가지고, 시를 읽는 사람이다, 나는.
마음이 스산할 때에는 소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럴 땐 시집을 꺼내 읽는다.
시를 읽으면 소설과는 다른 느낌이 든다. 길이와 깊이의 차이가 아니다. 그건 설명하기 조금 어려운데 소설을 읽는 것이 작가가 만든 방 안에 들어가는 느낌이라면, 시를 읽는 건 빈 방에 들어가는 느낌이다. 그 방을 무엇으로 채우느냐는 오롯이 나의 선택. 그럴 때 느껴지는 쾌감이 있다. 나만이 아는 느낌이지만.
『행복은 누추하고 불행은 찬란하다』에는 ‘2015년 2월16일에서 10월 12일까지 중앙일보 ‘시가 있는 아침’에 소개된 것들, 그리고 2015년 한 해 동안 문화에술위원회의 ‘시배달’을 통해 배달한 시 일부’가 실려 있다. 전문全文은 아니고 일부를 발췌했다. 왼쪽 면에는 시를, 오른쪽 면에는 시인의 짧은 생각을 배치했다. 나는 왼쪽 면의 시를 책에 그대로 필사해가며 읽었는데
어떤 문장은 고개가 끄덕여졌고, 어떤 문장에선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만이 아는 느낌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