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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도서] 숨결이 바람 될 때

폴 칼라니티 저/이종인 역

내용 평점 5점

구성 평점 5점

동물은 미래를 모른다. 그렇기에 현실에만 충실하면 된다. 인간은 다르다. 인간에게는 미래가 있다. 그래서 인간은 나약하다. 한치 앞을 볼 수 없기에, 한없이 나약한 존재.

미래는 인간에게 있어 축복이자 불행이다.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갔던 아이가 교통사고로 주검이 되어 돌아오는 일과 레지던트 수련을 일 년 앞둔 창창한 인재가 암 선고를 받아 피폐해져 돌아오는 일은 현재와 미래 모두를 잠식해나가는 슬픔이다.

숨결이 바람 될 때는 그래서 더 슬프다. 그의 과거와 현재, 소멸된 미래 모두를 독자가 알게 되기 때문이다.

 

나는 앉아서 의과 대학원 시절 루시와 함께 찍은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우리는 춤을 추며 웃고 있었다. 그 사진을 보고 있자니 너무 슬펐다. 이 두 사람은 자신들이 얼마나 무너지기 쉬운 존재인지도 모르고 함께할 인생을 계획했다. ” (본문 중에서)

 

자신의 몸속에서 벌어지는 일을 모른 채 신경외과 레지던트 6년차 근무에 매진했던 폴 칼라니티. 극심한 요통과 함께 체중이 줄기 시작한다. 의료진으로 근무하는 사람들은 암의 증상에 대해 매우 잘 알고 있지만, 그것이 자신에게 닥쳐올 일이란 것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 까닭은 그 증상이 무조건 때문인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요통이 생기고 체중이 줄기 시작하는 증상은 암 때문 일수도 있지만 급성 디스크와 당뇨 때문 일수도 있다. 폴 칼라니티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한다.) 의학적 지식이 많기 때문에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해보는 경우가 흔하다. 아는 게 병인 셈이다.

극심한 통증을 여러 차례 겪고 순식간에 체중이 79kg에서 66kg까지 줄어들면서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판단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미리 예정되어 있던 여행을 감행한다.

하루 이틀 쉬면 평범한 일상의 세계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그 여행을 통해 그는 직감한다. 자신이 암에 걸렸다는 사실에 대해.

, 명예, 많은 물건들. 건강에 이상이 생기는 순간 하나 둘씩 거품이 퐁 하고 터지듯 사라져버린다. 삶의 정점은 그러게 쉽게 사라진다.

 

독자는 암 선고를 받게 되기까지의 순간을 먼저 알게 된다. 그 다음에서야 그의 유년기,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순간에 대해 읽게 된다. 그리고 다시 암 투병을 하는 폴 칼라니티의 이야기.

순조롭게 진행되던 폴 칼라니티의 글이 느닷없이 뚝 끊기고 그의 부인이 쓴 에필로그가 나타났다. 순간 나는 환자가 사망 하면 -’하는 소리가 나는 기계가 떠올랐다. 아무런 의심 없이 부모의 손을 잡고 따라 나서는 아이처럼 그의 글을 따라가며 읽고 있었는데..

 

누구나 삶이 유한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일상생활을 하면서 그 사실을 떠올리진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일을 하고 물건을 사고, 가족과 다툰다.

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 나이에 죽게 되는 사람을 보면 잠시 삶의 유한성을 깨닫고 되새김질할 뿐이다. 매 순간 죽음을 염두에 두게 되면 삶이 더 아름다워진다. 죽음의 역설이다.

내가 죽으면 쓸 수 없는 물건들에 집착할 일도 없고,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사람을 원망하는 일도 없어진다. 죽음을 생각하면 오히려 평온해 질 수 있다. 주어진 상황에 충실한 삶을 사 수 있고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감사할 수 있다.

폴 칼라니티가 사람들이 죽음을 이해하고 언젠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고 싶어 했다는 건 이런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201539일 월요일, 폴은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병원 침대에서 숨을 거두었다. 8개월 전 우리 딸 케이디가 태어난 분만 병동에서 200미터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누군가는 케이디가 태어나고 폴이 숨을 거둔 그 사이에 동네 바비큐 식당에서 우리 식구를 보았을 것이다. 그곳에서 검은 머리에 긴 속눈썹을 가진 아기가 유모차에 탄 채 졸고 있는 동안, 맥주 한 잔을 나눠 마시고 갈비를 뜯으며 서로에게 미소 짓던 우리 부부를 본 사람은 폴이 앞으로 살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는 걸, 또 우리가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걸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본문 중에서)

 

이 문장들은 시간이 지나도 자꾸만 떠오르는 건 미래를 볼 수 없어 나약한 인간이, 미래를 알게 되면 오히려 강해진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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