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날은 손끝으로 글을 읽고 싶다. 그런 날은 시집을 꺼낸다.
좁은 여백에 동글동글한 글씨로 리듬감 있게 몇 개의 단어들을 옮겨 쓴다.
그래도 마음이 차지 않을 때에는 「이토록 멋진 문장이라면」을 꺼낸다.
구입한 지 2년이 넘은 책이지만, 조금씩 아껴서 필사했더니 아직 여러 장이 남아 있다.
장석주가 골라 엮은 산문들과 필사 할 수 있는 여백이 나란히 배열된 책인데, 이 책 안에서 나는 전영애, 김훈, 김애란, 최인호, 배수아를 만났다.
‘명문장을 베껴 쓰는 일은 그 작가에 대한 오마주라고, 베껴 쓰기는 교감을 나누는 것이라고’책의 서문에서 장석주는 말했다. 나에게 ‘베껴 쓰기’는 작가가 만들어 놓은 세상에 몸을 담갔다 빼는 것, 그 방에 잠시 들어갔다 나오는 일이다. 잠시 다른 세계에 다녀올 수 있는 ‘도라에몽’의 ‘어디로든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과 같은.
번잡한 마음을 잠시 가다듬을 수 있어서 좋다. 오늘 밤에는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